>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二十一世紀映畵讀本]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
 
박수철   기사입력  2002/03/20 [13:56]
{IMAGE1_LEFT}영화 '벨벳 골드마인'은 음악 영화라기 보다는 글램 록(Glam Rock) 그 자체이다. 영화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영화 '벨벳 골드마인'의 제목은 글램 록의 아이콘인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노래 제목이며 이 영화의 수많은 캐릭터들은 글램 록의 아티스트들의 삶의 모습들과 음악들을 그대로 차용했다.

이 영화를 보는 재미 중의 하나는 이런 모습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루 리드(Lou Reed), 이기 팝(Iggy Pop), 앨리스 쿠퍼(Alice Cooper), T-렉스(T-Rex)의 마크 볼란(Mark Bolan), 록시 뮤직(Roxy Music)의 브리이언 페리(Brian Ferry)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등의 모습들은 극중 인물인 커트 와일드(Curt Wild), 브라이언 슬레이드(Brian Slade), 잭 페리(Jack Fairy)의 모습 속에 녹아 있다.

더욱이 영화 속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의 성장 모습들인 모드 족, 전기 치료 등은 여러 글램 록 스타들의 성장 모습과 똑같다.  그럼 이 영화는 다른 영화들처럼 대중 음악 스타들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그들의 천재성을 따라가는 그런 영화인가. 물론 전반적인 이야기의 줄거리는 글램 록 스타의 浮上과 성장 그리고 몰락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글램 록 스타들의 그런 모습들 속에서 그들을 찬양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들을 보여주며 또 다른 어떤 것을 우리에게 찾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말 그대로 이 영화는 글램 록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준다.감독인 토드 헤인즈(Todd Haynes)는 이전 영화인 '포이즌(Poison)'과 '세이프(Safe)'로 미국의 인디 영화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감독 자신이 커밍아웃을 하였고, 그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인 '포이즌'은 게이 영화의 또 다른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세 번째 영화인 '벨벳 골드마인'을 게이 영화의 그 연장선상으로 읽는 것은 조금 무리인 듯 싶다. 물론 이 영화에는 글램 록 스타들의 양성애자 모습들이 보이긴 하지만, 등장 인물만을 가지고 그 영화를 게이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은 마치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고 해서 그 영화를 여성 영화라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것이다.

{IMAGE2_RIGHT}게이 영화의 특징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이 기존의 성 정체성과 다른 어떠한 것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한데, '벨벳 골드마인'은 글램 록 그 자체의 시점과 세계관을 가지고 영화를 이끌어 간다. 즉, '벨벳 골드마인'은 앞에서 이야기 한 것 같이 글램 록 그 자체이다. 글램 록은 자기애가 상당히 강한 음악 장르이다. 그들은 대중 음악의 스타로서 팬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환상과 어찌 보면 허위라고 볼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고 무대에서 Performance와 관객과의 상호간의 호흡을 유지하며 무대를 이끌어 간다. 그러기에 그들의 음악과 무대에서의 모습, 그리고 생활상은 하나의 맥을 가지고 있다.

어느 스타들의 모습처럼 무대에서의 모습과 생활상의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이 곧 그들의 무대에서의 모습이고, 그들의 생활 모습이 곧 무대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어찌 보면 그 자기애의 폭발로 위험해 보일 수도 있고, 그들을 숭배(?)하는 팬들에겐 하나의 유행일 수도 있다. 그런 우려대로 글램 록은 2년여의 폭발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 후 너무나 급속히 사라져 버린다. 그런 글램 록의 모습을 이 영화는 아무런 첨삭 없이 조용히 따라간다.

'벨벳 골드마인'의 이야기 구조는 한 명의 글램 록 슈퍼스타의 갑작스런 실종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찾아가는 모습 속에서 어떠한 미스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글램 록 스타를 따라가며 그 당시의 글램 록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촬영, 음악 사용 등에 있어 글램 록의 모습을 이 보다 더  보여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영화의 촬영 감독인 마리즈 알버티(Maryse Alberti)의 몫이 절대적이다. 모든 씬에 있어 빛과 카메라의 앵글과 씬 사이의 무리한 충돌을 피하는 핸드 헬드 촬영과 줌 렌즈의 사용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글램 록 공연을 잡아내는 데 있어 절대적이며, 이 영화의 백미이다.)

이렇게 '벨벳 골드마인'은 글램 록에 대한 하나의 헌정과도 같은 영화이며,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는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2시간 여 동안 멋진 글램 록을 마음껏 들을 수 있었다는 데에 만족하는 것은 가장 기본일 것이다. 괜히 영화를 보면서 머리 아플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꼭 무언가 찾고 싶다면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대중 음악, 그리고 대중 문화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를 거쳐 온 대중 문화와 그리고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2000년대의 대중 문화에 대해 한번쯤 머리 아파 보는 것이 조금은 의미 있을 것 같다.

PS 1. 이 영화에는 이 영화의 모델 역할을 하는 데이빗 보위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사실 감독인 토드 헤인즈는 데이빗 보위의 노래로 영화 전체를 채우려고 했지만 데이빗 보위가 거부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너무나 변해버린 지금 자신의 모습이 싫었을까.

PS 2. 이 영화를 극장에 조용히 앉아서 보려고 하니까 왠지 이상했다. 가끔 머리도 흔들고, 맥주도 마시면서, 그리고 담배도 피어가면서 보고 싶은 걸 참았다.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면 꼭 그렇게 해야지. 영화 보는 것도 하나의 멋인데......

PS 3. 글램 록의 화려한 치장은 이상하게 변해버린다. LA 메탈과 컬쳐 클럽(Culture Club)의 보이 조지(Boy George), 듀란 듀란(Diran Duran)의 모습으로. 글램 록이 자기에게 안 맞는다면 이런 변형된 모습을 보고 영화를 본다면 조금은 거부감이 덜 들겠지.    

* 본 글은 대자보 20호(1999.9.14)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3/20 [13:56]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