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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一世紀映畵讀本] 유 령
 
박수철   기사입력  2002/03/20 [13:44]
{IMAGE1_LEFT}우노필름의 새 영화 '유령'을 보며 놀란 점은 대략 4가지다. 그 첫 번째는 그 말도 많았던 이야기 구조의 짜임새였고, 두 번째는 과연 가능할까 하고 궁금하게 여겨졌던 Dry for Wet 촬영의 완성도, 그리고 세 번째는 최민수와 정우성의 연기 대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관객의 반응이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헐리우드의 잠수함 영화를 보던 관객이 한국 잠수함 영화를 보고 과연 환호를 보낼 수 있을까.)

'유령'의 기획 단계에서 궁금했던 점은 과연 한국의 제작 풍토에서 잠수함 영화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시나리오가 '크림슨 타이드'나 '붉은 10월'같은 영화와 갖는 변별점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유령'도 앞의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두 편으로 갈린 대립 상황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립들 속에서 '유령'이 택한 것은 전반적인 악과 선의 일방적인 나눔이 아닌 한국 사회에 깊게 박혀 있는 민족주의와 그의 반대편에 있는 휴머니즘의 대립 구조였다. 이러한 선택은 '유령'에서 대단히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최민수가 연기한 부함장은 민족주의라는 틀을 앞에 걸고 때로는 파시즘과 때로는 민족 자결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와 반대편인 정우성은 낭만적인 휴머니즘으로 이에 맞서고 있다. 이러한 대결 구조에서 감독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유령'은 헐리우드와 달리 이 두 편중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들어주지 않고 둘 다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인 민족주의도 낭만적인 휴머니즘도 아닌 냉철한 판단력과 사회 각 부분의 조화와 대화임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영화 '유령'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단연 촬영 부분이다.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잡아내는 카메라와 빛의 흐름, 그리고 한국 영화에서 처음 시도한 'Day for Wet' 촬영(수중 촬영에 있어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마치 수중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촬영 방법. 영화 '유령'에서는 스모그를 이용하여 마치 심해인 것처럼 보이게 촬영을 하였다.), 절묘한 Computer Graphic과 함께 영화 전체를 자연스럽게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의 발전은 다만 '유령' 하나의 성공적인 촬영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 부딪히는 기술상의 제약 때문에 시나리오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씻어주었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IMAGE2_RIGHT}'유령'에서 최민수의 연기는 '테러리스트'이후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민수 특유의 카리스마가 다른 영화들에서는 그리 빛을 발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유령'에서는 스크린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최민수의 카리스마는 상대역인 정우성을 너무 압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영화 안에서 나약한 휴머니즘과 강인한 민족주의라는 두 대립점은 이 최민수의 강력한 스크린 장악력으로 영화에 힘을 더하고 있다.

또한 감독은 이 두 인물 외에 다른 조연들의 비중을 줄임으로써 관객이 영화 속에서 두 인물에 집중하며 영화를 대결 구도로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유도가 관객들에게 먹혀 들어가는 것 역시 최민수의 강력한 연기가 그 뒷받침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영화를 보는 도중 상당히 진지하다고 느껴졌다. '유령'이라는 영화 자체는 사실 힘이 있는 남성 영화이고 그리고 어느 정도는 머리가 아픈 이데올로기에 대한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꽉 메운 객석에서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즉, 영화 자체가 관객과 호흡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유령'이 개봉되기 전 잠수함 영화라는 '유령'의 특징은 한편으로는 흥행에 상당한 부담감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따뜻함이 결여된 시조 팽팽한 긴장감을 과연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과 이러한 긴장감이 과연 기존의 잠수함 영화들을 보아왔던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 하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유령'은 이러한 우려를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서 불식시켰다.

'쉬리'이후 한국 영화의 흥행 성적은 놀라울 정도이다. 물론 거기에는 잘 짜여진 이야기 전개와 치밀한 사전 작업이 이 영화들의 흥행을 주도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걱정되는 것은 지금의 이런 흥행작들의 아류작들의 연속된 기획이다.  사실 지금까지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은 '쉬리' 이전에 이미 기획된 영화들이었다. 그래서 각각의 영화들은 자기의 기획에 충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흥행작들을 어느 정도 계산한 기획물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진정 필요한 것은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모색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진정한 진일보는 블록버스터도 아니요, 그렇다고 엄청난 제작비도 아니다. 차분한 준비와 빛나는 창조력뿐이다.

* 본 글은 대자보 19호(1999.8.24)에 발표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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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20 [13:4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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