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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철학과 강사 및 대학원생, 송두율교수 구속항의 성명내
 
대자보   기사입력  2003/10/24 [17:28]

송두율 교수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에 대해 서울대학교 철학과 강사 및 철학과 대학원생59명은 송두율 교수 구속이 학문사상의 자유를 위협하고, 시대착오적인 반인권적 국가보안법을 되살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송두율 교수의 학문적 성과와 남북대화 및 우리사회 민주화에 대한 그의 기여가 사장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가 한국의 후학들과 소통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10월 27일(월)부터 12시에서 13시까지 매일 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할 것임을 밝혔다.

송두율 교수 구속에 대한 서울대 철학과 강사 및 대학원생 59인의 입장

1. 우리는 송두율 교수를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검찰은 10월 21일 송두율 교수를 반국가단체 가입, 특수탈출, 회합통신 위반 등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구속했다. 우리는 그의 친북 행적과 관련한 무수한 정치 공세를 보았지만, 정작 그가 대한민국 국민과 세계 시민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는지 모른다. 탈냉전과 남북 화해의 시대에 방북과 의례적인 조선노동당 입당, 학술 활동 등이 우리의 삶에 어떤 위협이 되는가?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구속과 처벌은 부당하다.

 더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행적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면, 굳이 구속 수사를 진행할 이유는 없다. 제 발로 가족과 함께 37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고 독일 국적까지 포기하겠다는 사람에게 도주 우려는 없다.

 박만 서울지검 1차장은 구속 수사의 배경으로 “포용 방안도 충분히 고려했으나 사안이 워낙 중한 데다 본인이 반성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반성이 부족하니 구속 상황에서의 강압 수사를 통해 반성과 전향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인가? 사상이나 이념은 생물학적 목숨만큼이나 인간에게 중요한 정신적 목숨이다. 따라서 사상을 버린다는 조건으로 용서해주겠다는 것은 사실상 정신적 자살을 교사하는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개인의 이성을 농락하려는 검찰의 반인권적 발상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와 검찰에게 송두율 교수를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한다.

2. 우리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구속 근거인 국가보안법은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은 학문, 사상,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으로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아왔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국가보안법이 아닌 일반 형법에 의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국가보안법은 가입, 연구, 저술, 소지, 만남 등 누구에게도 위해가 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 활동들을 처벌의 근거로 삼는 악법이다.

 또한 남북 화해와 교류의 진전은 국가보안법의 실효성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송두율 교수에게 적용된 회합통신 위반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수많은 정치인과 기업가들이 이미 공공연히 해왔던 일이다. 그래서 최근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구속 사례는 급속히 줄어들어 왔고, 정치권에서도 폐지 또는 개정을 논의해온 바 있다. 우리는 죽어 가는 악법을 되살려 송두율 교수를 처벌하는 것에 반대한다.

3. 우리는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송두율 교수의 공적을 폄훼하고 그의 학문 성과를 왜곡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한때 해외에 있는 한국의 대표 지성으로 평가받던 송두율 교수는 이번 귀국 과정에서 자신의 행적에 대해 떳떳하고 책임질 수 있는 태도를 보이지 못함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후학들에게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한 송두율 교수의 해명이 있어야 하며 그에 따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하지만 조선노동당 입당 사실을 비롯해 경계인의 정도(正道)를 넘어선 친북 행적이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남북 화해를 위한 그의 노력과 성과를 모두 부정하는 것일 수는 없다.

 우리는 또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서구적 편견에 입각한 연구 경향을 벗어난 사회 연구 방법론으로 평가받았던 그의 학문 세계가 친북 사상으로 왜곡되고, 한국의 지성과 청년들에게 시대 정신을 고민하게 했던 그의 저서들이 불온 서적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심지어 교수 신분에 대한 의심을 통해 그의 학문 성과를 격하하는 저급한 공세는 독일 학제에 대한 무지의 소산일 뿐만 아니라, 학문을 그 내용보다는 학자의 직위를 통해 평가하려는 몰지각한 발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폄훼와 왜곡이 보수 언론과 일부 수구 정치인들의 저열한 학문사상관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 생각한다.

4. 우리는 모든 학문과 사상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송두율 교수가 대한민국에서 연구와 강의를 비롯한 학술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정치적인 이유로 학문과 사상에 대한 연구가 제한되는 사회야말로 야만적인 사회다.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통찰로서의 학문은 어떤 제한도 없이 연구되고 토론될 때 참된 성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철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고,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를 넘나들고, 남과 북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구한 송두율 교수의 학문적 성과가 사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가 한국의 학자들과 함께 연구하고, 한국의 대학에서 청년 세대와 소통하며, 자유롭게 그의 학문 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대 철학과 강사 : 강성화, 강철웅, 김상현, 김재희, 노호진, 손철성, 윤선구, 이유달, 장원태, 진태원, 황수영(이상 11명)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생 : 강성열, 계광수, 권향숙, 김기복, 김도일, 김문수, 김상연, 김수진, 김은주, 김은희, 김주희, 김재호, 김홍기, 목광수, 박동국, 박상욱, 박우용, 박지현, 박지훈, 박철호, 백현주, 송병찬, 원치욱, 오은아, 유재민, 이동욱, 이보경, 이선희, 이윤철, 이은아, 이재환, 이정환, 이종환, 이지영, 이찬웅, 이해임, 임상진, 전대호, 정대훈, 정성훈, 정진범, 조정은, 주재형, 채희도, 최천식, 한경자, 한성일, 홍성국(이상 4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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