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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이 결정할 김태환 지사의 운명은?
[기자의 눈] 연고주의와 소신 사이에서 향방이 갈릴 듯...
 
이훈희   기사입력  2009/08/26 [12:20]
▲     © 이훈희

25일 밤이었다. 처남네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내일 있을 김태환 제주도 지사 소환투표가 밥상에 올랐다.

두 사람이 모두 공무원인 처남네는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소환투표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며 “이걸 주제로 삼는 것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투표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사람 모두 말이 없다. 잠시 후 처남은 곁에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며 “내일 투표하세요. 찬성이라고 찍고요.” ‘김태환 지사 소환 찬성’이란 뜻이다.

이윽고 9시 제주뉴스가 나오는데 제주특별자치도가 비번인 소방 공무원들까지 강제 출근시켜 제복까지 입혀 투표장에 감시자로 내보려다가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는 보도가 나온다. 조직적으로 투표를 방해하려는 움직임이다.

투표 당일, 말로만 장애인 차량 지원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에 대한 토론이 가장 없던 곳은 어찌보면 사회복지단체였다. 지자체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입장에서 나서서 칼날을 세우기 어려울 법하다. 다른 측면에서는 내세울 칼날이 없기도 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전국 지자체 중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기는 해도 타 시도에서 하는 복지정책은 웬만큼 다 하기 때문이다.

제주지역의 모 장애인 인권단체는 김태환 지사 소환운동본부에 단체명이 올라가있을 걸 보고 ‘동의하지 않는다’며 단체명을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또 다른 장애인 단체에서는 이번 투표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갖지 않으며, 투표장의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해서도 점검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점검을 하게 되면, ‘사실상 김태환 지사 소환 찬성 선거 운동’이 되지 않겠냐는 해석이다.

선관위에서는 투표 당일 제주 지체장애인협회 등 장애인 단체 두 곳에서 차량지원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확인을 해보니 “투표장까지 수송하는 차량을 따로 준비한 건 없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제주 지체장애인협회의 경우 제주시에 3대의 차량, 서귀포에 2대의 차량을 이용해 장애인 이동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제주시만 해도 하루 40여건의 차량 이동 서비스를 한다고 했다. 만약에 투표장에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가는 장애인이 40명쯤 된다면, 일상적인 용무로 차량을 이용하는 40명과 겹쳐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연고주의와 소신 사이에서...

투표 전 평소 알고 지내는 장애인들을 만나보았다. 여성 장애인 B씨는 투표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중증이란 걸 감안한다면 소신있는 결정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B씨는 ‘반대’에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남편의 친구가 ‘반대’에 투표하라고 권했기 때문. 제주 특유의 연고주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K씨(지체장애 2급)는 새벽 일찍 일어나 동생과 함께 투표를 한 뒤 직장에 출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김태환 지사가 ‘도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독불장군’이라고 비판했다.

A(지체 1급)씨는 이곳 토박이이지만 사정상 주소지가 서울로 되어 있어 투표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진정으로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태환 지사 당선에 한 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땐 잘 몰랐죠. 도민을 이렇게 우습게 볼 줄은…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지요.”

투표율 33%의 넘긴다에 돈 만원을 걸어

26일 오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난 다음 투표장이 있는 아라 초등학교로 향했다. 현수막으로 ‘투표장’이라 알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 얼핏 보기엔 방학 중의 조용한 학교로 보인다. 운동장 입구 저편에 임시 주차장을 만들었고, 트럭 몇 대가 서 있다.

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서자 고딕체로 적은 ‘투표장’이란 글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있는 안내 도우미 2명을 스쳐지나 교실 안에 들어가 주민등록증을 보여준 뒤 기표소로 들어갔다. ‘김태환 도지사 소환에 찬성합니까? 반대합니까?’ 도장을 꾹 찍었다.

현재 제주도의 날씨는 청명하고 뭉게 구름이 두둥실거린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만원 한 장이 잡힌다.

어제 밤 처남댁이 내기를 걸었다. “소환 투표에서 33%의 투표율을 넘기냐, 못 넘기냐에 만원 내기해요.” 나는 ‘33%를 넘긴다’에 만원을 걸었다. 그런데 처남댁도 33%를 넘긴다에 만원을 걸었다. 결국 33%를 넘겨도 본전인 셈. 지금 이 순간 제주도민의 최대 관심은 이 투표율에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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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26 [12: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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