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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인책론 3일만에 진압…여당반란 늘 용두사미
'홍준표 사퇴론' 꼬리 내려…일부 소장파는 지도부 교체 강력제기
 
도성해   기사입력  2009/01/09 [17:50]
방송법 등 쟁점법안 처리 불발 이후 이재오계 중심의 친이 강경파들은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9일을 기점으로 불과 사흘만에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 성공을 위해서는 2월 임시국회때 핵심 쟁점법안들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대의를 앞세웠지만 이들의 '반란'은 사실상 무위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나라당 내부의 반란은 언제나 불발'이라는 공식만 하나 더 추가됐다.
 
◈ 사흘만에 진압당한 홍준표 사퇴론
 
원내지도부 책임론은 주도해온 친이계 모임 '함께 내일로'의 심재철 대표는 9일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 소집을 요구했지만 지도부는 아예 무시하고 있다"며 "다들 속으로만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체념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공성진 최고위원도 "특정 지도부에만 책임을 묻기에는 지난번 국회 상황이 너무 외통수였고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모든 의원들이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2월 국회에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도부 인책론이 며칠만에 고개를 숙인 것은 친이 내부에서도 '대안부재론' 등 다른 목소리가 나왔고, 친박계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등 세를 얻지 못한 탓이다.
 
특히 박희태 대표 등 당 중진들은 물론 청와대 상층부에서도 지금 원내대표단을 교체할 경우 혼란이 더 가중될 수 있다며 사퇴론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관련해 인책론에 가세했던 한 의원은 "청와대의 젊은 행정관들은 상당히 격앙돼 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많이 누그러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반란
 
친이 강경파의 내부 반란이 용두사미에 그친 것은 이번 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추경안 처리 무산 때도 이들은 홍준표 원내대표의 사퇴를 강하게 촉구했으나 역시 동조세력을 더 규합하지 못해 무위로 돌아갔다.
 
또 4월 총선을 앞두고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정두언 의원 등 수도권 공천자 55명은 "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총선에 출마하지 말라"고 이상득 의원을 겨냥했다. 이른다 '55인의 난'이었다. 그러나 '형님'의 힘을 꺾지는 못했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MB의 복심' 정두언 의원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며 또다시 이상득 의원측과 정면으로 맞섰다.
 
박영준 전 비서관의 사퇴를 '전리품'으로 얻긴 했지만 "일부 의원의 묻지마식 인신공격 행위와 발언들이 걱정스럽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두언의 난에 가담했던 몇몇 소장파 의원들은 몇달간 근신해야 했다. 물론 '형님'의 입지는 더욱 강화됐다.
 
◈ 그들의 반란은 왜 성공하지 못하나
 
이처럼 굵직한 4번의 '쿠데타'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앞세운 대의가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한 탓이고, 이는 여당 내부의 복잡한 권력지형도에서 비롯됐다.
 
크게는 친이계와 친박계로 갈라져 있고, 당 주류 역시 이재오계와 이상득 라인, 친이 직계 등으로 세분화돼 있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한쪽으로 권력이 급격히 쏠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번 홍준표 사퇴론에 앞장섰던 세력은 친이 중에서도 이재오계가 주를 이뤘다. 그런데 때마침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조기 귀국설이 설왕설래하고 있던 차였다.
 
이 때문에 친박계는 물론 이상득 라인까지 "이재오 귀국을 위한 사전 포석아니냐"며 경계심을 드러냈고, 결국 권력의 균형추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해지면서 인책론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다.
 
박근혜 의원은 지난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총재체제에 맞서 당 개혁을 부르짖다가 주류파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한나라당을 탈당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성격상 소수의 목소리를 다수의 목소리로 '하의상달'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지난 2000년 정동영 당시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동교동계를 상대로 제기한 정풍운동이 성공한 것과는 비교된다. 별다른 조직도 없이 최고 실력자 권노갑 최고위원과 정면으로 맞섰던 힘은 정당성과 여론의 힘이었다.
 
'MB 정부 성공을 위한 여권 내부의 쇄신요구'가 '반란'의 진정한 대의라면 권력다툼으로 비쳐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면서 국민들과의 소통부터 강화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한나라당 내의 '반란'이 내부 권력투쟁의 소지로 비춰진 점도 문제였다.
 
◈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쟁점법안 처리 불발 책임론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일부 소장파들은 여전히 "지금 지도부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고, 희망이 없다"며 지도부 교체론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친이 직계의 한 의원은 "쟁점법안을 2월로 넘겨봐야 정치적 혼란만 더 가중시킨다"며 "지도부가 최악의 선택을 했다"고 강력 성토했다.
 
그러면서 "홍준표 원내대표가 계속 사퇴를 거부하더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라며 "산발적인 분란양상이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다른 의원은 "홍 원내대표의 경우 지난 9월 추경안 불발 파동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만큼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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