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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과 사제단에 칼날 겨눈 중앙일보의 일탈
6일 사설에서 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에 일방적인 비난 퍼부어
 
심승우   기사입력  2008/03/06 [13:11]
이미 오래전부터 천문학적인 불법정치자금 제공 등 X파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비리구조의 온상으로 지목되어온 삼성이었다. 전현직 검찰 수뇌부를  매수하면서 법조계를 타락시키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어온 삼성이었다. 오죽했으면 국민 여론의 압박에 의해 삼성 수사를 추진하던 특검 관계자가 "삼성 비리는 국가 중추 기관의 정상적인 활동을 마비시키는 우려를 낳게 한다"고 까지 말했을까. 이른바 '삼성공화국'은 레토릭의 표현이기는 해도 결코 과장된 것은 아니었다.

각종 금융법을 '간단하게' 위반하며 정상적인 시장원리를 교란시켜온 삼성의 비합리적 지배구조와 부도덕한 경영승계를 도모한 삼성의 추악한 기도는 또 얼마나 우리경제의 토대를 위태롭게 만들어왔던가. 10년전 수많은 국민들을 하루아침에 차가운 거리로 내몰았던 IMF의 근본적인 원인은  뿌리깊은 정경검언 유착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삼성의 부패 구조에 대한 방치는 대 재벌가의 추악한 비리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든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체제를 붕괴시킬지도 모르는 잠재적인 폭발력을 갖는 것이다. 

국가 중추기관 마비시키는 삼성의 부패구조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정의구현 사제단이 어제 청와대 핵심인사인 민정수석과 국정원장, 금융위 위원이 삼성의 관리대상이자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아온 사람이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러한 의혹을 '무분별한 폭로'로만 치부할 수 있는 것인가? 공적인 비판과 토론의 장에 부쳐서는 안된다는 것인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중앙일보 6일자 사설에 우리가 분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사제단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른바 삼성 떡값 수수자에 대한 3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대자보

더구나 삼성의 로비 의혹 정황은 충분하다. 사제단에 따르면, 이종찬 민정수석은 현직 고검장 신분으로 삼성본관을 직접 찾아 이학수 부회장으로부터 여름휴가비를 받아갔으며, 흔히 하는 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정원장의 김성호 내정자에게는 '양심선언' 김용철 변호사가 직접 건넸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는 국정원장에 임명된 후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기적인 독대를 하기로 알려진 상황이다. 김 변호사는 자신이 '뇌물공여' 내지 '금품수수 관여'라는 법적 책임을 감수하면서까지 김 내정자의 비리를 폭로한 것이다.
 
금융 감독과 관리의 업무를 맡게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자 전 우리은행장까지 포함한다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 공직 기강과 정보 기관, 금융 관리 등을 책임질 핵심 3인방이 모두 삼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 부적절한 인사가 되는 것이다. 언제든지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입김에 휘둘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국민들은 해당자들의 자진사퇴와 강도높은 특검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마당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 조차 삼성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특별검사팀이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제단의 기자회견 내용을 무차별 폭로로만  치부하는 '대중'의 의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의 역할 포기한 중앙일보의 일탈

그렇다면 현재 모든 비리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는 삼성, 이러한 삼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중앙일보가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상식적 이성'을 가지고 있다면, '사제단의 무책임한 폭로'라는 제목의 중앙일보 6일 사설은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다. 아무리 삼성과의 특수 관계를 고려해도 언론으로서 역할과 위상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이날 중앙일보는 사설 앞 부분에서 사제단의 기자회견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 직후에 바로 "당사자들과 삼성 측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사제단의 이러한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명단이 있으면 처음부터 모두 공개하면 될 일이지 찔끔찔끔 흘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며 사제단의 기자회견에 무슨 '음모'가 있는듯 분위기를 잡았다.

이어 중앙은 "명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의’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한다. 대한민국의 토대를 갉아먹는 정경검언 유착 의혹을 제기한 것이 '정의'가 아니라면, 그리고 정황이 유력한 삼성 비리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며 '공론장'에 부치는 것이 '정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정의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중앙일보는 이날 자 '사제단의 무책임한 폭로'라는 사설을 통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라"고 맹비난했다.     © 중앙일보PDF

사제단의 기자회견 내용을 '정치'로 몰아가려는 중앙일보가 내놓는 근거는 어이가 없다. 중앙일보는 명단 공개 시점이 검찰 수뇌부 인사를 앞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제단은)서울지검장이나 대검 중수부장에 삼성과 관련 없는 사람이 임명됐으면 한다는 주문까지 내놓았다....이제 공직 임명은 사제단의 검증을 받아야 할 처지다. 이 나라가 이런 식의 폭로를 하는 김모 변호사의 입에 끌려가야 하는가"라고 개탄(?)하고 있다.
 
삼성의 떡값을 정기적으로 챙겨온 부패검사들이 검찰 수뇌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제단의 주장이 '부정의'한 것인가?  검찰 인사에 시민사회단체는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다는 것인가? 검찰 인사를 앞둔 '시점'이 이번 기자회견의 진정성을 무효화하는 '본질적인' 문제인가?

정치적 음모로 몰아가는 중앙일보의 비상식과 몰이성

이제 사설 말미에서 중앙일보는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더 이상 이런 식의 폭로에 나라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증거없는 폭로는 더 이상 거론조차 말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더이상 거론하지 말라'는 요구는 사실상 비판과 논의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설을 반영하듯, 6일 오전 10시 현재 중앙일보 인터넷판에서 사제단의 기자회견 내용과 관련된 메인기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침묵하라'는 중앙일보의 요구는 마치 삼성전자의 운임과다 책정 문제를 제기한 프레시안에게 매일 500만 원과, 별도로 1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소장을 송부한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대파에 대한 무력화와 원천봉쇄는 삼성과 중앙일보의 공통된 논리인가.

이제 중앙일보 사설은 작정한 듯 김용철 변호사를 겨냥해 복수의 칼날을 겨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이자 변호사인 김씨도 문제다. 법조인이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상자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에 대한 응분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개 경고한다. "더 이상 이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가지 말라"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중앙일보와 삼성의 특수관계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중앙일보가 언론이라면 이해관계를 떠나 '제기된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을 주장해야 한다. 이것은 신문사의 논조나 편집방향과 상관없는 최소한의 수준이다. 조선일보 조차 사설을 통해 엄정수사를 촉구할 정도이다.

상식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다면, "사제단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특검은 엄격한 수사를 진행하고, 해당자 3인과 사제단, 김용철 변호사 등은 특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사실무근이라는 삼성측이나 당사자들의 해명만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투명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당장의 고통은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상식을 저버린 중앙일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김용철과 사제단?

그러나 중앙일보는 '상식'을 저버렸다. 사제단과 김변호사의 주장을 '나라를 뒤흔드는 폭로'로 치부하고 '법적 책임'을 운운할 뿐이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출두할 때 소속 기자들이 경호원으로서 온몸으로 홍 회장을 방어한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사설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름대로 대한민국의 메이저 언론사로서 위상을 쌓아온 중앙일보는 '지금' 너무 멀리 나아가고 있고 또 극단적인 일탈의 길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도, 내부의 브레이크 장치가 없어보인다는 것이 더 큰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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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3/06 [13: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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