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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 동작그만, 장교들부터 얼차려라
육군 사고예방대책, 국방부는 호박씨를 까지 마라
 
서태영   기사입력  2003/08/19 [18:29]

뜬금없는 육군의 사고예방 대책 소식에 국방부 게시판생까는 분위기로 떠들석하다. 얼마나 어이가 없었으면 논쟁은 고사하고 성토만 난무하겠는가. 이렇게 한심한 말똥과 밥풀들이 이끌어가는 우리 육군에 사고가 잇따르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관련기사]
고참병사 횡포땐 징역형(한겨레)
병영 언어폭력 추방한다(국방일보)

▲우리나라 육군의 모습    
©국방부홈페이지
군내 사고예방 종합대책이라고 내놓은 내용을 보면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군이 구태여 사고예방종합대책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이다. 나는 육군 지휘부가 과연 군을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럽다. 고참병사가 졸병에게 횡포를 부릴땐 징계조치 강도를 높이는 것이 사고예방의 한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고참사병을 군내 문제집단으로 따돌림하는 것은 군의 야비성을 실심케한다고 하겠다.

장교들은 걸핏하면 고참사병들을 희생양 삼아서 군생활을 개혁한다고 난리를 쳐왔다. 잠잠했던 질병이 도졌나. 육군이 "장병들의 자존심과 인격에 상처를 주는 폭언과 비속어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형사입건 또는 징계처분하기 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계급이 깡패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니 사병들 입단속한다고 성기문란(!)한 군대문화가 개선된단 말인가.

육군은 사병들의 입단속에서 빈발하는 사고예방을 획책했다. 사병들의 입 안이 사고의 진원인가 보다. 창군 이래 언어폭력, 진심부름, 얼차려는 누가누가 더 남용해왔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스스로 개과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애꿎은 고참사병들만 사고뭉치로 낙인찍는가.

살다보면 막말도 필요하고 교양어도 필요하다. 저속어, 비속어, 은어는 국어사전도 허용한 생활언어다. 저속어, 비속어는 대통령도 금지시키지 못한 민중언어다. 그 말씀은 애시당초 지체 높으신 어르신들을 위해 생성된 언어는 아니다. 그 쫄따구들의 맘에 안드는 비속어나 저속어가 고급장교들 신상에 체면손상이다 싶으면 입에 올리지 않으면 된다. 장교들이야 고생을 덜 하니까 왜 하필 사병의 입에서 은어와 저속어, 비속어가 잉태되는지를 잘 모를 것이다.

비속어의 용도를 결코 얕잡아 보면 안된다. 때에 따라서는 '쓰벌'만한 감정해소용도 없는 것이 엄연한 사실 아닌가. 보라, 비속어와 은어란 것들이 얼마나 삶의 활력소요 생동감 있는 문장의 요소가 될 수 있는가를. 

"이놈들 덤비어라! 이 개 같은 놈들 같으니. 그래, 순이가 집이 없고 먹을 것이 없기로 너희 놈들에게 아랑곳했니? 이 도야지 새끼 같은 놈들 같으니. 내 어머니가 먹을 것이 없기로 한 놈이나 아랑곳했니? 이 죽일 놈들 같으니…….(이광수, 흙)”
  
일반적으로 비속어는 속상하거나 화날 때 심리적 쾌감을 줄 수 있고, 친근한 사이에서는 정겨움의 표현이 될 수도 있으나,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다들 위험부담을 안고 때와 장소를 가려서 비속어를 골라 쓴다. 비속어라고 막무가내로 통용되진 않는다. 금지시킬 걸 금지 시켜라.

"신병을 지칭하는 ‘신삥’ ‘쫄따구’ ‘얼라’ ‘잔챙이’와 전역이 임박한 병사를 일컫는 ‘말호봉’ ‘갈참’ ‘왕고’ ‘투고’, 직속상관들과 관련된 ‘쏘가리’ ‘쏘탬’ ‘중빵’ ‘중댐’ ‘사장님’ 등의 저속어 사용이 불허된다. 말똥(영관 계급장), 밥풀(위관 계급장), 호박씨(준사관 계급장), 어둠의 자식(현역 입영자), 신의 아들(병역 면제자), 부시맨(부연대장), 돌팔이(군의관), 딸랑이(전속부관), 주돌이(주임상사) 등 멸시성 은어도 척결 대상이다.
  짱박히다(숨다), 깨지다(혼나다), 빡세다(힘들다), 쏘다(한턱내다), 이빨까다(잡담하다), 쪼개다(웃다), 구라치다(거짓말하다), 짱보다(망보다), 개목걸이(군번줄), 개구리(전역병) 등의 비어 사용도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 " <한겨레 김성걸 기자>

육군은 엉뚱한 처방을 내렸다. 그런다고 국방부의 문민화 조치라고 추켜세워줄 사람은 없다.국어학자 남기심 교수도 국어가 오염된 까닭을 "한자어의 유입, 서구 문물의 유입, 일제의 36년간 지배, 국어 순화 의지의 부족"에서 찾았지, 사병언어의 저속화에서 찾지 않았다. 육군은 사병들의 언어생활에 참견하지 말기 바란다. 은어나 비어는 표현의 또 다른 확장어이다. 군수뇌부는 언어생활에서 드러난 사병의식을 문제삼지 말고 그 생성배경을 치유하려는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언제까지 고참사병 밥말아먹고 살려는가. 군은 고참사병을 홍어좆으로 만들지 말라. 고참사병을 제대로 대우해주는 것도 중요한 사고예방대책이다. 하급사병 보호를 핑계로 내세운 부질없는 고참사냥을 당장 중단하라. 

군은 사병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줄 생각은 고려해 보지도 않고 만만한 고참사병만 문제삼는다. 고참사병을 물병장물상병 만드는 조치를 양산해내서야 어떻게 군의 기강이 바로 서겠는가. 평생 사병 따까리 둬서 제밥 그릇도 닦지 않는 상관들이 밥그릇 취합해서 닦는 것까지 간섭하는 것을 보면, 군지도자들이 얼마나 사병생활의 전통을 무시하는지 알만하다. 줄 잘못 서서 쫄따구 생활만 20개월한 예비역의 경험으로는, 집단생활을 해야 하는 현행 군복무 여건상 개인생활을 지나치게 수용한 자기 밥그릇 자기 세척조치에 그다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고참괴롭히기라고 밖에 안보인다. 아마 당나라군대도 자기의 밥그릇을 스스로 닦아야 한다고 권장하진 않을 것이다. 

육군의 사고예방 종합대책은 기초공사가 부실하다.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하기 바란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대장위에 병장, 분대장 있었다. 그 터전 위에서 군은 발전해왔다. 군은 아직도 사병을 졸로만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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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8/19 [18: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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