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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친일, 도덕적·법적 책임없나
복거일씨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대한 비판
 
김민철   기사입력  2003/08/18 [11:18]

예의상의 인사치레는 그만 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 21세기의 친일 문제/ 복거일 저     ©yes24
최근 복거일씨는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서 친일파를 변호하기 위해 두 가지 길을 택한다. 하나는 정공법으로 친일파 문제를 직접 다루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불리는 경제사 분야의 연구 성과 등을 도입하여 우회적으로 친일파를 변호하는 방식이다.

후자는 다소 뜻밖인데, 내가 이해한 그의 논리구조는 이렇다. “일본의 식민 통치가 괜찮은 편이어서 조선 사람들이 견딜 만했다면, 따라서 친일 행위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어렵다.” 도대체 식민지 근대화론과 친일파 변호론이 어떤 논리적 상관성을 갖는지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서로 다른 분석 범주를 연결시켜 놓고 논리의 비약을 하고 있다. 마치 조선 왕조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는 일과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한가를 따지는 일을 연결시켜 설명하는 잘못을 범하듯이.

복씨는 식민지 시기를 보는 기존의 인식을 비판하면서 그 동안 조선의 인구가 2배로 증가했다는 통계를 증거물로 자신있게 내놓았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인의 생활을 향상시켰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인용돼온 이 유명한 설명은 잘못된 통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근거로 든 1910년의 통계(조선인 인구 1300만명)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남녀의 구성비가 여자 100 대 남자 113으로 매우 불균형이다. 즉 여성이 통계에서 누락됐음을 말해준다.

둘째, 비교적 통계의 신뢰성을 인정하는 것은 1925년의 간이국세조사 이후부터이다. 따라서 정확도가 높은 통계를 기준으로 식민지기 인구추이를 정리하면 1910년을 100으로 했을 때, 1945년은 144로, 즉 44%의 인구증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증가율은 복씨의 이해와는 달리 일본 49%, 대만 88%(1905년 기준)와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일제가 ‘선정(善政)’의 근거로 든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없었다. 따라서 복씨의 논법대로, 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서 “조선사람들은 상당히 잘 살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셈이다.

이제 정공법으로 가보자. 복씨는 이렇게 말한다. 친일 행위들은 정의하기 어렵고 적용하기는 더 어려운 역사적 사건들이다. 우리는 친일파를 기소하고 재판하고 처벌할 법적 도덕적 근거를 충분히 지니지 않았다.

설령 근거를 가졌다 해도 지금 와서 단죄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안된다라고. 과연 그런가. 우선 친일 행위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적용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이 문제를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한다. 어디까지를 친일 행위라 할 것이며, 그 기준은 무엇인가는 여전히 우리를 괴롭힌다. 특히 친일 행위가 강요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아직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복씨의 주장처럼 강요된 상황에서 나온 친일 행위라면, 그들에겐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책임이 없는 것인가. 사람이 구조나 시대의 제약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으며, 자유의지에서 나온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두 가지는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사람의 모든 행위를 조건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위를 비판해야할 기준도, 이유도 가질 필요가 없다.

또 하나는 지위(영향력)와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특히 지식층이나 식민통치의 중추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주로 해당된다. 권한과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만큼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왜 복씨는 책임에 대해서만 무한정 관대한가.

우리는 물론 식민지로부터 자유롭다. 그렇다고 해서 ‘늦게 태어난 자의 권리’로서 친일 행위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만일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엄중한 가능성 속에서 친일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설령 우리에게 친일파를 비판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해도 친일행위를 규명하는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다. 과거의 잘못된 행위를 밝혀내 왜곡된 역사를 제자리로 갖다 놓아야 최소한 공정하게 평가할 근거라도 마련할 것 아닌가.

친일 문제를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역사가의 몫으로 돌리자는 복씨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논의를 3류 수준으로 떨어뜨리지는 말자. 복씨가 친일파를 변호하는 참 목적이 체제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대목에 이르면 허탈해진다.

더구나 친일 문제보다는 독립운동 연구에 그 정력을 쏟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주장에 이르면 고민의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식민지 인식과 친일 문제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담론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복씨가 왜 갑자기 타협하고,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가. 이제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http://minjok.or.kr/) 연구실장· 경희대 겸임교수입니다.
* 본문은 문화일보 8월 13일자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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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8/18 [11: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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