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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선의 공식, 범여권이 사는 길은 있다
[논단] 미래를 담보할 발전전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승리해법
 
이태경   기사입력  2007/07/22 [22:10]
범여권이 대선후보 선출 방식과 통합의 수위를 둘러싸고 갑론을박하고 있다. 그러나 범여권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논의는 유권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는 데는 철저히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대한민국 유권자들과 언론들의 관심은 온통 한나라당 빅2-이명박과 박근혜-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검증공방에 쏠려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 소속 이명박 예비후보와 박근혜 예비후보의 지지율의 합이 거의 70%에 육박한다. 반면 범여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보들 가운데 지지율 10%를 넘는 예비후보는 단 한명도 없는 실정이다.

범여권 입장에서 한결 상황이 나쁜 것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범여권 예비후보 가운데 어느 누구도 국민들로부터 한나라당 빅2의 대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범여권의 예비후보 가운데 여론시장에서 한나라당 빅2에 필적할 만한 소구력을 갖춘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쯤 되면 범여권 내에서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각종 논의들이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국민들은 범여권의 통합 방식 및 경선 규칙 논의를 기껏해야 도토리 키 재기 방식을 둘러싼 소란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관객들은 공연에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무대 위의 배우들만 흥분하고 있는 격이다.

이 같은 국민들의 무관심과 냉소를 아는지 모르는지 범여권 내의 예비후보들과 정치세력들은 대선승리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동상이몽하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믿고 감히 대선승리를 꿈꾸는 것일까?

현실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현실인식

추정컨대 범여권 내의 예비후보들과 제 정파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래와 같이 생각하는 성 싶다.

1. 먼저 범여권의 제 정파들이 대통합을 이루어 통합신당을 만든다. 통합신당이 건설되면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독주하고 있는 지금의 선거구도에 중대한 균열이 생길 것이다.

2. 범여권의 예비후보들 및 시민사회 내의 명망가들이 오픈프라이머리 방식의 경선에 참여하면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3. 통합신당의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반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대한민국 유권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로 추산됨-이 급속히 결집할 것이다.

4. 대선의 특성상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한나라당 대선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는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에서 빅2 가운데 누가 대선후보로 선출되건 흠결이 너무 많기 때문에 네거티브 공세가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5. 결국 대선에서 박빙의 차이로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꺾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범여권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이런 생각은 빨리 접을수록 정신건강에 좋다. 단언컨대 범여권 내의 제 정파 간의 물리적 결합을 통한 대통합 및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의 경선 방식을 통해 선출된 대선 후보가 한나라당 빅2에 필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합리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절반가량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단순히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만으로 통합신당에서 선출된 대선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 손학규 전 지사, 김근태 전 의장, 정동영 전 의장(좌측부터)이 손을 맞잡고 있다.  ©2007 이슈아이 박항구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맹렬한 적의(敵意)거나 아니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강한 애정이다. 그러나 현재 한나라당을 대안으로 여기지 않는 유권자들 대부분에게는 위의 두 가지 요소가 모두 결여돼 있다.

통합신당의 대선후보가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선출된다한들 사정이 달라질까? 별로 그럴 것 같지 않다.

한나라당 후보를 꺾을 필승공식은?

97년 대선승리와 2002년 대선승리를 복기해보면 잘 알겠지만 기실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꺾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IMF구제금융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과 DJP연합을 통한 서부벨트 확보 그리고 한나라당의 배신자(?) 이인제가 영남표를 분산시키는 등 삼박자가 모두 들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39만표차로 간신히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격파할 수 있었다.

2002년 대선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후보는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확보한 상태에서 행정수도이전 공약을 통해 충청을 석권하고 자신의 출신지인 영남에서 상당한 득표를 함으로써 가까스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유권자들의 위기의식도 노무현 후보에게 큰 도움이 됐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자신의 지지표를 최대한 결집시켰다. 단순화해서 표현하자면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충청, 정치적 성향측면에서는 진보와 개혁성향 유권자들을 대거 투표장으로 불러 모은 것이다.

둘째 외부조건이 우호적이었다. 97년 대선 당시에는 IMF 구제금융 사태라는 변수가, 2002년 대선 당시에는 한반도 위기 상황이 각각 유리하게 작용했다.

셋째 한나라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영남표가 분산됐다. 위에서 설명한 두 가지 요소-지지층의 결집 및 우호적 외부조건-은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물리치기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위의 두 가지 요소만 가지고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 승리를 거두기 어렵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꺾을 수 있는 충분조건은 바로 한나라당의 아성이자 최대 지지기반이라 할 영남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느냐이다.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에게는 이인제 후보가 영남표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고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노무현 후보 자신이 영남표를 효과적으로 분산시켰다.

결국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범여권의 대선승리 공식을 정리하면 '호남+충청+수도권'의 진보개혁세력+영남의 진보개혁세력>보수세력+영남패권주의 정도가 될 것이다. 2007년 대선이라고 이 공식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물론 범여권이라고 해서 이런 필승공식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공식을 현실에서 구현하기가 난망하다는 점이다.

범여권의 강력한 지지기반이 돼 줘야 할 호남과 충청, 진보개혁세력은 구심점을 잃고 흩어진 상태이고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우호적 외생변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반해 좌파정권(?)의 종식을 열망하는 수구세력 및 영남패권주의자들의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견고하기 이를 데 없다.

범여권에게 상황이 한결 나쁜 것은 이인제 학습효과로 인해 한나라당의 빅2 가운데 일인이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을 뛰쳐나가 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발전전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해법

한 마디로 범여권은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게 절박할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 시점에서 범여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호남, 충청, 수도권의 진보개혁세력 및 영남의 진보개혁세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잡한 정치공학에 의지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범여권이 호남, 충청, 수도권의 진보개혁세력 및 영남의 진보개혁세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보할 발전 전략을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길 뿐이다.

즉 참여정부에 실망한 나머지 자포자기 심정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는 과거의 지지자들과 냉소적 방관자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이를 실행할 구체적인 프로그램인 것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타박할지 모르겠지만, 대선에 임한 범여권이 가진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수는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명확한 비전과 이를 실행할 구체적 프로그램뿐이다.

물론 범여권이 기존의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하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이는 범여권의 대선승리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임에 분명하다. 대선승리를 위한 교두보가 확보된 이후에야 한나라당의 실수에 편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긴다.

어쩌면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치명적 흠결들이 유권자들의 윤리적 미감을 크게 거슬러 범여권에 뜻밖의 승리를 안겨 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지닌 결함들은 한나라당이 유권자들에게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후에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저자 이태경씨가 대한민국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 『한국사회의 속살』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세계 등 4개 분야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국학술정보, 2007
대선은 무엇보다 미래를 향한 유권자들의 선택임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시킬 명확한 비전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이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수용될 때 대선후보의 윤리적 흠결들은 묻히기 십상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추후 범여권이 취해야 할 행보도 분명해진다. 통합 논의를 신속히 매듭지어 통합신당을 만든 후 유권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국가 발전전략 및 정책비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만약 범여권이 이렇게 움직인다면 위기의식을 느낀 한나라당도 보다 나은 국가 발전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니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건 국민들에게는 큰 유익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범여권은 어설픈 정치공학이나 상대방의 실수에 의지해 대선에서 승리할 생각을 버리고 대한민국을 총체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발전 전략 및 정책비전을 구상해야 할 것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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