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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대체 누가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는가?
[진단] 노태우의 6.29선언과 이명박 신화, 이명박은 87년 체제의 막차다
 
정효동   기사입력  2007/07/10 [16:27]
선거철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위’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싸움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쯤에서 이제 ‘아래’를 보는 시선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그렇다고 해서 ‘위’를 바라보는 것을 필자는 죄악시하지는 않는다. 필자도 필요에 의해서 ‘위’를 보는 재미에 나름대로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근본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다. “지금 도대체 누가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는가?” 필자는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자주 취해왔기 때문에, 이 질문에 관해서도 필자의 시선은 과거로 향할 수밖에 없다. ‘현재’를 가능하게 만든 ‘과거’를 한번 뒤적여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대자보>에 기고하는 형식으로 ‘과거’를 박물관 속에서 꺼내오는 일을 자주 시도해본 적이 있다.
 
87년에는 의미심장한 두 가지의 기념비적 역사가 있었다. 6.10 민주항쟁이 그 하나라면,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또 하나의 기념비적 역사에 해당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기념비적 역사의 교차로에 노태우의 6.29선언이 가로놓여져 있다. 필자가 이 두 가지 기념비적 역사를 계급 대립적 관점에서 독해한다는 사실은, 필자의 글을 자주 접해본 독자라면 이제는 꽤 익숙한 일로 되었을 줄로 안다.
 
그렇다. 필자는 87년을 단 한번도 ‘미완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이 땅의 소(小)부르주아 계급은 노태우의 6.29선언에 환호했으며, 그 직후에 벌어진 노동자 대투쟁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보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동참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87년 시민혁명은 이 땅의 소(小)부르주아 계급의 입장에서는 이미 그 자체로 ‘완결적인’ 것이었다. 더불어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있어서 87년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호사가는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있어서야 말로 87년이 ‘미완의 혁명’이 아니겠는가 하는 식의 ‘함세웅’류의 수사를 동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정면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땅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관한 한, 87년이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주지 못했다면, 그것이 미완이든 아니든 간에 ‘혁명’이란 수사를 가져다 붙이기에는 곤란하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수사학을 구사하는 주체를 잘 관찰해 보기를 바란다. ‘미완’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야말로 김대중과 노무현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정치적 트릭이 아니겠는가?
 
노태우의 6.29선언에 환호했던 ‘중간 계급’들의 수사학이 이른바 ‘미완의 혁명’이란 것이었다. ‘미완의 혁명’이란 간단한 수사학 속에서 우리는 계급 연합적 태도를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낼 수가 있다. 함세웅은 그 얼마나 지독한 중세의 수사학자였던가?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과 맞서 싸운다는 명분으로 제출된 ‘미완의 혁명’이란 수사는 노동자, 농민, 빈민을 포함한 서민들의 권력을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의 상승을 욕망하는 명망가 소(小)부르주아지들에게 안겨다 주었다. 소(小)부르주아지 애벌레들은 대(大)부르주아지 나비로의 상승을 끊임없이 욕망해왔다. ‘미완’은 이 땅의 모든 소(小)부르주아지들이 대(大)부르주아지로 상승할 때에만 그 ‘완성’이 가능한 일로 될 것이다. 자! 여기가 바로 로두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보라!
 
로두스 섬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는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높이 뛸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이 높이뛰기의 욕망이 잉태한 괴물이 바로 노무현과 이명박이다. 노태우의 6.29선언에 대한 환호가 지금은 이명박에 대한 환호와 지지로 연결되고 있다. 이른바 지역적으로 소외받지 않는 수도권의 ‘중간 계급’이 아직까지도 이명박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다. 그들이 자기 욕망을 이명박에게 투사하는 것도 이 정도쯤 되면, 이미 지나친 몰입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그대들이 고독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고 외치는 것은 그대들의 익숙한 습관이다. 20년이나 묵은 습관이라면 ‘익숙하다’는 평가가 ‘적절하지 않다’고 함부로 필자를 타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외로움이 지나치게 지루하고 권태롭지 않았던가 하는 질문을 필자는 던지고 싶다. 이명박이 위태위태하다. 이명박이 추락한 직후에, 어쩌면 그대들은 운명적으로 그대 ‘로빈슨 크루소’들이 벗할 ‘프라이데이’를 찾아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명박은 ‘미완의 혁명’이라는 수사학이 만들어낸 마지막 괴물이다. 87년 체제의 종착역에서 그대들은 이명박이라는 신화를 가공해낸 것이다. 이명박이 사라지고 나면, 87년 노태우의 6.29선언에 환호했던 그대들의 유흥도 끝이 날 것이다. 87년 체제는 지난 20년 동안 ‘이미 완결된’ 채로 그 감가상각이 진행되어 온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중간 계급’은 더 이상 민주노동당의 표를 ‘리스’하지 못할 것이다.
 
필연적으로,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은 그대들을 향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선언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을 향해 높이뛰기를 하는 그대들의 관성적인 상승 욕망이 과연 제대로 충족될 수 있을지를 필자는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필자는 민주노동당을 향한 ‘하방’(下放)의 길도 열려 있음을 상기시켜 두고 싶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그대들에게 보장해줄 수 있는 것은, 다만 ‘프라이데이’라는 사람의 살가운 냄새 밖에는 없을 듯하다. 자! 이것이 문제의 조건이다. 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여기서 뛰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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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10 [16: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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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 2007/07/12 [21:39] 수정 | 삭제
  • 가끔 난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글에서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노동자와 서민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점은 왜 민주노동당이 그토록 사랑하는 노동자와 서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수 인텔리겥챠와 상층노동자의 당으로만 남아 있는 지를 이해하는 한 대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뭏튼 글 내용은 좋네요.
  • .... 2007/07/12 [02:35] 수정 | 삭제
  • 제목으로는 눈이 번쩍 뜨일만큼 제가 궁금해 하던 내용인데
    실 내용이 뭔지 잘 안와닿네요. 조금 현학적인 것 같기도 하고..
  • neung1an 2007/07/11 [07:16] 수정 | 삭제
  • 이른바 '진보적'이라구 자신을 치장한 부르주아 이론가들과...
    제가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대목을...
    저는 제 아랫글에서 다시금 '선명하게' 부각시켰어요...
    이 대목은 제가 수없이 반복적으로 제기한 적이 있지만...
    아직두 제대로 이해되구 있질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시... 맑스의 용어를 빌자면 이런 거죠...
    변호론적인 부르주아 이론가들은 그 자신을 아무리 '진보적인' 껍질로 포장한다구 해두...
    결국은 '환상적 현상형태'에만 주목하구 있죠...
    그래서...
    그들은 이런 가정을 항상 전제로 깔구서 얘기를 시작하죠...
    87년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의 껍질에다가 '내용적' 민주주의의 알맹이를 채워넣어야 한다구 말이예요...
    지난번 노무현이 촉발시킨 진보논쟁에 가담했던 거의 모든 부르주아 이론가들이 이런 전제를 깔구서 얘기를 시작했죠...
    맑스는 이를... '환상적 현상형태'만 본 것으로 단언하구 있죠...
    그래서... '그 배면의 숨겨진 구도'를 봐야된다구 맑스는 얘기를 했구요...
    해서요... 맑스의 역사철학적 입장을 따라가면서 설명하면 이렇다는 거죠...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그 완성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소멸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예요...
    87년 시민혁명은 87년 6월 29일을 기점으로 해서...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그 엔트로피가 증대되면서 소멸의 길을 걸어왔다는 얘기죠...
    그 때문에...
    제가 아랫글에서 '미완의 혁명'이란 수사학에 대해서 문제를 삼은 거구요...
    맑스는 '자본론'의 '절제설'이란 대목에서 이 부분을 아주 상세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죠...
    그러니까...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방어적으로 되구 수세적으로 될 경우에 등장하게 되는 대단히 전형적인 수사학이 바로 '미완의 혁명'이란 수사학이란 얘기예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껍질에다가 내용적 민주주의라는 알맹이를 채워넣을 수 있다구 주장하는 것 자체가...
    맑스의 표현을 빌자면... 변호론적 이론가들의 협잡에 불과하다는 얘기예요...
    바로 그 때문에...
    제가 수차례에 걸쳐서 최장집류의 사이비 이론가들과 우리 민주노동당이 철저하게 단절해야 한다구 자주 말씀을 드려왔던 거구요...
    그들 변호론적 협잡꾼들은...
    타락한 부르주아 사회의 유지와 보수를 위한 이론들을 창작하구 발명하는 한 전형을 이루고 있죠...
    시민계급이 주체가 된 앙시엥 레짐은 폭파되어야 하는 거랍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부르주아 계급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전유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87년 체제는 87년에 완성된 것이예요...
    그 다음부터는 끊임없이 조락의 길을 걸어왔죠...
    자그만치 20년 동안이나요...
    물구나무를 서서... '그 배면의 숨겨진 구도'를 보면...
    자그만치 20년 동안이나 보다 더 근본적이구 광범위한 새로운 혁명이 준비되어 왔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겠죠...
    그 때문에... 맑스는 변호론적인 협잡꾼들의 이론을 '비과학적'이라구 질타하는 것이구요...
    그들은 87년 체제를 '최종적인' 역사철학적 형식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역사' 자체를 '상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구 있는 것이랍니다...
    맑스가 '비과학적'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었죠...
    다만... 그들 스스로가 '비과학적'이었기 때문에... 맑스를 손쉽게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해버리구 말았던 것이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87년 6월 29일을 기점으로 해서...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진보적이지두 않았구...
    또 더 이상 진보적일 필요조차두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



    시민계급의 입장에서는 지난 20년이 끊임없이 후퇴하는 시간이었겠지만...
    새롭게 성장하구 있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거꾸로죠...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변혁의 에너지를 축적해오구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 까닭에 저는 '진보의 위기'라는 변호론적 협잡꾼들의 진단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던 거구요...
    다만... 보수적인 시민계급의 위기였을 뿐이었죠... ^^


    이번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습관적으로 비관적인 전망을 제기하구 있는 사람이 만약 자기 주변에 있다면...
    그의 계급의식을 한번 쯤은 의심해볼만 하죠...
    그는 아마두... 위장이 든든한 사람일 거예요...
    위장이 든든하면... 마음의 불안이 생겨나는 법이니까요... ^^



    ---------------------------


    세상이 붕괴될때의 얘기야...
    어떤 사람이 떨어지면서 계속 자신에게 타일렀데...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어떻게 떨어지느냐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건 착륙이야.....

    - 영화 중에서...





    댓글에서... '아랫글'이란 제가 대자보에 투고한 본문을 얘기하는 거예요... ^^


  • neung1an 2007/07/10 [21:15] 수정 | 삭제
  • 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하지만 가끔 싫증을 느끼지...
    영원한 시간속에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
    내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고 싶어...
    부는 바람을 느끼며 "지금"이란 말을 하고 싶어...
    지금...
    지금....
    아이가 아이였을 때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나는 왜 나이고 네가 될 수 없을까?...
    나는 왜 여기에 있고 우주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언제부터 시간이 있었고 또 그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 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