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있는 시립도서관 정기간행물실을 들를 때마다 담당 직원이 책을 제 자리에 꽂거나 좌석을 정리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가 붙박이처럼 앉아 있는 곳은 자신의 자리였고, 무엇을 하는지 늘 컴퓨터에 눈이 붙들려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걸 보아 일하고 있다고 보이지는 않았다. 업무 시간에 딴 짓을 하는 것이 분명한 이런 공무원들의 존재는 여러 지방자치단체로 퍼지고 있는 '무능 공무원 퇴출'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무능 공무원 퇴출'은 공무원들의 몸에 밴 무사안일과 보신주의에 태생을 두고 있기 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사기업에서 일반화되었던 인원 감축을 통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더 관련이 있다. 구조조정은 효율성을 드높이는 경제적 합리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지만, 효율이니 합리성이니 하는 것이 돈을 줄이자는 말일진대 이윤을 내는 기업이 아닌 공공조직에다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공조직에 구조조정은 무리 겨울철마다 지자체에서 일 없이 보도블록을 바꾸는 것과 달리 예산 낭비가 분명하다고 볼 수 없는 일도 적지 않다. 효율을 따지자면, 저소득층 지원도 돈 안 되는 낭비에 지나지 않으며, 회의나 논의도 많을수록 비생산적일 것이다. 최고의 효율을 낳으려면 지방자치단체장 혼자 모든 걸 결정하고 밀어붙이면 된다. 민주주의는 본디 경제적 효율성과는 담을 쌓은 제도이다.
'무능 공무원'은 어떤 잣대로 판가름할 수 있을까. 도서관에서 인터넷 서핑에 열중하는 직원만 무능한 건 아니다.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으나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벌이는 공무원은 예산만 까먹고 있으니 유능하다는 평가를 얻기 힘들 것이다. 인사권자인 자치단체장의 눈 밖에 나는 일을 추진하는 것도 어려워진다. 열린 사고가 들어앉을 자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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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의 인사정책을 풍자한 그림판 ©대자보 김철관 |
그래도 굳이 퇴출이 필요하다면 업무에 책임이 큰 실·국장 등 간부급 공무원부터 도마 위에 올리는 게 순서이다. 권한은 없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소화해내는 데 급급한 하위직의 직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 않다. 잘 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반면 흠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에서 퇴출당한 공무원들은 대부분 하위 비정규직에 몰려 있었고 여성이 많았다.
딴 짓하는 공무원, 재교육으로 공무원이 정년까지 '철밥통'을 갖는다 하여 취업난 시대에 비웃음과 질시를 받고 있지만, 국민에게 봉사하는 직업에는 충분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무원이 일을 잘하도록 만드는 동인은, 자칫하면 잘릴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강도 높은 스트레스, 고양이와 쥐를 방불하게 하는 인사권자와의 관계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자존심과 긍지에 있다.
자긍심을 기르는 데는 노동조합 같은 자주적인 조직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밀린 건강보험료의 분할납부를 요청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 들렀을 때, 의기소침하던 마음은 노조 복장을 차려 입은 직원들을 보자 풀린 적이 있다.
과거에 공무원의 신분 보장은 독재정권이 하수인으로 길들이기 위해 필요했지만, 지금은 의미가 달라졌다. 국민이 공무원에게서 상전대우를 받으려면 직업적 안정을 보장해 주는 것이 불가피하다. 공무원이 모셔야 할 대상은 단체장이나 정부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라는 점에서, 공무원 퇴출에 90%가 넘는 찬성 여론이 나왔다는 소식은 좀 어이가 없다.
솎아내기 보단 봉사토록 공무원이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아 할 말도 못하고 스스로 위축하게 만들고 노조 활동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공무원이 원성을 듣게 만들었던 무사안일과 태만, 눈치 보기라는 구태를 되레 키워주는 것일 뿐이다.
지자체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는 '무능 공무원 퇴출' 운동은 새내기 단체장들의 손쉬운 조직 장악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무능 공무원은 솎아낼 일이 아니라 시민에게 엎드려 봉사하도록 철저하고 혹독한 재교육이 앞서야 한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
http://www.dominilbo.co.kr) 3월 28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