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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 언론사주의 천국이 된 대한민국
[언론시평] 족벌사주가 장악한 언론사, 언론의 기능 마비시키며 여론왜곡
 
양문석   기사입력  2007/03/02 [20:31]
1999년 9월 30일, 중앙일보 기자들은 “사장님 힘내세요!”를 열창한다.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이 탈세혐의로 대검찰청에 소환되는 날. 중앙일보 기자들의 “사장님 힘내세요!”는 2005년 7월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 사건에서 더욱 유감없이 발휘된다.
 
당시 중앙일보는 ‘X파일’에 대한 기사를 167건을 보도했고, 중앙일보의 수치는 조선일보의 148건, 경향신문 138건의 보도 보다 많은 수치이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167건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119건이 ‘도청의 불법성’을 겨냥한 기사였으며, 홍석현 전 사장이 나오는 ‘도청 내용’에 관한 기사는 12건에 불과하다.
 
‘도청 내용’을 보도한 기사도 도청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홍석현 사장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X파일’ 사건 논의에서 홍석현과 이학수의 야합이라는 내용을 거세시키고, 홍석현과 이학수를 대변하는 대변지로써의 그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위 가치로 상위 가치를 뒤집어엎는 가치전복이다. 백번 양보해서 ‘도청의 불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의 가치를 뒤엎고 국가권력을 돈으로 매수하려고 한 행위가 훨씬 더 심각하고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는 아주 집요하게 도청의 불법성만 집중 부각시키며 ‘국가권력 매수기도’라는 사건의 기본 성격을 왜소화시키며 비본질적인 문제로 주변화한다.
 
1991년 부산의 어느 복집에서 있었던, 소위 ‘초원복집사건’을 복기해 보자. 전 법무부장관 김기춘과 부산시내 주요 언론사주 및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대통령후보를 위한 불법적인 선거대책회의를 한 사건이 폭로되자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입을 모아 ‘누가 도청했는가?’에 논의를 집중시키며, 그 자리에서 나온 온갖 쌍욕과 지역감정유발 발언을 철저히 뭉개버린다.
 
‘YS 언론장학생들’이 벌인 한국 대통령선거 사상 가장 악랄한 여론조작사건으로 기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의 후배기자들은 선배들의 그 ‘악취 가득한 전통’을 금과옥조인양 ‘추억의 사건’으로 회자하며 그 보도태도를 전승시키고 있다. 한데 하물며 YS언론장학생도 아닌 중앙일보 편집국 간부들의 주군 홍석현이 걸린 사건인데, 왜곡하고 조작하는 일은 충성심의 표현이요 상 받을 일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는 없겠지.
 
한국언론들, 특히 사주와 사주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이런 식이다. 특히 긴박한 정치상황에서 사주가 지지하는 특정후보의 문제가 걸리면 특정후보에 대한 일방적이고 노골적인 지지의사를 밝히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사주의 개입이 부분적으로 드러나면 전혀 다른 사건을 폭로하며 사주관련 사건을 묻어버리거나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주의 문제를 지엽적인 문제로 바꾸며 지엽적인 문제를 핵심적인 문제로 재가공하는 ‘핵심과 지엽의 교체를 통한 여론조작’을 능숙히 구사한다.
 
앞서 언급한 X파일 사건이 전형이다. ‘이건희-이학수-홍석현’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커넥션과 더불어 홍석현을 정점으로 한 중앙일보의 하부 수직적 커넥션은 결국 언론의 기능을 마비시키며, 그 속에서 언론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기자들의 양심을 짓밟아 결국 공범으로 변절시키거나 쫓아내 버리는 ‘주종의 논리’가 얼마나 튼실하게 구조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주의 의한 언론의 장악은 최근 시사저널 사태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는 사장이 나서서라도 막아라.’ 시사저널 사태의 핵심이다. 여기에 반항하면 직장폐쇄를 당하고, 무기한 정직처분의 징계를 당한다. 기사에 기자이름을 걸고 책임을 지는 기자의 양심이나 언론으로서의 가치는 의미 없다. 
 
▲ 삼성 언론통제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펜은 돈보다 강하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대자보 김한솔

삼성과 삼성의 계열사를 자처하는 몇몇의 매체에서 기자는 기자가 아니라, 홍보팀 직원이다. 중앙일보의 ‘사장님 힘내세요!’처럼 스스로 기자 자신이 홍보팀 직원이 되기를 바라거나, 시사저널 사태처럼 사장이 홍보팀 직원으로 행세하며 외려 기자들을 징계하거나 직장을 폐쇄한다. 사주도 아닌 고용사장이 편집권 독식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편집권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기자들을 헌 고무신 내던지듯이 회사 밖으로 내버리는 행위. 이것이 바로 사주를 정점으로 한 ‘주종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직적 커넥션 구조에서 살아온 시사저널 사장 금창태의 평생 배운 도둑질이요, 다른 언론사 사장으로 가서도 변하지 않고 노출된 대표적인 ‘철학적 사건’이다. 당연히 그 철학은 ‘주종의 논리가 지배해야 하는 언론’이고.
 
기자의 양심이니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경험하지 못한 금창태가 시사저널 기자들의 ‘양심과 가치’가 얼마나 같잖아 보였겠는가? 언론매체는 사주와 사주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주종의 논리’에 푹 젖어 산 금창태로서 사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대광고주 삼성의 심기를 건드리는 기사’를 인쇄소에서 삭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며 사주로부터 상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유독 중앙일보만 그러한가?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사실한 신문의 소유자 확정된 신문의 경우는 마찬가지이다.
 
조선일보는 방우영회장 일가가 전체 주식의 75.93%, 방일영 문화재단이 1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동아일보는 김병관 회장일가가 40.4%, 재단법인 인촌 기념 사업회가 24.4%, 일민문화재단이 11.9%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일보도 장재국 회장일가가 49%, 장중호 일가가 31%, 백상재단이 19.8%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의 대부분이 족벌 신문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조선일보의 방상훈, 동아일보의 김병관 등이 세금포탈 횡령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아도 이들은 보도하지 않는다. 아니 보도해도 독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지면배치가 아닌 시선의 사각지대에 한 두 줄의 기사만 달랑 내 보낸다. 한 두 번이 아니라 상습적이기 때문에 분석 자료를 제시하고 싶은 의욕마저 없어진다.
 
족벌소유구조. 이것이 바로 사주의 성역을 만들게 하는 동력이요, ‘주종의 논리’를 구조화시키고 영속화시키는 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권력은 자본에서 나온다. 
 
1999년, 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로 있다가 ‘사장님 힘내세요!’를 참지 못하고 중앙일보를 제 발로 나오면서 붙인 기자 오동명의 대자보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내 재산을 잃어버리더라도 중앙일보만 가지고 있으면 돼. 정권이 바뀌는 2∼3년 후에  보자”
 
당시 홍석현의 탈세에 대해 국세청에 조사가 시작될 무렵 홍석현이 간부들에서 한 이야기라고 한다. 홍석현의 오만은 기본적으로 중앙일보라는 언론권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향력 있는 매체를 소유하고 기자들을 펜을 운용할 능력을 지닌 ‘개인’, 홍석현은 X파일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대통령을 만들기도 하고, 정치권력과 놀아나기도 하며 삼성그룹의 홍보실보다 더욱 뛰어난 홍보를 활동을 하기도 한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10대 전국지의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신문들이다. 판매부수와 유가부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세한 경영 여건을 알 수 없지만 신문산업의 하향세와 함께 대부분의 전국일간지들의 적자경영을 감안할 때 엄청난 적자경영이 뻔한 신문사들이다.
 
그런데 왜 유지하고 있을까? 국민일보는 순복음교회에서 세계일보는 통일교 (현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언로로써 유지되고, 존재하고 있는 것. 다른 모든 매체에서 무시하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기사는 세계일보에서만 찾아볼 수 있고, ‘순복음교회 성지순례단’ 소식은 국민일보에만 있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에서는 기사를 검색해보면, 세계일보는 통일교, 문선명,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관련소식이 일주일 동안 2.2건 정도가 검색이 되고, 국민일보는 순복음교회 관련 소식이 3.4건. 문선명이 강연만 해도 기사가 되고, 순복음교회에서 인사이동만 있어도 기사가 되는 것이 이들 신문의 현실이다.
 
지역신문으로 눈길을 돌리면 국민일보와 세계일보가 종교재단의 소식지 역할은 애교수준이다. 지역자본의 대부분은 건설자본이고, 건설사들은 지역개발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설사주-지역신문경영진’으로 이어지는 상부커넥션과 경영진을 정점으로 엮어지는 하부커넥션의 ‘주종의 논리’로 인한 문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운림온천개발’과 관련한 광남일보(현 호남신문)와 광주매일신문과의 싸움. 광주매일이나 호남신문은 자기네 신문의 모기업인 금강기업이나 청천가든 등의 이해를 직접대변하며 일대 격전을 자처한다. 특히 광남일보는 운림온천개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광주사회조사연구소의 여론조사결과까지도 왜곡시키면서 모기업인 금강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
 
방송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최근 귀뚜라미그룹이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대구방송 주식의 법적 소유 상한선을 위반했다는 강력한 의혹이 손봉숙 민주당 의원에 의해 제기되었다. 현행 방송법은 소유 상한선을 30%로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적 상한을 넘기면서까지 편법으로 방송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매체를 장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매체에서 벌어드리는 돈 이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구방송 보도. 대구방송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본이 언론을 장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지난 십 수년 간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했다. 중앙일보나 시사저널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자나 편집국의 양심으로써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제도적인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것은 소유지분제한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걸지 않고 지금처럼 한 가문에 의해서 여론시장 자체가 장악되는 구조에서는 앞서 언급한 언론이 언론으로서 역할을 포기하고, 특정 가문의 마당쇠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여론왜곡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영원한 군주로서 사주 가문이 존재하는 이상 언론인들은 ‘주종의 논리’에 포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주의 천국은 영원무궁토록 존재할지어다.

* 글쓴이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입니다.
언론학 박사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대자보 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블로그 : http://yms7227.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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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3/02 [20:3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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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7/03/06 [19:38] 수정 | 삭제
  • 하루 속히 오길 바랄뿐입니다.

    글 시원허이 잘 쓰셨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ㅋ
  • 광화문 2007/03/04 [20:40] 수정 | 삭제
  • 님의 언론관을 바꾸면 됩니다.

    뭐...언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리시면 좀 더 자유롭게 되지 않을라나?

    언론에 너무 거창한 것 기대하는 것 아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