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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악의 다섯 개 도시 이야기
[비나리의 초록공명] 제일 살기 나쁜 도시는 용인, 살기 좋은 곳은 강릉
 
우석훈   기사입력  2007/02/05 [17:50]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 초에는 공간경제학에 관한 책을 내려고 했었다. 진짜 계획대로라면...

작년에는 생태경제학 이론을 정리하고, 올해는 공간경제학을 정리하고... 조직론과 문화경제학 순으로 정리해서 올해까지는 배웠던 것과 알고 있는 걸 한 번씩 하고... 그리고 진짜 평화경제학으로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몸이 아픈 사소한 부작용 때문에 일정이 이상해졌다.

공간경제학은 원래 경제학자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나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알랭 리피에츠는 공간경제학(economie d'espace) 시절에는 별볼일 없던 소장학자였는데, 여기에서 나와서 국제경제학으로 넘어오면서 조절학파라는 10년 이상 전세계를 주름잡던 새로운 경제학의 길을 열게 된다.

크루그만은 그 반대의 경우였다. 국제경제학에서 발전경제학이라는 장르가 독립하던 거의 마지막 시절에 날렸고, 세계화라는 말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만들었던 시절의 크루그만은 차마 눈이 부셔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멋있었다.

내가 세계화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들을 이해하게 된 것은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와 같은 경영학 저널에 실린 크루그만의 입을 통해서였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루그만이 한국 경제와 박정희의 유신경제에 대한 긍정적 평가 정도만 뒤져서보지만 세계화에 대한 크루그만의 90년대 초반의 해석들은 그야말로 insight 같은 것을 주는 일이었다. 내가 첫 번째 발간한 책은 번역서였는데, 앙드레프의 세계화와 관련된 책을 번역하게 된 데에는 크루그만을 너무 멋있게 생각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에 세계화라는 말을 YS 시절에 가지고 온 사람을 너무 재수없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던 것인데, 이 소기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그 크루그만이 90년대 후반 공간 경제학으로 옮겨갔는데, 그 뒤는 아주 비참했다. 세계화 이론을 이렇게 멋지게 설명했던 사람이 이런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의심갈 정도로...

내가 공간경제학에 집중하던 시절, 나도 아주 힘들었다. 주위에는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가득 있었고, 전두환 시절에도 잘 도망다녔던 내가 결국 벌금도 물면서 피선거권이 피선거권도 제한된 게 바로 공간경제학 하던 시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이론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경제학에서는 이걸 공간경제학이라고 부르는데,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없고, 집값 얘기하는 사람만 남아있다.

한겨레의 명랑국토부에 요즘 연재하는 얘기들은 공간경제학 공부하던 시절의 얘기들이 오히려 생태경제학 시절보다 많이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공간경제학과 가장 비슷하게 책을 쓴 사람은 박태견 전 프레시안 편집국장 하시던 분이다. 박태견 선배도 경제학이 전공인데, <참여정권, 건설족 덫에 걸리다>라는 책은 공간경제학과 가장 비슷한 시각에서 씌여진 책이다. 만약 이 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공간경제학에 관한 책을 내가 썼을지도 모르는데, 이 책도 끔찍하게 안 팔렸다... 프레시안 편집국장이 제대로 책을 썼는데도, 전혀 안 팔리는 걸 보면서 나도 기가 죽었다.

두 번 집필을 시도했었는데, 첫 번째는 정약용의 전론과 경세유표를 모티브로 쓰려고 준비를 했었다. 그래서 진짜로 경세유표와 다산의 책들을 읽고, 약간의 틀을 잡았었는데, 그 때쯤 박태견 선배의 책이 확 밀리는 걸 보면서 나도 기가 죽어서, 다음 기회에...

그리고 한 번 더 아예 교과서처럼 쓰고, 이상하게 극우파들의 아이콘처럼 댄 정약용 대신에 도시공학과 경제학을 접목시켜서 할려고 했었는데, 이 시도는 생태경제학 교과서가 수식이 너무 많다고 출간에 실패하는 바람에 역시 기가 죽어서 계속 뒤로 미루다가, 몸이 아파져서... 모르겠다...

아마 당분간 공간경제학을 다시 다루지는 않을 것 같다. 재밌기는 한데, 이걸 다시 손을 대면 공간경제학의 함정에 빠져서 개인적 삶과 나머지 이론 체계가 다 엉망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얼마 전 생각으로는 올해까지만 현실 분석을 하고, 내년에 한 해 쉬고, 그 다음부터는 경제사로 넘어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그렇게 가장 오래 유지된 왕조가 되었을까? 이 질문을 시스템 이론으로 풀면서 기업사와 연결시키는 얘기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얘기들이다.

이런 질문을 생태경제학에서는 이스터 모델이라고 부른다. 이스터 섬의 석상에 관한 비밀을 실제로 모델링 하고 수치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질문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질문에 대한 키워드를 Collapse라고 부른다. 총균세 이후로 유행하는 얘기인데, 생태계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해볼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양놈들은 돈도 많고, 학문의 층위도 튼튼하기 때문에, 이 질문을 가지고 발전시킨 것이 고생태학, 즉 고고학과 생태학을 접목시킨 것이다. 고생물학의 한 분류로 나누기도 하고, 사회생태학의 한 분류로 하기도 하는데... 하여간 스웨덴 넘들이 이걸 제일 잘 한다. 라라 크로프트 같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분야고, 우리나라처럼 학문이 약하고 진실에 대한 질문이 개값 취급 받는 나라에서는 잘 못한다. 응용? 공룡발자국 가지고 관광산업하는 것과 아주 약간 연결되지만, 그런 걸로 밥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에, 최근의 이런 멋진 연구를 보면서 침만 꿀꺽 삼키면서 부러워하는 수밖에 없는 고급스러운 분야이다.

내가 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경제사 분야이다.

언젠가는 한 번 해보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언젠가 할 수 있는 문 하나를 더 생각해보게 된다. 예를 들면, "다섯 개의 도시 이야기" 같은 것인데, 제일 살기에 좋은 도시 다섯 개, 제일 살기에 안 좋은 도시 다섯 개를 고르고, 이 도시들이 공간과 역사라는 측면에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기원과 진화과정을 찾아보는 방식이다.

그러면 공간경제학이라는 딱딱한 틀에 의존하지 않고도 원래 공간경제학에서 다룰 수 있는 얘기를 전부 다룰 수 있다.

국내 도시 다섯 개, 해외 도시 다섯 개... 이렇게 연장을 하면 얘기는 저 재밌어질 것 같다. 물론 이 얘기가 재밌기 위해서는 진짜 그 도시에 가서 살아보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볼 생각이 좀 있다.

전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 물어보나마나 쮜리히다. 어떻게 제네바를 제치고 쮜리히가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되었을까? 여기에 질문의 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 해석의 여지가 좀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강릉과 양구이다.

제일 살기 나쁜 도시... 순서대로 생각해보면,

1위. 용인.
2위. 수원
3위. 속초.
4위. 남해시
5위. 신제주.

뭐 이럴 것 같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여기에 하나를 더 고르라고 한다면, 영덕 정도?

10년쯤 지나서 나도 경험이 더 많이 생기면 이런 다섯 개의 도시 이야기 같은 걸 해보면 재밌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서승환 선생을 좋아한다.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가 공부를 할 수 있게 처음 나를 도와준 사람이 서승환 선생이고, 내가 연대 강사 시절에 나에게 불쌍하다고 책장을 준 사람이 조하연 선생이다. 서승환 선생과 조하연 선생은 둘 다 동기인데, 다른 경로로 내가 학자의 삶을 살 수 있게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도와줬던 분들이고, 사실 이 양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11년 전에 난 공부 같은 건 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돈이나 벌었을 확률이 높다. 서승환 선생은 프린스턴을 나왔고, 조하연 선생은 시카고를 나왔다...

서승환 선생을 평가하기에는 좀 미안한데, 친구 때문에 어려워진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이 양반은 지금은 이론적으로는 나와 정반대에 서 있다. 10년 전에 집값을 낮추는 일이 경제학자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정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친구들이 서강학파의 공급론자였다는 데에 사태가 10년 후 지금처럼 꼬이는 첫 번째 계기가 아니었을까... 가슴 아픈 얘기지만, 계량경제학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했던 서승환 선생이 겨우 한나라당의 "집 많이 짓자" 같은 얘기에 거드는 사람으로 이름 한 줄 올라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20년 전부터 우리 모두는 서승환 선생이 가장 머리가 좋고, 저 분이 나이를 먹으면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KBS의 경제프로에 나와서 MC를 볼 때에도, 워낙 경제학도 잘 하고, 머리가 좋으니까 좋은 일이라고 박수쳤었다...

내가 TV에 죽어라고 안 나가는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서승환 선생 때문이다.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머리도 좋고... 서승환 선생이 머리라고 한다면, 나는 불 붙이기 어려운데도 다른 방식이 없어서 사람들이 열심히 부딪혔던 이라고 한다면 딱 맞다. 부싯돌 가지고 이론작업을 한다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어려움이다. 나야말로 정신적 장애와 두뇌의 장애를 극복하면서 경제학 공부하는 셈이다 (전공을 순전히 학력고사 점수 때문에 선택한 나의 비애다).

윤발이 오빠가 유행하던 시기에 서승환 선생은 윤발이 오빠가 살아온 것처럼 생겼었고, 소아마비에도 불구하고 유도와 농구로 단련된 건장한 체격과 테너톤의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수학도 잘 했다.

TV에 나가면서 서승환 선생도 그저그런 경제학자로 전락하는 것을 보면서, 나같이 부싯돌에나 쓸 머리를 가진 사람이 쓸데없는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한 적이 없다.

그 서승환 선생이 우리나라에서는 공간경제학으로 들어가서 망한 경우가 아닐까라고 생각해보면, 공간 문제가 경제학에서 접근하기에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건설산업연구원에 간 이후 아주 평범해진 내 친구나 뭐 그런 사람들 생각하면서...

자꾸 작업가설과 함께 얘기를 풀 수 있는 소도구, 그리고 왜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서 곰곰 따져보게 된다.

내가 언젠가 공간경제학에 관한 책을 쓰게될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다섯 개의 도시 이야기" 같은 가설을 가지고 10년 간 꼼꼼하게 생각해보면, 어쩌면 공간경제학에 대한 길 하나를 열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강릉의 횟값과 서울의 횟값, 송파동의 횟값과 여의도의 횟값 이런 것들을 비교해보면, 이유가 설명되는 이유가 몇 가지가 나온다. 이런 것들에 대한 경제적 설명은 짧게 하면 두 문장이고, 길게 하면 책 한 권이다. 교과서대로 하면 임대료 차이와 "market segmentation" 두 가지만 있으면, 미시경제학의 표준 정답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 공간과 함께 공간에 깃들어 있는 "삶"의 역사성을 집어넣으면 책 한 권이 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작업가설을 몇 개 만들 수 있으면 경제학 이론이 되고, 아무런 이론 작업 없이 사례만 늘어나면 수필집이 된다.

나는 건방지게 수필집을 쓸 수 있는 문필가나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고, 경제학 이론서라면 한 번 해볼 수 있고...

3,500원짜리 오리털 파카와 15만원짜리 오리털 파카에 대한 비교...와 비슷한 얘기다. 이건 눈물 나는 얘기다. 3,500원짜리 파카를 파는 동네에는 절대로 살면 안된다. 2만원짜리 오리털 파카를 파는 곳은 아주 살기 좋은 곳이거나 그저 그런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100만원짜리 오리털 파카를 파는 곳은 정말 좋거나, 정말 나쁘거나 그렇다. 그렇지만 3,500원짜리 오리털 파카를 파는 곳은 아주 살기가 어려울 곳일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왜 그럴까?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간경제학이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3,500원짜리 오리털 파크를 파는 곳은... 용인이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픈 이야기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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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05 [17: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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