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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자'가 없는 세상, 희망도 없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진실이 ‘개값’처럼 취급받고 진실이 사라지는 사회
 
우석훈   기사입력  2007/01/31 [19:42]
"교복 대리점의 '짝퉁 교복' 판매를 고발했던 한 제보자는 아들이 교복 대리점 주인에게 살해당하는 참극을 겪었다." "(한국일보)

이 문장이 잠자던 나의 이성을 깨운다... (2007년 1월 29일. 석훈)

나는 100번쯤 본 영화가 몇 편 된다. 영화의 음악적 완성도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오스틴 파워 2편이 그렇고, 반지의 제왕이 그렇고, 스타워즈 4, 5, 6편이 그렇다. 대부도 3편 모두 100번 정도는 보았다.

▲ 담배회사의 비리를 폭로한 영화 <인사이더> 포스터    
약간 우울한 영화이지만,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론은 50번 정도 보았다. 지옥의 묵시록은 회사 다니던 시절 주말에 혼자 앉아서 술 마시면서 보는 단골 영화였다. 이젠 말론 브란도 얼굴만 봐도 술냄새가 난다.

그리고 최근에 많이 본 영화가 <인사이더>이다. 이건 작년부터 앓아서 누워있는 동안에 주로 본 영화다.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고 그리고도 또 보고 절대로 끄지 못하게 하고 있으면 얼마나 한심스러워 보일까? 아내는 내가 <인 사이더>를 죽어라고 보는 것은 금연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봐준다. 내부 고발자에 관한 이야기이고, 담배가 해롭고 담배 제조과정에 담배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 해로운 암모니아 화학물을 첨가한다는 고발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내부고발자는 철저하게 응징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미국도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벌어지게 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그야말로 사회가 전체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핸펀 번호에서 그 이름을 삭제한다. 언젠가 내가 인 사이더가 되었을 때 나를 무던히도 괴롭힐 확률이 많은 사람이다.

<인 사이더>는 그렇지만 방송에 관한 이야기이고, 과학자의 양심에 관한 이야기이고, 비록 방송을 송출하는데 성공했고, 담배회사의 유죄를 입증하는데 성공했지만, 전체적으로 착한 사람들이 실패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약간 슬프다.

알 파치노는 68세대이고, 그람시의 이론에 따라서인지 아니면 그 세대의 믿음에 의해서인지 "Sixty minutes"의 간판 PD가 되었고, 그 시절에 했던 삶의 한 그림자라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이다. 노련하고 강직한 PD이다.

정치적 신념과 정체를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호주 출신의 배우 러셀 크로우는 이 영화에서는 선량한 과학자 배역을 맡았다. 결국 담배회사의 부사장이 되면서 불의와 손을 잡으면서 괴로워한다.

일본 영화 같으면 이럴 때 "안녕, 정직한 사나이"하고 조용히 총구가 머리를 노리는데, 하여간 러셀 크로우는 살해협박만 당하고 진짜로 살해당하지는 않고, 담배회사에 대한 내부고발자가 된다.

그리고 이 프로의 방영을 막기 위한 담배회사의 작전이 시작되고, 1 라운드에서 두 사람은 패배한다.

과학자는 이혼을 당하고,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방송사에서 마련해준 호텔방에서 자폐적으로 알콜에 빠져든다. 그리고 PD는 방송 제작에서 손을 떼고 강제로 바닷가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이 두 사람이 바닷가와 호텔방에서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통화하는 장면... 난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친다 (물론 그렇게 분석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리고 2라운드가 시작된다. 2라운드에서 알 파치노는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신문사들에게 사실을 흘려주고, 결국 진행자, 우리 식으로는 MC라고 표현되는 사람을 스캔들로 몰아 날려버린다.

이 2라운드에서 진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언젠가 나의 아내가 나에게 지적한 것처럼 그래서 이 영화는 아주 슬픈 영화다. 작은 전투에서 이겼지만, 아주 괜찮은 PD 한 명은 결국 <식스티 미닛>을 떠나고, 진실이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 과학자 한 사람은 과학계에서 떠나게 된다. 물론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던 것에 대해서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라고 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KBS의 이강택 PD는 한미 FTA와 광우병으로 학자 100명 몫은 족히 했던 사람이다. 얼마 전부터 KBS 환경 스페셜로 자리를 옮겼다. 이걸 두고 말이 많은데, 본인이 아주 흡족한 상태로 지내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 이강택 PD와는 지난 여름에 여의도에서 소주 한 잔 같이 마신 적이 있고, 성공회대에서 지나는 길에 가끔 만난다. 그 심경을 잘 모르겠지만, 영화 <인 사이더>의 한 장면으로 상상을 가름한다.

MBC의 또 다른 PD 몇 명들은 황우석 두 번째 방영이 막혔을 때 만난 적이 있었는데, 몇 명은 그 전에 같이 방송한 적이 있었고, 또 몇 명은 처음 보았다... 그 때 본 사람들도 몇 번 자리를 옮기면서 요즘은 본인들이 썩 내켜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것 같다.

진짜 인 사이더였던 어느 수학자는 급기야 석궁을 들고 판사를 겨누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진화로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진화를 하는 중이다. 미풍양속을 곱게 취급하고, 아름다운 전통으로 대접받는 정겹고, 따뜻한 사회를 살고 있다.

내부고발자에게 검찰과 판사들이 "배신자"들 아니냐고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훈훈하고 따뜻한 전통으로, 팔은 안으로 굽고, 먹여주고 키워준 조직은 부모처럼 받들고, 흠을 보아도 마음에 담아두는 아름다운 전통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 같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 용감한 것은 미덕이 아니고, 대의는 정의가 아니고,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가 나아가는 길이라는 흥겹고 따뜻한 감동이 밀려들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서슬시퍼런 대왕 앞에서도 건들거리면서 소신있게 말하는 "충신"의 야박한 전통 대신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진화하는 이 사회에는 사소한 부작용이 하나 있다. 진실은 개값처럼 취급받고, 진실을 말하려고 한 사람들은 아름다운 치도곤을 치르게 된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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