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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가, 노무현 정권 파탄 증명하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경찰력에 의존하는 정권은 민중과 공존할 수 없어
 
우석훈   기사입력  2006/11/21 [14:00]
1. 경찰국가(Polizeistaat)와 노무현 정권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끝까지 추적하는 자벨 형사는 경찰국가(Polizeistaat)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이다. 도시의 외곽인 성(bourg)를 경계로 살았던 상인 및 중인계급에서 자본가들이 분화해서 상층부를 형성하고, 노동자 계급의 분화가 시작된 17~18세기의 유럽 사회를 분석할 때 ‘경찰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실제로 비밀경찰의 원조는 유럽에서 중앙형 근대국가를 가장 먼저 형성한 프랑스라고 할 수 있다.
 
파시즘과 인종주의가 환상적으로 결합해서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달려나가던 파시즘의 시대는 외부로는 군사주의 그리고 내부로는 경찰국가의 시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시기에 한국도 일본 순사들의 식민지형 경찰국가를 거쳤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2.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경찰’에 관한 은유들은 자유주의적 시각과 결합되고, 국가의 최소한의 역할을 얘기할 때 경찰과 치안에 관한 이야기들을 한다. 이는 최초의 사회계약론인 홉스에서 아담 스미스에 이르기까지 대체적으로 비슷하고, 아주 최근의 신자유주의인 로버트 노직의 ‘경찰국가론’으로 넘어오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국가가 능력에 안 맞게 이것저것 하겠다고 그러지말고, 공공의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 역할이나 하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극단적인 정부의 시장에 대한 방임 즉 lassez-faire의 상태를 지향하는 ‘작은 정부’라는 의미에서 경찰국가라는 말이 사용된다. 노직에게 있어서 국가는 그야말로 ‘세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마피아나 이런저런 집단 중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치안유지를 가장 잘 하는 ‘쎈 넘’이 바로 정부였고, 그래서 이런 ‘공폭력(public violence)’을 행사할 수 있게 된 집단이 바로 국가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자유주의 계열의 경제학자들은 국가에 의한 전쟁을 반대하는 대신에 질서유지로서의 경찰의 역할은 긍정하는 편이다.
 
3.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검사와의 대화’라는 걸 한 적이 있다. 강금실 전장관과 노무현 대통령이 ‘젊은 평감사들’과 논쟁했던 이 시기는 불과 3년 전의 일이지만, 정말 까마득한 먼 옛날의 일로만 느껴진다. 이 정부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힘을 밑으로 내려주고, 경찰과 검찰 그리고 판사 사이에 발생하는 견제와 균형에 의해서 적절한 해법을 찾아나가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희망을 갖던 그런 시기가 분명히 이 정부에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이 ‘참여정부’라고 불리고 싶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이상하게 변질되고 ‘닫힌 구조’로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만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백 가지 이상의 이유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지금 모습은 경찰국가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사실상 경찰들의 힘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 딱히 아니라고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비정규직과 관련된 KTX 여승무원 사건이 중간의 한 점화점이 된 셈이지만, 화물연대와 포항의 건설일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힘으로 맞섰고, 정책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한 바가 없다. 이 와중에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일이 벌어졌고, 노무현 시기를 역사적으로 평가한다면 비정규직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진 시간으로 이해될 것이다.
 
농민들은 사망자의 숫자로 세는 것이 더 빠를 것이고, 대규모 시위가 한 번씩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것이 노무현 시기의 농민들이 살아온 현실이다.
 
철저하게 침묵 속에서 가려진 하중근씨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마음 아픈 일이다.
 
선생님들 역시 이상한 계산으로 만들어진 자신들의 구조조정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관점에서 이미 경찰들의 통제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것 같다.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노무현 정부의 경찰국가로의 전환은 매우 빠르고 구조적으로 진행되었고, 이제 정권 초기에 내걸었던 대화와 타협 같은 것은 머리 속 아련한 기억 속에 노스탈지아 같은 것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대화의 여지가 없는 사안들이 너무 많다. FTA가 그렇고 농민들의 몰락이 그렇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이런 것들을 내리누르는 정부의 힘은 그야말로 전경들일 뿐이다.
 
4.

제주도 FTA 집회에 대해서 일절 허가를 내주지 않은 것은 보통의 경우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미 대추리에서 행정대집행이라고 부르는 강제수용 과정에서 군대도 동원한 적이 있는 이 정권에서는 자연스러운 균형이라는 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은 20일 서울지방경찰청 앞 기자회견에서 22일 민중총궐기대회를 금지시킨 경찰에 강력히 항의했다.     © 대자보
 
제일 치졸한 것은 도심 교통을 거론하면서 도심 집회를 불허할 것을 행정행위로 포장하는 일이다. 물론 교통 문제가 생기는 것은 맞지만, 전후 맥락을 짚어보면 특별히 더 교통의 문제로 지금 집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경찰국가로 전환하다보니까 핑계거리로 교통 문제를 제기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게 교통 문제의 심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권에서 구조적이고 심각한 교통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 뻔한 서울 및 수도권 고밀화 대책을 바로 그 시기에 정책이라고 내밀고 있는 것들을 보면 말이다.
 
본질적으로 노무현 정권은 여러 가지 불만에 대한 에너지들을 경찰의 힘으로 막으면서 버틴 셈인데, 정권 마지막 1년은 믿을 것은 경찰 밖에 없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셈이다. 그래서 도시교통을 문제 삼으면서 집회를 불어하기 위한 최근 진행되는 일련의 흐름은 어느 정도로 이 정권이 경찰국가에 가깝게 갔는가를 보여주는 예비 지표 같은 것이다.
 
5. 오, 꽃병!

병에 꽃을 담아서 던지거나 아니면 꽃으로 병을 만들면 좋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말 그대로 꽃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나도 폭력은 싫어하지만, 사실상 ‘공폭력’으로 정권의 마지막 보루를 삼는 이 정권의 반민중성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사회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게 될 것인지를 주의해서 쳐다보는 중인데, 점점 더 노골적으로 경찰국가로서의 자신의 본질을 수정해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가 어렵다.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과연 노무현 정권과 민중은 공존할 수 있는가?

적어도 한미 FTA라는 외부수단을 통해서 국내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한에서는 정권과 민중은 공존이 불가능하다. 정권이 끝날 때까지도 이 급하고 빠른 변화를 밀고 나가겠다는 것은 정권 차원의 선택이지만, 그냥 죽지 못하겠다고 생존권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요구는 정권보다 더 애타는 요구이다. 이 두 개의 힘이 부딪힐 때, 어떠한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해법도 없다면 남은 것은 경찰의 힘 뿐이다.
 
그리고 지금 노무현 정권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경찰력의 힘인 셈이다. 그래서 충돌은 불가피하다. 민중과 현 정권은 공존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선 상태이다.
 
여기에 수도권 과밀화로 부동산 문제를 풀겠다는 정권의 해법은 노태우 이전 시기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노태우에서 DJ까지 이어지는 정권이 경기도에 죽어라고 집짓는 간단한 해법을 몰라서 수도권 총량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다. 지방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있던 제도였는데, 경기도와 서울의 생태적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고 하더라도, 현 상황에서 지방에 거주하는 민중들과 정권과의 관계도 이제는 공존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더 이상한 것은 이 정권이 행정수도 이전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집권한 정권이라는 점이 현 상황을 더욱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물리적으로는 꽃병이 등장해도 벌써 등장했을 상황이지만, 그러지 않는 것은 더 민주적이거나 더 민중적인 정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경찰의 힘이 비대칭적으로 너무 커졌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6. 폴리차이슈타트!

경찰력으로 정권을 지키는 경찰국가라는 의미의 폴리차이슈타트로 노무현 정권이 변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혼란스럽더라도 대화와 타협 혹은 토론 같은 것을 통해서 하나씩 결정하는 과정을 밟았더라면, 비록 효율은 떨어지더라도 새로운 역사적 전기를 우리 사회가 가질 수도 있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새만금, 부안, 그리고 천성산 같은 것들은 초기부터 공작으로 일관해온 정권이 FTA와 비정규직 문제를 공작정치 같은 것으로 해결하려다가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힌 셈이고, 그래서 바로 물리적인 경찰력에 기대게 된 것이 현상황인 것 같다.
 
공작과 힘이 정권의 실체가 된 상황을 보면서 노무현식 폴라차이슈타트(Polizeistaat)가 만개하는 걸 보게되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힘으로 흥한 자, 힘으로 망한다”는 옛 경구를 들려주고 싶다. 10%의 지지율로 통치하고자 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경찰력 밖에 없는 셈인데, 앞으로의 1년을 경찰력으로 힘들을 누르겠다는 이 전략 뒤에 남은 것은 너무 많은 목숨과 희생일 뿐이다.
 
자꾸 보수신문 핑계를 대지만, 경찰력으로 통치하는 경찰국가로 정권이 전환된 스스로 그렇게 간 것이지, 신문들이 그렇게 하라고 주문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왜 진심을 몰라주느냐고 하고 싶겠지만, 정권이 떠나도 한미 FTA를 비롯한 정권이 한 일들의 폐해는 사라지지 않는데, 지금 여기서 밀릴 수 없는 것이 이 땅의 민중들의 서러움 아니겠는가.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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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21 [14: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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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2006/11/23 [20:30] 수정 | 삭제
  • 마름노릇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기계적인 노동으로 평생직장을 보장 받는거다.
    그걸 모르고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덤비는 놈이 밉다는 논리는 공권력 권력의 마름이 할이야기는 아닌거 같소. 뒷골목 주먹논리로 무장하고 행동하면서 평생을 보장 받는다면 욕심이 좀 과하지 않소?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보시면 잘 알죠? 공무원 경찰 가족에 입장으로 몇마디 하고 싶소만 조폭논리에 사는 분을 생각하니 할말이 없소.
  • 경찰 2006/11/23 [11:07] 수정 | 삭제
  • 나라가 경찰(일체의 공권력 행사기관 포함)에 의해 유지되는 것 맞다.
    사실 그러라고 있는 기관들이다.
    정부 정책이 맞든 틀리든 그건 시민과 정치권에서 판단해야 될일.
    경찰관이 개인적으로 이야기 할 수야 있겠지만 그걸 공적견해로 표현할 수는 없다.
    좋게 말해서 가치중립적 듣기 싫은 말론 시키는 대로 하는 로보트다.
    지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로보트로 생각한다.
    하지만 로보트의 대상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자신들을 막는 이놈들은 원인된 일을 불러온 사람들과 똑같은 놈이고,
    때론 때린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는 태도이다.
    진짜 로보트라면 상관없을 텐데, 사실은 이들도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피곤하다.
    경찰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경찰이 미울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하려는 것을 경찰이 막기 때문이다.
    막지않는다면 미울이유도 없을 것이다.
    경찰은 덤비는 놈들이 밉다.
    그들의 소신이 미운 것이 아니라 그걸 실현시키려는 행위가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이 미운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의 주장을 판단해서 자신의 판단대로 행동할 수 없는 경찰이 가진 것은 몰가치적인 법의 잣대 뿐이다.
    이 잣대도 이리저리 잡아당기니 휘다 못해 부러질 지경이지만 말이다.
  • 다르다르 2006/11/22 [11:50] 수정 | 삭제
  • 전 사실 ”평검사와의 대화”라는 쇼부터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노대통령의 가식적인 모솝과 겉과 속이 다른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정치행위에서 폭력을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선거처럼 ”비폭력적인 쿠테타”제도를 만들어, 사회적 응어리를 해소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지율없는 정권말기에 발생하는 폭력도 정치제도의 불완전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소환제'같은 것이 있다면, 정부와 국민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게 될테니까요.
  • 김학찬 2006/11/22 [08:10] 수정 | 삭제
  • .
    무꼬살기 바빠 제 스스로도 잊고 지내는 아주 옛날 아이디를 아직도 기억
    해 주시는 감자바우님 참 감사합니다.
    "자주 뵙기를" 원하시지만 저는 제가 글쓸 필요조차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
    이라 여겨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길 원한답니다. ㅎㅎ

    건강하시고 편안한 시간 되시길 소망합니다.
  • 감자바우 2006/11/22 [00:15] 수정 | 삭제
  • 오래만에 반가운 이름이.... 잘 지내셨는지요?
    예전 PC통신 하이텔 시절이 생각나네요^^
    건필하시고 자주 뵙기를~~
  • 김학찬 2006/11/21 [17:04] 수정 | 삭제
  • 내노라 하는 언론사 인터넷사이트 초기화면에 나타난 최근기사 제목이다. '슈퍼모델 1위
    강소영 착한몸매 후끈화보'. 형태 수식어로 '착한'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유수언론사에서
    쓰여졌는지 알수 없지만 '헤픈', '천한' 정도의 의미로 밖에는 달리 이해해 줄 수가 없다.
    슈퍼마켓 점원도 아니고 슈퍼모델 1위쯤 되면 소위 '좋은데' 시집갈 수 있는 건 따논 당
    상이다. 꼭 벗고 설쳐야만 삶이 윤택해지는 건지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지만 그녀의 자
    유이기에 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1789 프랑스대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박애 이후에 그동안 탈이념적이던 강준만교
    수가 표피적인 '좌-우소통'라는 단어를 거론하여 술렁이고 있다. 그 이면에 숨은 핵심인
    [좌우가 아닌 엘리트와 투쟁해야 한다]는 거대 화두는 아전인수식으로 {노빠 안티조선}
    인들이 깡그리 무시해 버리고 말꼬리잡기에만 낑낑댄다.

    [안티조선]하면 나도 한소리하는 네티즌이다. 초야를 벗삼아 무위자연하는 무명의 일개
    PC통신인이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언론인이라는 조선일보 김대중(당시 주필)과의 악연으
    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8년 이상 경력의 안티조선 네티즌이라면 누구든지 기억하는
    검찰 긴급체포, 구속각오의 피튀기는 통신투쟁! 무명의 일개 네티즌과 막강권력 조선일
    보 김주필, 이건 내가 저도 만판 이기는 게임이니 조선일보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좀
    만 무꼬살 형편되면 소주 두어병하고 쥐포 한마리 구워가지고 김주필을 찾아가 키워줘서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할 용의도 있는 녀석이다. 내가 아무리 미워해도 강준만교수가 설
    파한 중도인 '동전의 양면'처럼 조선일보도 귀엽고 앙증맞게 고마운 구석도 있기 마련이
    다.

    6공의 방패막이로 탄생한 수구보수언론인 SBS사외이사쯤 되면 {안티조선}인으로서는 부
    끄러운 감투다. 슈퍼모델 1위급은 못되도 등수 탈락할 몸매는 아닌 것이 바로 노무현정
    권 탄생후 벼락출세한 김동민이다. 강준만교수는 교보문고 강연에서 "기회주의로부터 자
    유로운 세력은 없다"며 "출세주의와 분열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결
    과적으로 '기회주의적 출세'와 '안티조선의 분열'을 일삼는 김동민을 두고한 말이 되어
    버렸다.

    노빠 선전매체일 따름인 데일리서프라이즈에 연속 3편이나 실린 김동민의 강준만교수 모
    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글나부랑이를 보노라면 어떻게 이런 19세기 정신박약아같이 덜
    떨어진 씨앗도 교수랄 수 있는지 아연질색이다. 그런 그에게서 학생들이 도대체 뭘 배울
    수 있을런지 지구멸망의 아마겟돈을 보는듯하여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차라리 '착한'
    몸매라는 기사의 조중동이 더 착한 짓이지 김동민의 글맵시는 오바이트 나오는 '추한'몸
    매일 따름이다.

    김동민의 "대다수 국민들이 개혁을 열망하는 반면에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수구세력은
    개혁을 좌절시키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는 게 지금 현실이다."는 혹세무민의 현혹적인
    문구로 부터의 출발이 화를 자초한다. 빼먹으면 안 되지. 그러한 한나라당과 연정을 제
    안한 권력자가 누구인가? 정치는 없고 조중동과 비생산적으로 불필요하게 치고받는 유
    아짓한 망치(亡治)의 권력자는 누구인가? 도토리 키재기로 똑같은데 노빠의 눈에는 뵈
    는 게 없는가?

    강준만을 모독하기 위한 김동민의 첫번째 글 제목은 "안티조선운동이 실패라고? 강준만
    의 독선이 슬프다" 며 "공로는 독식하며 참여한 이들은 매도하나"를 부제목으로 달았다.
    강교수가 공로를 독식 안 하니 비슷한 단어의 독선인지, 실패 안 해서 매도하는 것인지
    마냥 햇갈리게 포장하는 교묘한 편집술은 압권이다.

    정확히 보라. 강교수는 큰 차원에서 단정적인 실패와 성공을 거론했다기보단 계속되는
    과정과 역사속에서의 방법론적 변화도모를 주장할 따름이다. 김동민의 자화자찬인 {안
    티조선}의 치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놓은걸 보니 사촌이 땅을 사니 배가 무척이나 아픈
    가 보다. 강교수는 최근 겸손을 강조하지 누구를 매도한 적이 없다. 김동민같은 자화자
    찬의 어리석은 교만을 강교수는 행사한 적이 없다. 차라리 하소연할 곳 하나없이 김동
    민과 같은 노빠들에게 망연자실로 무차별 매도 당하고 있는 억울한 이가 바로 강준만
    교수다.

    두번째 글은 "강준만식 좌우통합 중도론은 나라 망하는 길이다" 며 "좌우대립은 수구
    기득권이 조작해낸 환상'이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뭘 망해? 노무현이 이만큼이나 나라
    를 망쳐 먹었으면 됐지 뭘 더 망할 게 있다고 이리도 호들갑인가? 안티조선 레벨을 무
    기로 권력 한자리 차지한 벼락감투의 섹쉬한 몸매들은 정권 바뀌면 전부 물갈이로 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민대중인 국민들은 더 이상 망할 것도 없이 이미 몰락
    했다는 증표가 바로 열우당의 처참함이요 10%대의 노무현 지지율이다.

    김동민도 감투 떨어질 일이 두려운지 애국지사도 아닌 것이 우국충절의 별 걱정을 다
    하고 자빠졌다. 등따숩고 배부르면 다 이런가? "좌우대립은 수구기득권이 조작해낸 환
    상"이라는 말이 김동민 입장에서 성립될려면 노무현이 '좌' 이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가? 자유에 치중하다 평등 망치는 한미 FTA, 부동산정책 실패, 4대개혁 법률안 코풀기
    등등을 보노라면 영락없이 노무현은 '우'다. 이러한고로 김동민은 '좌우대립의 수구기
    득권 탓만 조작해낸 몽상'인 것이다. 국민들을 환상에 헤메이는 우매한 백성으로 보지
    말기 바란다. 적어도 서민대중들은 김동민처럼 몽상은 아니다.

    갈수록 첩첩산골이다. 많은 녹봉 김동민이 사외이사로 인연이 깊은 sbs방송 강준만 대
    담을 보고 쓴 세번째 글은 "도 좋은신문 될수 있다? 진심인가?"라는 제목에 "한
    나라당과 조중동만이 나라 걱정을?" 이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대책없는 노빠식 글이다
    보니 부제목과 본문과의 연결고리를 도대체가 찾을 수 없는 아전인수의 중구난방이다.
    노무현은 다 잘했고 한나라당과 조중동만 잘못했다는데 맞다고 쳐주자. '착한'몸매라는
    표현은 언론사에서 어울리지않아 조중동이 잘못한 것이다. 제스추어일망정 한때 아파트
    투기 잡고 대다수 국민살리는 '분양원가 공개'를 거론한 한나라당도 잘못한 것이라 치
    자. 그래야 김동민 기분이 좋을테니까.

    그러나 이건 무슨 꼬롬한 심보인가? 조선일보가 좋은신문이 되면 안 되나? 3족 망할 꼬
    장일세 그랴. 안티조선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선일보를 좋은신문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이지 죽창들고 조선일보 사원들 찔러 죽이고 신문사 망하게 하기 위한 폭동이 아니
    지 않은가? 비록 안티조선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일망정 내 할 일은 해야 한다. 강준만의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 운동은 '조선일보 좋은신문 만들기'와 일맥상통하는 헌신적
    노력이다. 실현가능하며 진심이라고 강교수 스스로 서슴없이 말할 것이다. 못 믿겠으면
    강준만교수에게 직접 물어보라.

    안톤쉬냑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안티조선 숱한 세월에 별의 별 꼴
    불견을 다 본다. 천한몸매, 헤픈몸매를 본다. 글을 통해 속보이는 대책없는 노빠식 안
    티조선의 김동민 스트립쇼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죽어가는 김동민에게 연민의 정은 사
    치일까?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든 프랑스대혁명 이후의 숱한 실험은 자본주의의 자
    유 숭상으로 평등이 망가지고 공산주의의 평등숭상으로 자유가 망가짐으로 인하여 이제
    남은 것은 '박애'뿐이다.

    비판과 반론은 자유다. 그러나 '좌-우'를 거들먹거리며 강준만교수를 안하무인으로 매
    도하는 김동민의 천한 자유는 슈퍼모델 1위 강소영의 섹시화보 자유만큼이나 평등을
    소멸한다. 몸매가 안바쳐주면 어디 서러워서 살겠는가? 모멸 가득한 차별과 분열을 조
    장할 따름인 김동민의 자유는 평등을 분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 하나만으로도 감당
    하기 어려운데 엎친데 덮친 격일 따름이다. 벗고 설치드라도 속보이지는 마라. 강교수
    에게 더 이상의 노무현지지를 구걸하지 마라. 노무현에게 다 털리고 보태줄 거 한푼없
    어 오죽 미안하겠는가?

    대통령이 힘이 센가 일개 신문사가 힘이 센가? 길가는 사람에게 한번 물어 보라. 조중
    동을 뚫고 당선시켜 준 피조물이 지금의 대통령이다. 그 힘을 어떻게 소진 했는가? 도
    대체 어떻게? 더 이상은 개혁을 빙자하여 지지를 구걸하지 말고 전체를 꿰뚫어 핵심을
    잘 보라.

    리영희선생의 동포애를 추앙하는 강준만교수의 주장은 바로 이것 이다. 과도한 자유로
    손상된 평등을 회복할 길은, 마찬가지 평등 숭상으로 자유가 유린될 위험성을 알기에
    박애의 정신을 함축한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호성교수의 신중하고 겸손한 역작이
    있다. 꿈의 나라인 선진국 스웨덴을 장미꽃 실험실한 [사회민주주의 역사와 전망/책세
    상/386쪽/18,000원] 서적의 알맹이와 강교수의 의식은 통한다. 일만 지성인들의 일독을
    권한다.

    엘리트들이 출세욕과 재물욕에 의해 죽어간다. 곁가지에 불과한 '좌-우' 가 아닌 역사
    웅비의 대한민국 화두인 강준만교수의 [좌-우가 아닌 엘리트와 투쟁해야 한다]는 슬로
    건은 죽어가는 엘리트를 살리기 위한 박애의 정신이요 숭고함이다. 나에게, 아니 우리
    한테 주어진 길은 바로 사랑이다. 죽어가는 것들에 대한 사랑...


    자유! 평등! 박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
  • neung1an 2006/11/21 [14:44] 수정 | 삭제
  • 흔히들 87년 체제를 얘기하곤 하죠...
    하나의 체제가 지니는 엔트로피의 높고 낮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정권의 획득이 어려운가 아니면 정권의 유지가 어려운가를 보면 되죠...
    87년 체제 초기 국면에서는...
    정권의 획득이 어려운 반면 정권의 유지는 비교적 손쉬웠죠...
    그러나...
    87년 체제의 엔트로피가 지나치게 높아진 지금의 현실에선...
    이제 정권의 획득은 그다지 중대한 고려사항이 아니죠...
    87년 체제가 폭파되지 않는 한...
    정권의 획득보다는 이제 정권의 유지가 문제의 관건이 됩니다...
    노무현 정권이 '경찰국가'로 자리매김 할 수 밖에 없는 역사철학적 맥락이 중요한 거겠죠...
    문제는 87년 체제를 도대체 '어떻게' 파괴할 것인가 하는 것이겠죠...
    87년 체제 자체가 붕괴되지 않는 한...
    우리는 결국 앞으로두 '경찰국가'의 틀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되니까요...
    우리는 지금 '넘어가는' 역사철학적 시기를 살아가구 있다는 생각이예요...
    사람을 비난하구 권력자를 비난하는 일두 중요한 것이겠지만...
    이제는 '체제 변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물어볼 때두 되지 않았나 싶네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시간단축이겠죠...
    '시간단축'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87년 체제의 '파국'은 예정된 거니까요... 후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