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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희만 남고 우습게 망가진 MBC 100분쇼?
[비나리의 초록공명] 공급론자 판친 토론회, '평균적 한국인의 삶' 안보여
 
우석훈   기사입력  2006/11/19 [22:36]
1. 백분 쇼, 완전 끝장이다

MBC TV의 백분 쇼는 참 묘한 프로그램이다. 원래는 돌아가신 정운영 선생이 하던 프로였고,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백분 쇼에 대해서 싫은 소리는 잘 안한다. 하긴 어떤 간 부은 인간이 감히 백분 쇼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겠나.
 
토론 프로치고는 이게 참 묘한 게, 내가 경험한 외국에서의 토론 프로들은 많은 신인 정치인들이나 학자들이 토론 프로에서의 맹활약과 함께 대중 스타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백분 쇼에서의 멋진 토론으로 스타가 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돌아가신 정운영 선생에게는 안스러운 말이지만, 이 토론 프로그램은 진행자가 스타가 되는 프로이다. 그래봐야 세 명이지만, 하여간 국회의원도 되고, 교수도 되셨으니, 길고 장수한 인기 프로임에 비추어보면 출연자보다는 진행자가 스타가 되는 참 묘한 프로이다.
 
토론이라는 게 원래 승패가 명확히 있어야 재밌는 프로가 되는데, 이 백분 쇼는 아무리 정답이 뻔해 보이는 질문이라도 묘하게 바둥바둥 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보면 볼수록 아리송해 보이게 원래의 질문을 변형시키는 특징이 있다. 워낙 스타들이 진행을 하게 되지만, 하여간 이런 구조 때문에 진행자는 더더욱 스타가 된다.
 
2.
 
손석희 좋아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은데, 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무슨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작년 황우석 사건 때 토론하는 거 보면서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 번 한 적은 있는데, 그래도 KBS와 SBS 토론쇼의 아주 이상한 사람들보다는 덜 밥맛이기는 하다.
 
사안에 따라서 온탕냉탕 왔다갔다 하기는 하는데, 그거야 총체적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한 인격체’로서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늘 옳거나 늘 틀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부동산 토론은 좀 너무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부동산 공급론자 윤건영과 김경환에다가 공급정책의 총책인 박병원까지, 하여간 대표급 공급론자 세 명을 데려다놓고, 여기에 홍종학 혼자 놓고서 토론을 시키는 법이 어딨나? 여기에 온 세상이 다 공급론자 아니냐는 듯이 천연덕스럽 손석희까지 공급론자 대열에 가세하니, 볼만했다. 4:1 토론인 셈인데, 군사정부 물러나간 우리나라에 새로 신설된 토론쇼 역사에 이런 쇼는 또 보다 처음이다.
 
홍종학도 말 잘 하는 사람이다. 나같이 어눌해서 발음도 제대로 안되는 촌놈하고는 질과 급이 다른 사람이고, MBC 라디오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몇 년간 진행했던 사람이다. 가끔 기발한 ‘한 빵’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좀 남기는 하지만, 점잖고 말 아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4:1로 그야말로 ‘집단 다구리’도 아니고, 웃겼다. 윤건수와 김경환 웃기는 거야 잘 알려진 일이지만, 하여간 백분쇼, 웃기긴 진짜 웃겼다.
 
지난 번 토론회에는 부동산 업자들을 데려다가 전문가라고 마치 중립적인 얘기를 듣는 것처럼 쇼를 하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공급론자 세상의 첨병 같이 서서, 토론쇼들이 지키는 최소한의 균형도 안 지킨다.
 
하긴, 안 보면 그만인데, 괜히 보고 안타까와 하는 내가 더 이상한 거지.
 
3.
 
하여간 몇 달 전부터 백분쇼를 보면 자꾸 영화 <퀴즈쇼> 생각이 난다.
 
그래도 한 때는 정운영 선생이 운영하는 프로이고, 돌아가신 당신이 열었던 프로라서 심한 소리는 못하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배들이 불러서 도대체 ‘평균적 한국인의 삶’이 어디에 가 있는지 아무 생각 없이 자기들끼리 상징조작을 서슴치 않는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그 안에 PD도 있을 거고, 비정규직 작가들도 있을텐데, 이 사람들 모두 배가 부를만큼 불렀단 말인가? 도대체 이해 안 되는 일이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MBC 안 보나? 이게 도대체 말만 공영방송이고, 말만 토론쇼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영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냥 내가 사는 시대가 어떻게 더 망가져 가는지 비추어보는 거울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 한구석을 접는다. 5년 전의 백분쇼, 3년 전의 백분쇼, 작년의 백분쇼, 그리고 오늘의 백분쇼를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시대의 흐름이 되는 셈인 것 같다.
 
이제 ‘언터처블’이 되어버린 손석희가 진행하는 백분쇼, 완전 볼만하다. 나중에 손자 어른되면, 옛날에 이런 프로도 있었다고 말해주면 그런 시대도 있었느냐고 재밌게 들을만한 멋진 쇼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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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11/19 [22: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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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립은 불가 2006/11/22 [02:10] 수정 | 삭제
  • 토론자가 너무 적습니다. 각자의 논리를 지닌 두 패로 나뉜 여섯 명의 논의에서 시청자가 판단할 만한 많은 자료가 제시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적다는 것은 토론의 균형을 맞춰주는 자의 힘이 강해진다는 것과 상통합니다. 또 하나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사자 만이 아닌(은 있을 수 없습니다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토론할 필요가 있겠지요. 어느 나라 토론프로그램이건 진행자의 입김이 세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우석훈님 글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많이 시니컬하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글도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독자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글쓴이는 괴롭습니다만...
  • 파트라슈 2006/11/21 [14:03] 수정 | 삭제
  • 몇번씩이나 송구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지. 정운영씨 책 두 권밖에 안읽었지만, 굉장히 현학적이라는 생각만 있는데...
    게다가 중앙일보가서 헛소리했던 거 생각해보면, 이런 류의 학자들이 제일 싫은데. 비나리 같은 분이 정운영을 존경하는 거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되서리. 비나리는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중앙일보 밥 얻어먹으면서 지식인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다고 믿소? 도저히 이해가 안되오.
  • 2006/11/20 [13:36] 수정 | 삭제
  • 그러게요. 손석희 뭐가 좋다는건지...
    팬층이 있는거 보면 신기해요.
    우리나라 토론문화나 프로가 다 거기서 거기던데
    확실히 인물이 없긴 없어요.
    예전에 김민웅씨가 했던 ebs토론이 볼만했는데
    그거 없어져서 무척 아쉽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