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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착취당한 당신, 이제는 떠나라?!
인권은 커녕 일자리에 목매는 여성이주노동자의 현실
 
이금연   기사입력  2003/06/15 [21:37]
일요일저녁이면 이주노동자들과 주로 저녁식사를 같이 하게 된다. 이야기 나누면서 웃고 먹고 마시다 보면 외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고향이 그저 네팔이요 몽고요 베트남일 뿐이다. 농담도 툭툭 던질 만큼 한국어에 능숙해진 장기체류자들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 불안함과 초조함을 달랠 길 없어하면서도 동시에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감 때문에 약간의 희망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올해  3월이면 3년 이상 체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은 거의 강제로 한국을 떠나야 한다. 정부의 대책대로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전체의 70%이상이 미등록인 불법체류자들인데 이들이 일시에 귀국하게 될 경우 발생할 경제적 손실에 대하여 우려하는 소리들이 들려 다행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존재 그 자체로 인정되기보다는 그저 필요한 노동력으로만 규정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양적인 팽창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이고 관용적인 정책수립 보다는 최소한의 대책마련으로 일관해와 오히려 불법체류자들이 늘어나도록 방조해 온 정부가 대통령이 바뀜으로 뭔가 새로울 수 있을까?  그래도 기대를 걸어본다. 3월에 꼭 가야 하느냐고 묻는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기다려보지 뭐, 그러다 뭐가 없으면 그냥 일하면 안될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관련기사] 국제결혼의 희생자, 외국여성은 상품이 아니다./ 김주영


▲ 대자보 자료사진
그랬다. 언제나 기다려 왔다. 그냥 기다린 것이 아니라 싸우면서 기다려왔다.  '연수제도 철폐, 노동비자 쟁취, 강제추방 반대'를 외치면서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젠 떠나라'가 아니라 '열심히 일한 당신,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제 등록하여 일하라'라는 말을 기다려 온 것이다. 작년 3월∼5월 사이 불법체류자 자진신고기간동안 신고한 노동자들에게 1년 자비의 기간(grace period)을 부여한 정부는 3년 미만 체류자들 중 일정 조건을 갖춘 이들에게만 다시 그 자비의 기간을 1년 연장하려 하고 있다.  그것을 노동비자인줄 알고 '비자 주어요?'를 질문하는 그들의 커다란 눈망울에 배신과 분노 그리고 실망이 섞여 있다. 한국어에 능숙한 3년 이상 살아온 노동자들은 잘 알면서도 묻는다. '우리 비자 받을 수 있어요?'. 농담처럼 그러나 처절하다. 돌아가고 싶지만 돈이 없다. 열심히 일했건만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돌아가고 싶지만 추방당하고 싶지 않다. 작년에 등록에 필요하여 샀던 비행기표는 이제 휴지조각처럼 되었다. 항공사만 돈 엄청 벌었을 것이다. 적어도 25만명 이상이 비행기표나 배표를 샀을 것이니.

도나 엄마는 우시장에서 고기와 뼈를 고르는 일을 하루 열시간 한다. 밖에서 일하여 항상 몸이 춥다. 한달 백만원 월급 받으면 도나 어린이집에 19만원, 방세 20만원을 내고 나면 한달 생활비도 부족하여 고향에 보낼 돈이 없다. 남편이 쉬고 있어 지금은 더 어렵다. 도나 엄마는 하루하루 몸무게가 줄고 있다. 허리도 아프지만 병원 갈 엄두를 못낸다. 시간도 없고 병원비도 만만치 않다.

나라씨는 공장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아프면 공장 그만두라는 말에 겁을 먹고 일만 하다 병을 키워 몇 백만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들어갔다. 민간단체가 만든 의료공제회도 몰랐기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할인해 주었고 동료들이 도왔다.
미라씨는 해고 된 이후 다시 취직할 때 사장과 계약서를 작성했다. 기본급 60만원과 식대 6만원, 교통비와 기타 수당을 합쳐 총 75만원을 받기로 하고 일을 시작했다. 하루 10시간 일했고 가끔 2시간 더 잔업을 했다. 그런데 월급을 받아보니 65만원이었다. 사장에게 따지니 그런 계약은 아무 소용없다고 했다. 너무 자존심이 상하여 그냥 그만 두었다.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에 와서 수십 번 일을 바꾸어야 했다. 일일이 말하기엔 너무나 기막힌 사연으로.

아이샤는 한 공장에서 6년간 일해 왔다. 일을 너무 잘하고 한국어도 잘하여 같은 나라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한 그녀는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기 위하여 퇴직금을 달라 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외국인이기에 줄 수 없다' 하였다. 그것이 끝이다.
주야 2교대를 6년간 해왔고 일요일도 '나가면 잡힌다. 일이나 해라'하는 차장님의 말에 순종하며 일한 지난날은 그저 흘러갔을 뿐이다.

갈포나는 생활비절약과 안전을 위하여 같은 나라 남자와 동거생활을 시작하였다. 몇 번의 임신중절 수술과 남자의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그녀는 얼굴이 늙어가고 있는 자신을 본다. 이제 20대 중반인데.

연수생으로 일하다 도망 나온 SP의 부인은 한국말을 잘 못하여 남편이 대신 적립금 상담을 하고 있다. 매달 15만원씩 임금의 일부가 강제 적립되어 350만원이상이 된 그 돈을 찾을 수 있을까? 남편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어서 한국말을 배워야 할텐데..그러나 생각뿐이다. 일하는 것이 너무 외진 곳에 있기에 한국어를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더구나 남편과 같이 사니 한국어는 덜 사용하게 된다.  

아린은 미군캠프 앞 나이트 클럽에서 탈출한 이후 공장에서 일한다. 매달 일정한 금액의 월급이 보장되어 안심하고 적은 돈이나마 생활비를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다. 큰아이가 12살이지만 잘 걸을 수 없어 걱정이 크다. 그 아래 두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으나 병원비와 생활비를 매달 보내고도 트라이스클 하나 사 남편이 자영업을 할 수 있을 자본을 마련할려면 아직 한국에 몇 년 더 있어야 하는데.....


여성이주노동자들도 돈 때문에 일하러 온다. 그 예전에 우리의 언니들이 동생이나 오빠의 학비를 대기 위하여, 가족들의 생계를 위하여 혹은 입하나 덜기 위하여 고향을 떠나 공장을 찾아 왔듯이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지금은 2003년이고 디지털 시대라고 하며 여성의 시대니 감성의 시대니 떠들며 촌스럽게 '산업의 역군'입네 '공순이네'하는 말만 사라졌을 뿐이다.


▲ 대자보 자료사진
그들에게 법제도적인 보호장치가 전혀 없다. 노동자로서의 기본권은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다. 연수제도라는 편법에 의존한 이주노동자 도입 창구의 문제 때문이다. 연수생이라는 명분을 씌워 일정기간 주기로 인력을 교체하면서 연수와 관련 없이 같은 값으로 단순 노동력을 활용하여 이윤 추구를 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산업 연수협력단과 정부의 이중창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연수생과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에 투자를 하여 연수생을 직접 들여오고 있는 큰 규모의 기업들의 착취는 더 심하다. 물론 위장현지 법인도 많다.

모성보호권과 남녀차별 금지에 관한 사항은 그저 그림의 떡이요 다만  출입국관리국직원들의 단속으로부터 안심하고 일 할 수 있기만을 기대하는 것이 현재의 여성이주노동자들의 바람이요 희망이다. 이런 상태에서 동일가치 노동의 동일임금, 건강권 및 산언 안전, 주거권과 거주권, 평생교육 및 재교육등을 거론할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 필자는 안양전진상복지관 이주여성쉼터 WeHome 대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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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6/15 [21:3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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