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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징' 대한민국과 중국집의 몰락
[비나리의 초록공명] 대규모 프랜차이즈, 삶의 자본화와 문화다양성 죽여
 
우석훈   기사입력  2006/09/04 [14:55]
프랜차이즈 체인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변화는 미국에서는 이제 큰 흐름이 되었고, 우리나라도 프랜차이즈가 차차 대세로 넘어간다.
 
정확하게 통계를 잡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이 살기에 좋은 북유럽을 포함한 국가들은 프랜차이징이 잘 움직이지 않고, 미국과 같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경계가 확실한 나라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돈 없으면 인간이 인간 값을 구현하지 못하는 나라에서는 최근 프랜차이징이 하나의 대세를 만들어나간다.
 
‘작은 가게’가 시민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COOPs라고 부르는 유통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생활협동조합의 약자인 ‘생협’을 의미하지만, 쮜리히와 같은 곳에서는 소상인 연합을 의미한다.
 
1. 빵집의 몰락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빵을 그렇게 많이 먹고 동네에 빵가게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정확한 기원을 찾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80년대, 90년대를 지나면서 동네 빵집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한 흐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이동통신사의 회원카드가 빵집 프랜차이즈랑 결합이 되면서 동네 빵집이 그야말로 몰락했고, 이제는 집에서 빵을 직접 굽는 빵가게를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빵도 가게에서 구워야 해? 막 구워나온 빵을 시간에 맞춰서 줄을 서서 먹는 곳과 배달된 빵을 무표정하게 집어먹는 것 사이에는 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부지런한 빵장수의 일화’는 그야말로 지나간 시대의 일에 불과하다. 이 땅에서는 말이다...
 
2. 커피전문점의 몰락
 
지금처럼 에스프레소를 팔지는 않더라도 서울에는 곳곳에 오래된 찻집과 나름대로 커피전문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이제는 ‘별다방’과 ‘콩다방’으로 크게 양분되고, 국내 프랜차이즈인 ‘톰앤톰’이 그 중간에서 간간이 버티고 있다. 주인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에 가서 시침 뚝 떼고 에스프레소 한 잔 더 달라고 해도 더 주던 시절이 1년 전만 해도 서울에 있었다. 콩다방에 가서 커피 한 잔 더 달라고 하면 도끼눈을 뜨고 종업원이 쳐다볼 것 같다. 샹젤리제의 야외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나 세계에서 가장 맛이 좋다고 하는 쮜리히 국립공과대학 앞길에서, 예전에 아인슈타인이 마셨을 커피보다 이런 프랜차이즈의 커피가 훨씬 비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3. 버티는 건 중국집...
 
밀가루 반죽하면서 한 주먹씩 MSG를 털어 넣고, 중국 소다를 듬뿍 뿌려대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을 때마다 수명이 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그나마 여긴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내가 지불하는 돈이 온전하게 누군가의 삶을 개선하는데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4. 우리나라의 프랜차이즈 속도, 너무 빠르다
 
경제는 생태계와 유사한 점이 많다. 직강하 공사를 한 하천에는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큰 골목 뒤에는 뒷골목이 형성되고, 큰 자본 옆에도 작은 장사거리들이 형성된다. 사람사는 곳에는 대개 그런 것들이 생기고, 높은 교육수준과 찬란한 이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작은 기술과 부지런함으로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생태계의 지혜와 비슷한 생각이다.
 
지금 서울에서 자본이 움켜쥐고 있는 기술과 유통망을 통해서 ‘라이센스’를 제공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 너무 없다. 직강하 공사를 하고 생태계가 죽어버린, 소위 홍수방지 옹벽으로 제방을 쌓고 나서 무너져버린 하천생태계와 굉장히 비슷하다.
 
눈에는 아름다워 보이는 하천들, 살아가는 것들은 너무 힘들다. 종의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데, 지금 서울에서 진행되는, 혹은 전국에서 진행되는 프랜차이징의 변화는 이런 것과 마찬가지이다.
 
5. 문화를 소비하며, 문화를 죽이다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음식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체계적으로 파헤치고 그 대안을 제시한 우석훈 박사의 <음식국부론>    ©생각의나무, 2005
별다방과 콩다방, 모두 같은 문화이지만, 문제는 다양성에 있다. 그렇게 해서 외국으로 라이센스 비용이 나가게 된다는 90년대 같은 반론을 펴고 싶지는 않다. 모두 원하고 싶은 문화를 원하고 싶은 지불비용을 통해서 소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옆에 그런 프랜차이즈가 아닌, 뭔가 조금은 다른 주인의 개성과 손님들의 패턴이 묻어나는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박정희도 서울의 문화를 이렇게 획일적으로 바꾸지 못했고, 전국의 소비패턴을 동일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도 못한 획일화를 이제 프랜차이즈라는, 더 고도화된 ‘삶의 자본화’ 전략이 손쉽게 바꾸고 있다.
 
‘문화’를 규정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다양성’의 공식으로 이 경제가 튼튼하지 않을 뿐더러, 문화적으로 ‘복원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은 비교적 쉽게 보여줄 수 있다.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이윤율’이라는 단순한 공식에 의해서 규정될 것 같지만, 전체로서의 시스템의 복원성은 이윤율에만 환원되지는 않는다.
 
“치즈만 수 백종을 먹는 민족은 결코 지배되지 않는다”고 드골이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치만 수 백종을 먹는 우리나라는 도대체 왜 이래?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늘어나는 프랜차이즈 속에서 문화라는 것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자본의 규모화 법칙만은 아닌 것 같고, 문화와 착취가 만들어내는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잘하면 될 거 아니야?” 정말 그렇다. 자기만 잘하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도 만들어지면 좋겠는데, 프랜차이즈 전성시대에는 그게 어렵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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