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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등대지기, 진중권을 위하여
[비나리의 초록공명] 절필은 절망일까? 아니면 희망을 위한 고통일까?
 
우석훈   기사입력  2006/08/05 [13:06]
1. 진중권의 공적 글쓰기의 절필선언
 
스스로를 시사평론가라고 부르는 진중권이 그간 SBS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생긴 이야기들을 모아낸 책의 서두에 더 이상 공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겠다는 절필 선언을 했다고 한다 (아직 이 책을 사 보지 못해서 개인적으로는 미안함이 있다. 곧 사볼 생각이다).
 
진중권에 대해서 말이 많지만, 어쨌든 안타까운 일이다. 난 진중권의 글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건 필체와 글의 스타일에 관한 문제이지, 그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주제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우리 사회에 각종 사회적 담론을 왕성히 제기했던 진중권씨     ©대자보
문득 ‘진중권의 고독’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났다. 약간 맥락은 다르지만, ‘전업시인’들에게서 느껴지는 고독과 진중권의 고독은 비슷했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소설가들에게는 장엄함은 느껴지지만 고독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진중권에게서는 고독이 느껴지기는 한다.
 
이제 미학과 관련된 글만 쓰겠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메타포어와 마타도어’라는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은 메타포어의 시대가 아니라 마타도어의 시대인 것 같다.
 
진중권이 어떠한 외로움을 느끼고 어떤 괴로움을 느끼면서 절필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의 괴로움이 우리에게는 불쾌한 종류의 것이 아니라 신선한 종류의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절망일까? 절망이라는 어떠한 종류의 절망일까?
 
진중권의 절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계속해서 고민하는 자연인 진중권의 신상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젠가 보다 고민의 깊이가 커지고 지혜가 높아진 진중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중권의 절필에 대해서 안타까와하기는 할지언정, 걱정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무슨 말을 하고는 싶었을 것 같다. 그 말이 절망이든 혹은 새로운 희망을 위한 포석이든 아니면 씨앗일지라도, 수다스럽게 수 년간 한국 사회의 최전선에 서 있던 진중권이라는 이름의 한 사나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냥 조용히 글을 안 쓰면 그만이지, 글을 안 쓰겠다는 새로운 또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은 또 뭔가? 그것도 고통스럽게 진행했던 자신의 대담 프로그램을 묶어낸 서문에 그 얘기를 다는 저자의 의도는?
 
절망일까? 아니면 희망을 위한 고통일까?
 
2. 로버트 레드포드의 <퀴즈쇼>
 
진중권의 글을 아주 좋아하지는 않지만,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시인 황 아무개를 비롯한 수많은 재수 없는 사람들에 비해서 진중권은 재수 없지는 않다. 그래서 언젠가 그가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글들을 쓰게 될 것이라는 그야말로 즐거운 상상을 조금은 하고 있었다. 사회의 최전선에 서 있던 사람은 만약 그 최전선이 가상이 아니라면 진화하게 된다. 진화든 퇴화든, 그 이전의 자연인으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가 SBS 라디오의 전망대를 맡는 걸 보면서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고,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퀴즈쇼>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다. 다른 경로와 아주 똑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아주 옛날에 나에게도 TV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달라는 요청과 진행자에 대한 간접적인 요청이 있었지만, 나는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누군가 내 얼굴을 본다는 것에 대해서 발작적인 부끄러움이 있어서 나서지 않았다.
 
<퀴즈쇼>라는 영화는 '진실이 있는가'라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해서 소위 미디어의 유혹 앞에는 아무리 좋은 벤도란의 가문의 문학박사라도 소용이 없었다는 절망에 관한 영화이다. NBC의 21이라는 퀴즈쇼에서 벌어졌던 스캔들이라는 실화를 영화로 한 것이다. 아들 벤도란이 이 방송에서 돈에 눈뜨고 거짓에 조금씩 무너져가는 과정과 미디어가 어떻게 스스로를 확대하고 유지하는 것에 관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괄호열고 “그리고 CNN이 생겼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진실? 진중권은 많이 괴롭고 외로왔을 것 같다. 그것이 꼭 SBS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고 듣고 싶어하는 것과,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해야하는 말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미국 대중들은 미국 최고의 가문 중 하나인 벤도란의 젊고 잘 생긴 문학박사인 찰스 벤도란이 퀴즈에서 연승을 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고, 가난하고 천박해보이는 퇴역군인이나 유태인들을 ‘뛰어난 상식’으로 무찔러주기를 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링컨의 시신을 검시한 검시관의 이름 같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문학과 진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러나 퀴즈쇼는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지 못하느냐를 물어본다. 그것이 쇼다.
 
라디오나 TV에서는 퀴즈쇼의 형식은 아니지만 여전히 쇼를 만들어낸다. 그 날의 가장 유명한 사람과 그 날의 가장 중요한 얘기를 사람들에게 포장해서 보여주고, 때로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 가끔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답을 사람들 앞에 제시한다. 그리고 TV는 TV끼리 경쟁하고, 심지어는 TV와 라디오도 경쟁을 해야 한다. SBS 라디오가 던졌던 회심의 카드의 맨 앞에 진중권이 서 있었다.
 
그는 황우석에 대해서 입장을 정했고, 새만금에 대해서도 도올을 만났고, 또 그렇게 매일 대담이라는 형식의 쇼 앞에 서 있어야 했다. 잘 했느냐 못 했느냐는 다음 문제이고, 그렇게 자신의 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대단히 괴로운 일이다.
 
우리나라에 이런 쇼가 몇 가지 있다. 손석희의 백분쇼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쇼이고, KBS에서 하는 쇼는 별 볼 일 없이 지루하고, SBS에서 하는 쇼는 가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큰 차이는 아니다. 어차피 쇼일 뿐이다.
 
진중권은 자신이 원했든 혹은 원하지 않았든 자신의 쇼를 가지게 되었고, 그걸 진행을 했다. 아마 지금 그의 육체는 심하게 아플 것 같다. 아침마다 일어나 쇼를 진행한다는 일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신의 쇼에서 그가 진실을 보았을까? 혹은 고통을 느꼈을까? 진중권의 쇼는 이제 막을 내렸고, 그와 함께 진중권의 ‘공적인 글쓰기’도 이제 막을 내렸다.
 
3. Age of Man is over, Age of Orc is come...
 
미안하게도 난 아직 진중권의 새 책을 사보지 못했고, 그가 절필했다는 사실을 한겨레 신문의 김선주 칼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가 “진중권이 절필한대요, 딴 사람도 그런 사람 많대요”라고 일러준 셈이다.
 
진중권은 90년대에 속한 사람이고, 살아서 21세기로 넘어온 거의 마지막 세대 중의 한 명이다. 빛과 어둠이라는 약간 유치한 이분법을 사용하면, 그는 어둠에서 빛을 희망한 사람이다. 그의 글에 대해서 따라붙는 수많은 유치찬란한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중권을 희망이라고 생각한 것은 진중권이라는 존재가 희망이기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불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는 등대, 여기는 등대!” 사실 밤을 세우면서 썼을 것이 뻔한 진중권의 글들이 외쳐대고 있는 것을 한 마디로 모아본다면, "여기는 등대, 국민여러분, 삶의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라고 지난 10년을 하루 같이 진중권은 외쳐대고 있던 셈이다. 육지가 바다보다 나은지 모르겠지만, 바다에 떠 있는 등대는 희망을 상징한다. 물론 등대 그 자체가 희망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진중권의 글들은 등대와 같이 희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진중권이 더 이상 “너희들이랑 안 놀아”라고 크게 외쳤다. “나, 단단히 삐졌고, 이젠 친구들하고만 놀거야”라고 책에서 아주 크게 외친 셈이다.
 
“미학을 아느냐?” 그럼 우리 친구하까? 미학에 대해서는 글 쓸꺼거든...
 
이런 진중권의 선언은 진중권이라는 이름의 등대가 불을 끄고 육지로 철수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진중권 등대지기의 사비로 운영되던 희망등대가 이제 불을 끈 셈이다. 지금껏 어렴풋이 등대를 보면서 방향을 잡고 육지가 어디에 있는지 혹은 육지라는 곳이 도대체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서 방향을 잡던 사람들에게는 이제 등대가 사라진 셈이다.
 
등대? 누가 감히 등대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가? 등대의 불빛이 빨간색이든 파랑색이든, 강렬하든 혹은 유려하든, 아니면 설령 현대식 서치라이트이거나 심지어 싸이키 조명이라고 한들, 누가 등대에 대해서 아름다움을 논할 수 있는가? 육지가 있음을 상징하는 등대는 그 자체로 희망이고,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생존의 희망에 관한 영역이다.
 
진중권이라는 등대지기가 자신의 불꽃을 끄겠다는 선언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영화 대사가 하나 있다. 반지의 제왕 3편에 미나스티리스의 성벽을 에워싼 6만 이상의 오르크 부대의 총지휘관이 돌격 명령을 내리면서 아주 멋진 대사를 하나 외치는데, 톨킨스는 그의 주요한 대사들이 그렇듯이 아주 멋진 시(詩) 형식의 대사 하나를 지었다. 영화에서도 이 시에 대한 낭송은 아주 멋진 장면이다.
 
Age of Man is over,
Age of Orc is come.

 
인간의 시대는 갔도다
이제 오르크의 시대가 오는도다.

 
진중권이 한 얘기는 이제 오르크의 시대가 오고, 진중권이라는 등대는 더 이상 서 있기가 어려워서 불을 끈다는 선언이다. 내가 아는 많은 우파 작가들도 툭하면 더 이상 글을 안 쓰겠다고 술 자리에서 선언하기는 하는데, 그 중에 누구도 어지간해서는 공개적으로 선언을 하거나 발표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안 쓰면 되는데, 선언이 필요하지 않지 않은가?
 
그런데도 굳이 절필선언의 형식 그것도 책의 서문 형식을 빌어 오랫동안 사설 등대를 운영해왔던 진중권이 해주고 싶었던 말, 그 가슴 속의 한 마디가 무엇이었을까?
 
“다들 살아남기를 바래”
 
4. 진중권의 인생에 축복이!
 
엇갈리는 운명 속에서도 나는 진중권을 만난 적이 없고, 당분간 그럴 것 같다. 그래도 하도 여러 사람들이 나에게 얘기를 해주어서 진중권의 인생과 삶 심지어는 그의 학문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다.
 
어둠의 시대에 홀로이 등대지기 역할을 하고, 도대체 축구와 황우석 아니면 관심없는 이 대한민국에서 희망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 희망 혹은 축복을 위해서 스스로 ‘광야의 외치는 사나이’의 역할을 했던 이 사나이가 그의 사적인 공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선언을 보면서, 한 마디를 더 추가하고 싶다.
 
진중권의 인생에 축복이!
 
그의 불빛을 보면서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이 아직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내가 그의 삶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한 마디인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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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05 [13: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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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ㅣㅗ 2006/08/20 [07:49] 수정 | 삭제
  • 진중권의 주장보다 때로는 진중권의 문체가 더 재미있던데...물론 주장의 많은 부분에도 공감하는 편이지만...
  • 과객 2006/08/06 [22:33] 수정 | 삭제
  • 나는 잘 만들어진 정답보다는
    제대로 던져진 문제에 훨씬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진중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아주 드물지만, 가끔 매끈하게 정답 같은 흉내를 낼 때보다는
    혹자들의 말대로 싸가지 없고 재수 없게 던지는 문제제기가 훨씬 좋다.
    그리고 그의 문제제기는 대부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진중권이 제수없지 않으며 그의 글 또한 재수 없지는 않다.
  • 반대 2006/08/05 [15:37] 수정 | 삭제
  • 진중권은 재수없지는 않다?
    그건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겠지요.
    진중권은 아무리 보아도
    진정보다는 잘난 채의 흔적이 더 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