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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과 인조, 인목대비, 그리고 FTA의 교훈
[비나리의 초록공명] 숨죽이고 살아가는 민중의 운명, 역사에서 안되는 일
 
우석훈   기사입력  2006/07/17 [15:27]
인목대비와 나는 혈연적으로, 소위 blood-line으로는 별로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나의 딸이 생기면 얘기는 다르다. 나의 아내가 인목대비의 직계이니까 혈연적으로 나의 딸도 인목대비의 직계가 된다. 그래서 내가 인목대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 같다. 
 
서울말로는 “이겨마신다”고 한다. 아내는 많은 경우 나를 “이겨마시게” 된다. 물론 할 만한 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 집안에는 존경할만한 전통을 세 가지 이상은 가지고 있다. 인목대비만이 아니라 워낙 왕비를 많이 배출한 집안인데, 가장 가깝게는 의친왕비 김씨가 이 집안 출신이라고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도 몰랐던 일인데, 왕비를 많이 배출한 집안이라서 그런지 금기도 많고, 가풍도 어려운 요구가 많다. 
 
당상관 이상은 하지 말라는 집안의 가훈도 눈여겨 볼만한 일이고, 땅투기를 절대 하지 말라는 내력도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남성보다는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이 특별한 분위기도 중전들을 줄줄이 배출한 집안다운 일이기도 하다. 하여간 이렇게 배출된 조선의 중전 중에서 인목대비가 가장 유명한 경우라고 한다. 
 
조선의 마지막 황손들이 몰락한 것처럼 아내의 집안도 겨우 먹고 살 수준이다. 별로 생각이 맞지 않은 장인과 나의 사이에 말싸움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은 못된 짓해서 치부한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훌륭한 집안이라고 생각하고, 검소하고도 검소한 가풍만큼은 드러내놓고 자랑하고 싶다. 
 
하여간 이렇게 대가 센 인목대비가 분을 참지 못해서 결국 왕위에서 끌어내린 사람이 광해군이고, 인목대비를 등에 엎고 왕이 된 사람이 인조이고, 이 사건을 인조반정이라고 부른다. 
 
광해군과 이순신의 관계는 드러난 것이 별로 없는데, 하여간 임진왜란 시기에 세자책봉이 되어 실제로 조선의 병영을 현장에서 지휘하고 전란상황을 총지휘한 사람이 광해군이다. 
 
망해가는 명이 파병을 요청했을 때 “지지 않는 전투를 하라”는 정말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사람이 광해군이다. 이 광해군에게 왕위를 뺏은 다음에 인조가 명에 바로 왕위 인정을 해달라고 사신을 보내는데, 이 때 명황조는 이 사건을 찬(簒)이라고 명실록에 기록했다고 한다. 찬이라는 단 이 한 글자가 당시 중국이 우리에 대한 시각을 말해준다. ‘찬’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쿠데타 같은 걸 의미하는데, 하여간 명에 대한 충성을 난의 명분으로 삼은 인조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기는 한 것 같다.  

청 태종 누루하치가 상황을 지켜보다가 명을 치기 위해서 조선에게 임란 때의 활약으로 유명해진 수군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다급해진 명이 2년이 약간 안 된 시점에서 황급하게 인조의 등극을 인정하게 된다. 
 
물론 상황은 급진전되고, 청이 우리나라에 처들어오고, 남한산성으로 급하게 피하게 되는데, 이 때 인조가 물맛이 좋다고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문정동’이 되었다고 한다. 겁나게 터지고, 인조의 부대는 8기군이라고 부르는 청의 정예군에게 완전히 당하고, 그야말로 동북아 정세는 청의 역사로 넘어가게 된다. 
 
물론 이렇게 흥했던 청도 ‘최후의 황제’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고, 반청복명을 앞세웠던 의화단의 난이나 이런 것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된 프랑스 유학파들이 중국 대륙을 장악하게 되고, 결국 지금의 중국공산당의 적통이 이 때 형성되게 된다. 
 
가끔 사실상 선조와 인조를 거치면서 조선의 국가로서의 대세는 거의 사라졌고, 영정조 시절에 잠깐 흥했다가 철종 때 국운이 완전히 꺽이면서 일본에게 나라를 넘겨주게 된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광해군이 인조에게 밀려 내려갈 때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가끔 해본다. 과연 인조가 나쁜 사람이라서 광해군을 끌어내린 것인가 아니면 인목대비가 워낙 지기를 싫어하는 것이라서 이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요소가 있던 것인가? 
 
FTA 같은 걸로 요즘 하도 시설이 하수상하니까 역사 속에 있던 갈래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광해군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혹은 그에게 조언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런 것들이 괜히 궁금해진다. 혼자서 광해군의 법통이 내려왔다면 과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해임시 정부 시절에 그 안에서 어떤 토론들을 하고,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렸는지 이런 것까지도 괜히 궁금해진다. 상해시절에 사용하던 국새도 없어졌다고 한다. 보따리에 싸서 임정 사람들이 해방 이후에 가지고 오기는 했다는데,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단다. 
 
광해군, 인조,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역사에는 숙명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영웅적인 몇 사람이 등장해서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어려울 것 같아보인다. 
 
하긴,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시절의 나만 생각해보더라도, 민족주의 사관 외에 다른 역사관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사관들끼리 서로 경쟁하면서 역사에 대한 해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상 민족주의 사관이라는 것을 대체할 또 다른 사관이라는 것이 등장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지금 나는 민족주의 사관과 그런 방식의 역사관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세상을 보는 경향이 있다. 여전히 이순신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혹은 그야말로 이 땅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민중들은? 그야말로 안 되는 일은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잠깐 든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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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17 [15:2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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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멍청이 2010/08/03 [09:49] 수정 | 삭제
  • 광해군은 왕권위협하는 영창대군,임해군을 죽였지만,인조는 소현세자를 죽이고,그의 반대파 이이첨,한찬남 등을 싹쓰리 해서 폭군이야. 폭군 중 데폭군
  • 멍청이 2010/08/03 [09:45] 수정 | 삭제
  • 인조는 폭군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