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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부항을 뜨고 물팩에 넣을 물을 끓이다
[기자의 눈]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법을 다시 생각한다
 
황진태   기사입력  2006/07/02 [19:45]
새벽 2시 5분. 어젯밤에는 논문준비로 밤을 새서 진작에 오전 강의만 듣고서 집에 와서 하루 종일 잠에 취했다가 새벽 한시께나 아버지의 인기척에 잠을 깼다.

때마침 아버지께서 야근을 하고서 귀가를 하셨는데 평소에 허리가 아프다며 25년 동안 들어왔던 '엄살'인줄 알고 스쳐 지나려다가 버스를 정비하다가 미끄러져서 허리를 삐끗했단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는데 시원찮다고 해서 우리집 애용품인 플라스틱 부항을 떠드리니까 피를 뽑았던 자리에서 다시 검은 피가 걸죽하니 부항 속의 수위를 높였다. 더불어 물팩에 담아 넣을 물을 주전자에 담아 가스렌지에 올리고서 20여 년 동안 했던 안마를 시작했다.

원체 마른 몸인데도 불구하고 내 손의 아귀힘이 남보다 세서 중학교 시절에는 체육 선생님에게 안마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허리와 다리를 주물락 거리며 티비를 세, 네 시간이고 보아서였다. 허약한 몸에 손아귀 힘만은 세지 게 된 것에 대해서 아버지한테 고마워해야 할까. 써야할 논문을 미루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보다 좀 더 본원적인 물음표를 파고들고 싶어서다.

이렇게 어줍잖은 글들을 끄적이기 시작한 배경에는 집안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작용했을 터다. 얼추 따지고 보자면 중학교 시절부터 외가에서는 열혈학생운동을 하던 외삼촌이 갖고 있었던 유물론 서적을 물탄 듯 숭늉 같은 보잘 것 없는 독일어 실력으로 몰래 읽기 시작한 거, 친가 쪽에서는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하던 숙모까지 영향이 있었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영향은 노동자 의식을 심어준 아버지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외삼촌의 유론론 서적도 숙모의 전교조 직함에서 나오는 직접적인 사회의식이 아니라 에두르는 방식으로 의식을 심어줬다. 가령 어렸을 적에 학원 다닐 돈은 없었지만 박물관은 어디가 개관한다면 휴일에 집에서 쉬는 것을 차치하고 데려다 주셨는데 오늘날 지리를 전공하며 공간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된 선상에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대표적인 매개체인 박물관에 대해서 가령 전쟁기념관이 '평화'기념관이 아닌 것에 대한 의심을 할 수 있게 된 연유는 어렸을 적 박물관 견학이 비판적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그람시를 모르면서도 존재가 의식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는 그람시의 주장을 직접 몸으로 실천한 것도 그였다. 역설적이지만 전경련 기관지나 다름없는 <한국경제신문>을 십여 년 동안 구독하면서도 특별히 노조활동을 한 것도 아닌데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연대를 해야 한다"는 발언을 뜬금없이 내뱉을 때는 기이하다.

요즘엔 이 신문을 안보지만 어려서부터 덩달아 함께 애독하던 나도 몇 년 전에는 <한경>에 실린 기사나 칼럼에 대해서 <대자보>지면에서 비판을 했던 것처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방식을 통한 문제제기를 습득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자신은 모르지만 자식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의식을 심어준 듯 하다.

30여 년 전 정비기술하나만 배워가지고서 서울에 상경한 시골촌놈이던 아버지는 버스회사에서 줄곧 정비를 하다가 IMF시절에 평생직장에서 명퇴를 당하고서는 평소 좋아하던 산을 징글맞게 타다가 운 좋게도 현재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이제는 관리직이라 허리를 쓸 일이 없는데도 오늘따라 사람이 딸려서 버스정비를 도와주려다 다친 거 같다.

예전에는 몸은 작지만 안마를 하면서 은근히 아버지가 갖고 있던 노동자의 탄탄한 근육을 경외했었는데 요새는 배만 볼록한 게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닮아가고, 팔과 다리는 더욱 가늘어진 게 제 자식에게 손아귀힘과 함께 노동자를 비롯한 타자의 관점에서 비판적 글쓰기를 꾸준히 하도록 뇌에 주름을 만들어주는데 힘을 쓰느라 본인은 그렇게 마르게 됐다고 생각하면  기자의 너무 자기위로적인 발상일까.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자란 자식이 자리를 잡고서 돈을 벌 때까지 우리 가족이 암묵적으로 25년 동안 '엄살'로 규정한 당신의 디스크를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버티시라. 이제 곧 당신이 좋아하는 산, 징글맞게 오르락내리락 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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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02 [19:4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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