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창경‘원’에 사쿠라꽃이 심어진 이유를 아시나요?
[책동네] 일본 식민지배정책 다룬 요시미 순야 <박람회-근대의 시선->
 
황진태   기사입력  2006/06/21 [11:10]
‘스펙터클(볼거리)의 사회’에 대한 분석은 푸코가 대표적이지만, 근대적 시선과 제국주의적 시선, 자본주의의 시선을 박람회, 백화점, 운동회 등을 매개로 하여 분석한 요시미 순야의 연구 또한 괄목하다. 이번에 소개하는 ‘박람회 -근대의 시선-’(요시민 순야 지음, 이태문 옮김, 논형)은 일본에서 발간된 지도 10여 년이 훌쩍 지났고, 스펙터클 사회 연구에서는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도 2년 가까이 되었는데 뒤늦게 서야 서평 할 생각을 한 것은 독일 월드컵이라는 “지구규모의 미디어 스펙터클”이 작동되었고 한국사회에서는 마치 남의 일인냥 한미 FTA, 대추리 사태 등등의 사회쟁점현안들이 월드컵 소식으로 파묻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자 개인적으로 일본 식민지정책에 대한 독해 또한 이유이기도 하다.

창경‘원’에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창덕궁 박물관’

▲ 요시미 순야 지음, 이태문 역 <박람회-근대의 시선>     © 논형, 2004년 02월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유럽의 타자에 대한 식민지 정책을 통하여 획득한 다양한 식물과 동물 등의 전리품들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한 존경받는 지식인 故에드워드 사이드의 시선을 빌리자면 “우월한 서양과 열악한 동양과의 사이에서 그 구별을 뿌리깊게 설정하는 것”(34쪽)이었다. 오늘날의 식물도감과 동물도감의 분류학은 권력적인 시선이었다.

이러한 분류된 식물과 동물들은 당연히 보관할 곳이 필요했는데 그래서 그 ‘장소’가 바로 오늘날의 식물원, 온실의 기원이 되었다. 이러한 분류를 통한 시선의 지배는 박물관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우리가 요즘 흔히 먹는 오렌지의 어원은 이러하다. “당초 새로운 과실의 주역은 오렌지였다. 17세기말까지는 ‘오린저리’(Orangerie)로 불리는 목조 온실이 각지에서 발달하였다.”(57쪽)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창경궁은 창경‘원’(昌慶苑)이었다. “‘궁’(宮)이란 왕과 왕실이 사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요, ‘원(原)’이란 사냥이나 야유 등 놀이를 하는 곳이란 말이다.”(홍순민, 우리궁궐이야기, 232쪽) 일본이 유럽으로 ‘근대’를 받아들일 때 식민지 지배정책으로의 활용책으로써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을 바로 조선시대 정치권력의 정점에 상징적으로 세움으로써 조선에 대한 민족적 자존심을 뭉그러뜨린 것이다. 여기서 일제의 식민지 정책의 간악함을 볼 수 있다. 일제가 당시 창덕궁을 ‘창덕궁 박물관’으로 만들고, 창경궁에는 동물원과 식물원을 세우고 일본 국화인 사쿠라를 심었던 것을 일본이 조선에 대한 ‘근대의 세례’라는 가식적인 껍데기를 해방 이후에도 몰랐던 것일까.

1970년대 후반까지도 ‘창경원 밤 벚꽃놀이’가 “서울 시민 최대의 낭만”이었고, 1984년이 되어서야 창경궁 복원공사가 시작되고 동물원과 사쿠라 나무들이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으니(홍순민, 앞의책, 226~233쪽 요약) 일제의 식민지 정책의 탁월함으로 말해야하는가 이 사회의 무지라고 말해야 하는가. 더더욱 접입가경인 것은 한 나라의 문화를 관장하는 문화재청장에 있는 사람이 고궁에 음주파티를 열어서 일제가 했던 짓을 똑같이 되풀이했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 안의 식민지 심성은 완전히 걷어진 걸까.

서양 박람회를 베낀 아니 그 이상인 일본의 식민정책

이러한 분류를 하고자하는 욕망은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을 통과하여 총합적으로 박람회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제는 이국의 매력적인 동식물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인과 분류/분리된 ‘인간전시’를 시도한다. 이러한 인간전시의 시작은 1800년대 영국 런던에서 열었던 윌리엄 블록이 기획한 전시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북극권인 랩랜드(Lapland)사람과 북미 인디언, 부시맨 등의 “이색인종”과 브라질의 인디오, 아프리카의 카필족, 아스테카의 선주민,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보리진 등이 “관람용”으로 선보였다.(77쪽)

이후에 본격적인 제국주의 시대로 들어가면서 당시까지의 장삿거리용으로 인간전시를 했던 동기가 보다 풍부해져 “‘인간전시’, 다수의 식민지 원주민을 박람회장에 데려와 박람회가 개최되는 동안 울타리가 둘러쳐진 식민지촌 안에서 생활시키고, 이를 전시한 사실로 19세기말 사회진화론과 인종차별주의를 직접 표명한 전시 장르의 등장”이 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이를 어떻게 학습하고 응용했을까. 일본은 서양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자국의 아이누족 전시를 시작으로 유럽에 -오늘날 한류에 가까운- ‘자포이즘’을 일으킨 일본 미술품, 건축물 등을 전시했지만 이러한 제국의 시선을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러일전쟁에서의 승전과 함께 “이러한 응석 안에는 일본이 구미의 ‘근대’가 발신하는 제국주의적인 시선을 다시 보면서, 이를 상대화해 간 것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도 똑같이 또 다른 ‘근대’로서 자기를 시선으로 삼던 구미와 마찬가지로 주의의 사회를 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237쪽)

그리하여 1903년 제5회 내국권업박람회에서는 “학술인류관”이라고 불리는 곳에 “훗카이도의 아이누 5명, 대만생번 4명, 류구 2명, 조선 2명, 지나 3명, 인도 3명, 동 키린인종 7명, 자바 3명, 바루가리 1명, 터키 1명, 아프리카 1명 등 도합 32명의 남녀가 각 나라의 주거를 본 뜬 일정의 구획 안에서” “단란하게 일상의 거동”을 보여주었다.(242쪽) 조선관으로 조선이 박람회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인간전시’의 연장선상일 뿐이었다.

일본시찰단을 연구하고 있는 동국대 강사 조성운의 논문에 따르면 식민지협력기관 주도하에 이루어진 일본시찰단의 코스에 있어서 이러한 박람회가 빠지지 않은 이유는 “박람회를 식민지 지배전략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략) 일제는 박람회의 견학을 통해 일본문화 및 일본인의 우수성과 조선문화 및 조선인의 열등감을 각인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라 생각한다. 즉 일본의 시찰을 통하여 일본의 선진문물을 선전하고 이를 조선에 이식하라는 것이었다. (중략) 그리하여 이를 통하여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순응하는 인간상이 창출, 즉 동화주의정책을 관철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조성운, 매일신보(每日申報)를 통해 본 1910年代 日本視察團, 2004)   

어디 이뿐이랴. 앞서서 창경궁에 식물원, 동물원을 세웠던 전략은 경복궁에서도 발휘된다.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50일 동안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記念朝鮮物産共進會)’라는 박람회를 경복궁에서 열었는데 “‘시정(始政)’, 곧 새로운 정치를 시작한 지 5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개선되고 진보한 상업 기타 문물을 한곳에 모아’ 보여줌으로써 ‘당업자를 고문 진작시키고 한편으로는 조선 민중에게 신정의 혜택을 자각시키기 위한’ 자리였다. 식민통치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속내는 경복궁들의 전각들을 헐어 없애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를 짓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홍순민, 앞의책, 133쪽)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곤충과 같은 다중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요시미 순야 또한 본서에서 푸코를 자주 인용했듯이 박람회에서는 스펙터클의 사회를 목격한다. “권력장치의 박람회” 뿐만 아니라 올림픽(1936년 히틀러가 유대인 박해와 타국가 침략을 가리고 ‘제국’을 신성화했던 베를린 올림픽은 물론이거니와)과 미디어 발달로 인한 “지구 규모의 미디어 스펙터클의 시대”에 대표적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취향의 3S정책에 비견될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의 동공은 붉은 빛깔과 축구공 하나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 책이 현대사회의 중요한 일면인 ‘스펙터클의 사회’의 작동기제를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각자 필요한 부분을 뽑아가길

이번 서평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박람회를 통해 본 도시화와 소비사회의 분석은 특히, 파리의 사례는 정말 매력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는 근간인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원제 MYTH & METROPOLIS), 그렘 질로크 지음, 효형출판)와의 겹쳐읽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또한 본서에서도 일부분 분석했지만 박람회의 연장선상에서 본 백화점에 대한 근대적 시선에서의 분석을 깊게 들어가고 싶다면 하쓰다 토오루의 ‘백화점’을 참조하시라. 기자가 지리를 전공해서 사실은 이러한 도시분석을 파고들고 싶었지만 근래에 월드컵이라는 스펙터클이 내 동공을 엉뚱한 곳으로 옮겨놓았다. 무슨 책이든 독자들도 각자가 필요한 부분을 뽑아서 읽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 그게 일본처럼 청출어람 할 수 있는 지름길 아닐까.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6/21 [11:1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