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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부와 청와대는 지금 꿈꾸고 있는가?
조중동과 한나라당, 미국이 칭찬하는 일은 한민족의 불행
 
양문석   기사입력  2003/05/20 [16:38]
대통령 왈 "미국에서는 성공적이라 판단했는데 국내에서는 비판적인 견해가 있는 것 같다…자기 지지기반에 잘 보여야 할텐데, 내가 여당인지 야당인지 모르겠다." 박관용 국회의장 왈 "초당적으로 환영할만한 성과다.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뒷말이 없는 경우가 없다…비서실장 시절 경험으로 볼 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정책결정과정은 신중히 고려하되, 결정되면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

지난 19일 3부 요인과 헌법기관장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나눈 대화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경향신문 20일자는 "'방미 비판 여론' 뒤집기 안간힘"이라는 제목에 '청와대, 적극해명 나서'라는 소제목으로 청와대가 '성과 홍보주간'으로 설정했다고 비꼰다. 그리고 "미도 한국 극찬했는데…"라는 작은 제목까지 덧붙여 준다.

야당과 조중동 심지어 조선일보 전 주필이며 한국의 가장 비판적(?)인 논객 김대중씨마저 극찬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왜 안 했을까. 미국만 극찬하는 것이 아닌데. 한데 미국이 극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성과가 부각되는가.

참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담겨 있어 어디부터 매듭을 풀어가야 할지 헷갈린다. 굽실거리지 않겠다, 밥 먹으러 미국가지는 않겠다던 말은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때 노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였고, 자주외교의 상징어였다.

한데 '정치수용소' '한국전쟁 때 미국이 없었다면' 운운은 굽실거림을 넘어 바짝 엎드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일반인이 미국가서 술자리에서 한 담론이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이 가서 공식석상에서 내뱉은 소위 '외교적 수사'란다. 그렇다고 치자. 외교적 수사를 지나치게 트집잡는 것은 '대통령님에 대한 결례'일 수 있다. 그러면 소위 성과라고 하는 평화적 해결원칙을 보자. 이것은 대통령이 굽실거리고 무릎꿇지 않아도 누누이 미국정부가 밝혀온  내용이다. 자자세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당하는 '굽실이 외교'의 성과가 아니라는 의미다. 당연히 성공적 외교라고 할려면 최소한 '무력공격 가능성 배제'다. 대통령이 끝없이 불렀던 노래이기도 하다. 한데 이를 없애기는 커녕 합의문 속에 명문화시켜 주었다.

성공의 개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노 정권 출범이후 사전적 의미가 바뀌지 않았다면 이것은 분명히 실패이거늘 어찌 성공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설명이 없다.

여기에 5월19일자 발행 '청와대 브리핑'의 1면은 참으로 가관이다. "서로간의 호의발언이 '저자세 외교'라니…"라는 큰 제목에 "외교는 국익과 도덕성이 두 기준…방미로 한미동맹 우호 재확인"이라는 소제목을 단다.

"외교는 국익과 도덕성이 두 기준"이라는 주장. 어디서 참 많이 들어봤던 문구다. 을사5적들이 종국에 자신들을 합리화 것이 국익이요 도덕성이었음을 혹시 청와대 브리핑은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무조건 갖다 붙이면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번 방미가 국익인지에 대해서 설명이 없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대통령선거기간에 했던 남북관계와 한미관계 관련 그 모든 주장이 반국익적 발언이었고, 반도덕적 발언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제발 설명을 해라. 무엇이 국익이고 무엇이 도덕인지. 그리고 지난 발언과 주장은 왜 반국익이고 반도덕인지를 설명해야 설득력이 있다.

또 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들이 미국을 방문한 후 '우의'를 재확인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우의. 좋은 관계라는 뜻이리라. 애들 장난도 아니고 대통령간의 인간적인 개인적 차원의 '친구삼기'가 외교의 성과인가. 동네 양아치들도 친구삼기를 할 때 유불리를 따지고 손익을 따진다. 바짝 엎드려 쟁점이 될 만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소국의 대통령이 예뻐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

또 있다. 청와대 브리핑의 기본도 안된 주장 하나를 살펴보자. "…한국이 일방적으로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면, 易地思之로 미국에서도 최소한 같은 평가가 나와야 마땅하다"가 그것이다. 형님의 신경을 자극하지 않고 오히려 형님나라의 힘을 인정하고 그 힘으로부터 혜택 받았다고 하는데 누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겠는가. 역지사지는 청와대브리핑의 몫이다.

또 있다. 청와대브리핑이 제대로 조중동을 비판하고, 억울하고 박해받을 개연성이 있는 기사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려 스스로 공신력을 키워가야 한다. 그런데 2면 "방미, 나는 성공했다고 확신한다"는 제목은 그 자체로 방미가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보여주는 참으로 역설적인 선언이다. 그리고 글쓴이가 "한 수행원의 방미 6박7일 '보고 느낀대로'"이다. 그토록 성공에 대해서 자신이 있다면 왜 익명으로 처리하나. 부끄럽고 자신의 정치역정에 혹여 오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 않았다면 익명으로 처리할 이유가 없다. 중앙일보의 '지금은 노조시대'가 거의 대부분 익명처리되었고, 심지어 사측에 유리한 증언을 한 80%가량이 익명임을 MBC 미디어비평이 비판하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내용도 그렇다. '근거리 관찰의 소회'를 썼는데, 근거리 관찰이 논리적으로 합당한가. 근거리 관찰은 주관적 관찰과 상당히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 제대로 관찰하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관찰'이 옳다. 그래서 익명으로 처리했나 보다.

최소한 청와대브리핑이 제대로 역할을 하고 다른 언론들을 비판하려면 스스로 그 만한 논리적 합리성과 공신력을 가져야 한다. 천민 재벌들의 홍보실 역할이 아니라 이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풀어가는 '방향타' 역할을 기대하면서 청와대브리핑의 반성을 촉구한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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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5/20 [16: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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