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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혹은 부활, 90년대의 문화코드-한석규론
[민병선의 씨네오딧세이] 다른 캐릭터들과 조화로운 앙상블 펼쳐야 빛나
 
민병선   기사입력  2006/03/15 [19:46]
90년대의 문화코드-한석규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윤서(한석규 분)가 음란소설을 통해 해방감을 느낀다는 <음란서생>이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계속된 흥행실패로 한석규의 몰락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받았던 당대 최고의 흥행배우로서 그 또한 안도의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한석규는 90년대 후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였다. 그는 90년대의 문화코드를 대변하는 시대적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대중문화 지형도에 한석규라는 브랜드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코드는 2000년 대 들어서 낡은 것, 구시대적인 가치로 전락하면서 갑자기 국민배우에서 무장해제 되는 좌절을 맞본다. 시대의 코드가 변화하는 시점에서 한석규가 갖고 있는 보수적인 것, 엘리트적 이미지, 가부장적 이미지가 주는 신뢰와 믿음은 더 이상 미덕이 되지 못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는 과도기적 이미지가 한석규의 성공요인이기는 하다. 변화에 부합하는 새로운 것, 이를테면 개인의 일상을 밀도 있게 담아내는 <8월의 크리스마스>, 조직보다는 개인을 부각시켜 90년대의 탈 이데올로기 시대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초록물고기>, 멜로의 새로운 유행을 보여준 <접속>, 밑바닥 인간 군상들의 부조리를 다룬 <넘버3>가 보여주는 모더니즘의 전복은 한석규라는 시대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2000년대 들어 단점으로 작용한다. 엘리트적 이미지는 더 이상 매력을 주지 못했다. 고유한 개성을 최대한 끌어내 날 것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송강호나 설경구 최민식의 성장은 한석규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90년대라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카리스마적인 이미지, 예컨대 <쉬리>의 첩보원이면서도 선택의 기로에 서서 갈등하는 유약한 이미지로 성공했지만 지금에 와선 영화전체를 지배하는 보수적 이미지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그가 지금껏 한석규라는 브랜드를 만든 장점들, 가령 시나리오를 보는 심미안적인 깊이나 성실함, 일관된 캐릭터 연기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단점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영화제작을 시작하면서 개발에 따른 시행착오로 장기간의 공백을 초래한다. 영화라는 한 우물을 파던 당대스타가 버려야할 혹은 극복해야할 낡은 이미지로 한순간에 치부돼 버렸다. 신세대에게 한석규는 그저 이동통신 광고 모델로 기억되었다. 여기서 그의 행보는 비단 한석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영화산업의 좌표를 측정할 수 있는 기표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타시스템 없는 스타캐스팅
 
얼마 전 매니지먼트사와 제작사들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영화산업의 총체적인 문제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생존경쟁을 보는 듯 씁쓸했다. 스타캐스팅이 영화의 흥행을 담보하는 유일한 척도가 될 때 배우들의 몸값은 높아지는 게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충무로의 최고 권력은 이제 매니지먼트에서 나온다. 투자를 받는 것도 제작을 하는 것도 매니지먼트의 입맛에 따라 결정된다. 한국영화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스크린쿼터 축소와 더불어 한국영화 산업을 위축시키는 불길한 징조가 될 것이다. 요즘은 상당히 흔한 일이지만 한석규 또한 매니지먼트에서 영화제작사로 일찌감치 말을 갈아탄다.
 
영화는 위험부담이 많지만 한번 흥행에 성공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사업형태를 띠고 있다. 흥행에 자신감이 있는 스타배우들이 제작사를 차리거나 매니지먼트가 자체제작에 뛰어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번 성공하면 출연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수익과 판권에 따른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욕이 앞선 매니지먼트의 이런 욕심은 장밋빛 청사진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독과점을 막기 위해 제작과 배급 상영을 수직 계열화하는 것을 위법이라고 규정한 이유는 산업의 건전성을 헤치고 경쟁을 방해해 결과적으로 질 낳은 작품을 생산한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각자의 고유한 전문영역을 존중하지 못하고 무시한 채 넘본다면 마찰이 발생하게 된다.
 
스타캐스팅이 만사형통이라는 천박한 한국영화계는 잡탕이 된지 오래다. 누구나 스타캐스팅을 하면 투자는 물론 제작까지 마당발로 가능한 현 상황은 한국영화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저해한다. 한석규 또한 예외는 아니다. 100개의 제작사가 개발한 100개의 시나리오 중 가장 좋은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지 스스로 개발하려고 노력한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관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거다. 예컨대 작품을 위해 여배우가 옷을 벗어야 한다고 한다면 제작자는 설득할 것이다. 그러나 매니지먼트는 여배우의 상품성을 보존하기 위해 극도로 노출을 꺼릴 것이다. 이런 갈등은 대화와 설득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매니지먼트가 제작을 겸할 때 이런 문제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결국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작품의 질을 떨어뜨린다.
 
한석규의 적은 한석규다
 
한석규는 본인의 장점이라는 시나리오를 보는 탁월한 심미안의 눈높이를 맞출 작품을 개발하지 못해 공백기가 길어지는 우를 범한다. 한석규는 이 점을 보안하기 위해 막동이 공모전을 통해 유능한 시나리오를 찾겠다고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입맛에 맞는 시나리오는 우연히 길에서 줍듯 거저먹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제작사는 좋은 시나리오를 만드는 프로덕션 과정에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하지만 매니지먼트가 전문성이 결여돼 이 마저도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영화 산업 전체에 퍼져있다. 모든 매니지먼트가 캐스팅을 무기로 졸속제작을 남발함으로써 질 낳은 기획영화만이 양산된다. 영화는 없고 배우가 튀는 졸작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한국영화의 앞날에 불행을 자초할 것이다.
 
거대 매니지먼트가 자사 스타들을 캐스팅해 자체 제작하는 방식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그것은 근친상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스타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스타캐스팅만 난무한 채 자본의 집중만을 위해 이용된다면 결국 스타의 상품성은 고갈되고 만다. 한석규와 유사한 처지의 여배우로는 전지현을 꼽고 싶다. 그녀 또한 스타캐스팅의 희생양이 될 것 같은 예언을 해본다. 물론 매니지먼트가 이런 근친상간적 시스템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검증받은 원작이나 스토리가 탄탄한 출판물의 판권을 사들여 시나리오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한다. 또한 거대 자금을 이용해 제작사의 지분을 사들여 수직계열화하는 양상으로 한국영화 산업이 재편되고 있다. 그러나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의 결합은 결국 양쪽의 단점만을 부각시키는 폐해를 가져올 것이다. 에이전시는 에이전시, 제작은 제작, 배급은 배급이라는 고유영역의 전문성을 살려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한석규 또한 자체 제작한 <소금인형>이 결국 촬영단계에서 엎어지는 파국을 초래해 본인 스스로 이민가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커다란 좌절을 맛본다.
 
나아갈 길은 앙상블 연기다
 
한석규의 연기 스타일은 작품 분석을 통해 캐릭터의 맥을 짚어나가는 분석적 연기다. 나를 버리고 역에 몰입하는 방법 같지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한석규 본인이 툭 튀어나오는 지배적 이미지가 있다. 이는 전통적인 연기론을 바탕으로 하지만 전통적이지 않은 과도기적 연기다. 따라서 그가 당대 최고의 흥행배우지만 연기에 있어 뭔가 부족한, 따라서 작품에 비해 상을 주기 망설여지는 배우다. 명성에 비해 상복이 없었던 것도 그러한 연유에 기인한다.
 
오히려 그와 함께 영화를 한 배우들 최민식, 송강호, 심은하 등이 스타가 된다는 점은 이채롭다. 비교하자면 2000년 대 이후 새로운 트로이카를 형성한 배우들 설경구-최민식-송강호의 연기는 캐릭터 보다는 온전히 나 자신을 드러내는 연기술이다. 극 속에서 날 것 같은 현실의 나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이러한 연기법은 배우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개성을 최대한 끄집어낸다. 그러나 주어진 역할이 한정되어 있어 관객의 기대치를 배반할 때에는 냉정한 실패를 맛본다. 티켓 파워가 검증됐다는 설경구가 멜로를 할 때, 송강호가 양복을 입고 지적인 연기를 할 때 관객의 냉담한 반응이 이런 연유에서 발생한다. 즉 허구적 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본인이 할 수 있는 역에 제약을 받는다.
 
한석규는 변함없는 표정이나 발성, 몸짓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한석규 식으로 소화하는 패턴이 있다. 그것이 90년대라는 시대상에 부합되었을 때 한석규는 최고의 해를 맞았다. 그러나 이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자신을 지배하는 90년대식 문화 코드는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다행히 자체 제작의 미련을 버린 듯 활발한 외부 작업을 하며 한석규는 변신을 꾀한다. 그러나 그의 변화는 <음란서생>을 제외하곤 신통치 않다. 물론 음란서생의 연기도 만족스럽지 못한 부족함이 보인다. 최선은 다했지만 최고는 아니라는 뜻이다. 당대 최고의 흥행배우로서 시대의 이미지를 반영했던, 그러나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국민배우가 되지 못한 그의 선택은 뭘까?  
 
한석규는 변화를 꾀하는 시점에서 어김없이 장르가 다른 영화를 선택한다. 경계를 넘나들며 연기 폭을 넓히지만 모든 장르에서 결과적으로 한석규가 드러나기 때문에 장르의 변주는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해 보인다. 현재 시점에서 한석규에게 필요한 것은 앙상블 연기다. 작품을 고를 때 내러티브나 캐릭터를 참조하는 것 못지않게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호흡이다. 가령 음란서생의 이범수나 오달수는 한석규의 연기를 보색관계에서 중화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작품 속에 녹아들기 위해선 드러내기 보단 한 발짝 물러나 개성이 다른 캐릭터들과 섞여 관계의 균형을 이룰 때 한석규는 가장 빛나 보인다. 왜냐하면 한석규는 개별적인 캐릭터로서 작용하기 보단 영화자체를 지배하는 존재감이 큰 배우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 아닌 캐릭터들과 조화로운 앙상블을 통해 작품의 수준을 끌어올릴 때 한석규의 가치는 비로소 빛을 발한다.
 
* 시나리오 작가. 미라신 코리아 2004년 시나리오 공모 당선 영화평론가협회 평론공모 1회 (1998)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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