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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핵 폭풍, 황우석 박사 -1편
[주장] 그의 논문은 후대의 연구자에게 충분히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
 
박상준   기사입력  2005/12/18 [14:51]
어느 날부터였는지, MBC PD수첩이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취득의 윤리문제에서 벗어나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의 진위여부에 대한 사실 규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위를 보면서 난 수년 동안 관행처럼 이루어진 MBC PD수첩의 취재 행위와 무분별한 의사결정능력에 놀라곤 한다.
 
그들은 마치 일반인들보다 대단한 권한을 가진 이들처럼 취재의 대상자를 피의자처럼 다루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건 강압의 한 형태일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행위였다. 불법적 수단으로 얻은 증거물을 증거로써 채택하지 않는다는 보편적 합의에 대하여 우린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피치 못할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은 이들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취재 행위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MBC PD수첩이 공명심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존엄을 무시하고 취재를 강행했다면, 이로 비롯된 모든 결과 또한 커다란 손상을 지닌 데이터일 것이다. 이런 데이터에 의존하여 사회가 움직여 간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될까?
 
마치 영장을 발부 받은 수사관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모한 취재 행위를 하는 MBC PD수첩의 행위를 우린 관행으로 여기는 걸까? 그렇다면 이 사회는 도덕성의 흠집이 관행이 되어 버린 사회는 아닐까 고려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Mr. 황의 도덕성에 대하여는 크게 실망하고 있지만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하여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의 연구 논문에 나타난 데이터 조작으로 인한 흠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과학도로써 난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한 가치를 조금이라도 낮추고 싶진 않다.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과학을 해보지 않은 자들이나 과학이란 영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결여된 이들이 수년일지 수십 년일지 모를 고될지도 모를 기나긴 연구기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여 얻어낸 연구결과에 대하여 이다지도 무모하면서도 험악하고 난폭하게 검증을 내릴만한 기본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가?
 
어떤 연구결과의 논문을 검증하기 위해선 최소한 연구를 진실로 해보고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과학계에선 그들 중 더욱 신뢰할 수 있는 이들에게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결과에 대한 심사를 의뢰하고 있다.
 
여인이 아이를 날 때 산고의 고통에 몸부림치듯, 끝없는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 최신의 과학지식으로 무장하기까지의 기나긴 세월의 인내와 기존에 제시되지 않은 새로운 이론이나 결과를 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연구결과를 떨리는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아무리 흠집이 보이고 하찮은 연구결과라 하더라도 그 연구 결과에 연구자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노고가 묻어 있다면 함부로 폄하할 순 없는 것이다.
 
과학도의 길은 자신이 비록 즐기면서 할지라도 결과적으론 인류에 대한 헌신의 길이다. 테레사 수녀니 김수환 추기경이니 하는 이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헌신의 길을 걷는 것이다. 만약 인류를 위해 종교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선택을 주며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섰다면 인류는 생각할 여지없이 과학을 선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헐벗어 굶어 죽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두려움을 잠시 일시적으로 어루만지며 쌀의 생산이 증가하여 부유해질 테니 인성을 잃지 말고 희망을 가지십시오! 라고 외치는 것보단 쌀의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열정을 다해 연구에 매진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많은 이들을 구하는 길로 가는 길을 뚫을 확률이 더욱 크다고 믿는다. 고로, 연구를 하고자 하는 과학도들에겐 일반인들과 동료 과학자들의 특별한 배려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누구도 발표하지 않은 걸 심사의 대상으로 하는 게 바로 논문이다. 어떤 논문은 이론적 주장으로 끝맺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논문은 자신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싣기 위해 실험적 데이터나 통계적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NASA 등 전세게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연구집단에서 나온 결과물들도 훗날엔 무가치하게 판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무에서 유를 향해 달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연구성과는 너무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연구에 대한 가속페달을 멈출 수 없는 건 연구를 하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인류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과학이 멈추면 비대하게 많은 혜택 속에서 삶을 누리던 인류는 아비규환에 빠질 것이다. 입고 먹고 자고 그 밖에 모든 것들의 양과 질이 풍족해졌고 그럼으로 인해 인류의 몸체 및 의식세계 또한 커졌다. 한정된 자원은 점점 고갈되고 인류는 삶에 대한 시간의 부족을 느끼고 있다. 인류의 삶은 이제 60살에서 100살로 만족할 수 없는 포화상태에 놓인 것이다. 최소한 인간은 500년은 살아야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반복적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과학뿐이다. 고로 과학적 연구 성과는 가벼이 비난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비평을 통한 연구의 발전만이 있을 뿐……
 
데이터의 완벽한 진위가 중요한 논문도 있으며, 데이터의 완벽한 진위보다 데이터 속에 묻어 있는 중요한 가능성이 더 중요한 논문이 있다. 어떤 논문은 데이터의 진위보다 그 주장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도 있다. 그 연구가 완전히 불모지에 대한 영역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사실 황의 배아줄기세포 관련 논문은 조작된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 고배율 전자현미경으로 배를 확인하며 피펫 등을 사용하여 마치 젓가락질을 하듯 체세포 핵 이식 배아줄기세포의 생성 및 분화 등에 관련된 연구성과를 내고 그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대해 높은 가치를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류를 위해 공헌하고 헌신할 준비를 마친 과학도들에게 일반인들의 특별한 배려는 당연한 것이며 또한 동료과학자들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동료과학자의 연구를 심사하는 심사관들은 그들의 연구 논문에서 충분히 데이터의 조작의 흔적을 발견한다. 하자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일말의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바로 연구자의 연구논문에서 창의성과 노고를 찾기 위함이다.
 
열악한 환경, 또는 과학도의 길에 갓 접어든 젊은 과학도들에게 연구의욕을 고취시키고, 그들에게 연구에 대한 좌절없이 지속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 논문 심사관들과 논문지의 편집장들은 연구논문의 게재를 통보하기도 한다. 물론 그 외의 이유에 의해 게재를 통보한다. 왜냐하면 사이언스나 네이쳐 등도 하나의 사업을 하는 것이다. 논문투고비용, 심사비용, 게재비용 등을 전부 연구 논문을 투고하는 연구자에게 전가하고 있으니 말이다.
 
Mr. 황의 논문에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가 단 1개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논문의 가치를 조작된 데이터로 인해 폄하하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연구논문이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이 투여될 곳이 막혀 갈 곳을 잃어버리면 결국 20세기 초에 겪었던 대공황을 전세게적으로 겪어내야 한다. 그러하기에 과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나 지금 황은 중요한 사건의 중심에 놓였던 것이다. 황은 자본의 흐름에 물고를 형성했고 BT분야의 투자에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그의 논문에서 발견된 데이터 조작을 옹호할 마음은 터럭만큼도 없지만 그들의 논문이 결코 MBC PD수첩을 통해 검증을 받고 그 가치를 잃어야 할 커다란 이유 또한 없다. 

왜 그가 9~10개의 조작된 데이터로 그 1~2개의 연구결과 데이터를 포장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수 밖에 없었나를 한번쯤 고민해 볼 문제이다. 전세계 과학계가 언제부터인지 아주 격식적이고 행정발상적인 논문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그로 인해 과학자들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무용한 대가를 지불해왔다.
 
나 또한 20여 편의 논문 및 1편의 특허, 실용신안 등을 지녔다. 논문을 투고할 때마다 항상 의문스러운 것이 왜 내가 원고를 논문지를 발행하는 회사에 주면서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그들의 논문지 게재 형식에 맞추어야 하는가였다. 연구논문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비용을 마련하고 이런 잡일에 더욱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결국 연구를 지속하여 논문을 발표 하는 게 엄청 피로하다는 걸 알았다. 언제부터인지 과학자들은 행정가와 자본가에게 얽매이게 되었다.
 
어느 누구라도 경솔하게 누군가의 연구업적을 폄하하고 재단하는 것은 몹시도 위험스러운 것이다.  삐끗하면 이미 밝혀진 것이 아니라, 밝혀야 할 것에 대한 연구 도전에 대한 용기를 크게 훼손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해 연구는 쭉 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별로이고 하자가 많은 연구성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하더라도 인류를 위한 헌신의 길을 가는지도 깨닫지 못하는 과학자들은 충분히 인류에게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창의적 잠재성을 백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그들 중 누군가로 인해 인류의 삶은 더욱 큰 풍요를 향해 일대 혁명을 경험할 것이다.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과학자들에게 물어본다. 논문지에 실린 90% 이상의 논문을 허접하다고 생각해 본적 있었는가? 없었는가?

대답은 대동소이하다. 90% 연구결과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별로다라고 말한다. 그래도 그들의 논문에 대하여 과학자들은 비평을 하여 그 논문의 무가치를 말하곤 해도 결코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논문의 발표란 아직도 그 과학자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증명서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며, 자본을 어디에다 투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끝없는 자본의 투자와 격려가 지속되는 한 언젠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찬 연구들이 보편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논문의 리뷰를 보는 사람이나 논문지를 발행하는 회사에서 MBC PD보다 의심이 덜해서 황의 논문을 크게 대우한 게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진정으로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극소수로 줄어들고 있고, 그로 인해 90%에 달하는 이들이 몇 %가 넓혀 놓은 과실을 쉽게 나누어 먹으며 살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분들이 하는 일을 살펴보라!
 
과학이란 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대단히 놀라운 것이라서 얻기는 힘들지만 한번 얻어내면 그 열매는 너무나 어마어마하다.(간혹 어떤 이는 매몰차게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없다 하나 그건 그들의 주장일 뿐이다. 과학은 항상 새로운 걸 증명해 낼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더 편한 일을 하고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그리고 더욱 창의적 일에 종사하는 이들의 과실을 쥐어짜 자신들의 몫을 늘리려는 추세이다.
 
황의 논문은 후발 연구자들에게 충분히 귀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으로써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임에 틀임이 없을 뿐 아니라, 인류에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은 결코 부분부분에서 데이터의 조작이 보인다고 해도 그 가치를 쉽게 상실하기 힘이든 성격을 지녔다.
 
직접 과학을 배워 보라!! 그 지식의 습득이 결코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선 자신의 삶에 허락된 사고의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지를 향해 더듬고 있을 것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 과학자의 삶은 결과적으로 “무”로 끝나는 것이다. 과학의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응당 더 큰 배려를 받아야 하며 더 큰 혜택을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허접떼기 쓰레기 같은 연구결과이지만 그 연구결과를 가지고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논문을 써본 이들은 알 것이다. 어느 누구도 황의 결핍이 보이는 논문이라 해도 그를 비난하지 못하리라. 단지 황우석이 욕을 먹어야 한다면 젊은 동료 과학자들을 동료로써가 아니라 일꾼으로 대우했다는 것 이다.
 
즐겁게 일한 대가를 공유하는 건 즐거우나 타인의 고통이 수반된 대가를 공유하는 건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 일반적인 도덕성을 요구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선 그를 비평할 순 있어도 비난할 수가 없다. 완전히 대한민국 연구 과학계의 현장은 군대보다 더욱 비열함이 넘치는 비인권 현장의 온상처 임을 이제 모르는 이들이 누가 있는가!
 
그런 환경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가, 99% 교수들이 부정부패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은 학계에서 영원히 추방시켜야 할 대상인 교수 타이틀만 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며, 그 명단이 아직도 대한민국 법질서를 간당간당하게 유지하고 있는 검찰청사에서 쓰레기통에 처박혀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 나라의 법질서는 제대로 초토화 된 것이다. 법조인을 양성할 때 토플이니 토익이니 하는 무가치하고 무분별한 영어시험을 테스트해서 기득권의 장막을 두르기 전에, 법조인이 되겠다는 이들의 사회공헌도와 이력 그리고 가치관을 더욱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이다.
 
법조인 양성에 토익, 토플 시험이나 너무나 심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법시험 자체가 쓰레기 같은 정신을 지닌 지금의 법조인들 때문에 파생된 것이다. 언제 한번 제대로 이들을 검증해야 하는 것이다. 사익을 위해 국민을 위한 법조 서비스라는 공익을 무너뜨리는 자들의 집단을 어찌 좌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어떠한가! 열심히 과학 연구만 하다 자신의 처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MR. 황을 통해 대한민국의 부조리가 완전히 표면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의 정치 및 법에 종사하는 이들이 제대로 이 나라를 어떻게 뭉개버렸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결코 황이 개인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검찰도 못하고 있는 것을 지금 황우석 박사 혼자 다 해내고 있지 않은가! Mr. 황은 자신의 연구에 대해 지극한 자부심을 가지고 전세계를 향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했으며, 충분한 자격이 있다. 먹고 살만하니 티끌만한 능력을 포장해서 영웅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그러한데 무에서 유의 창조를 시도하는 과학자의 티끌만한 연구성과를 어찌 작다 할 수 있으며, 데이터 조작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성과를 폄하할 수 있겠는가!
 
그의 연구는 가치가 있으나 대한민국에서 허용되고 있는 그의 보편적 가치와 삶의 행태는 너무도 잘못된 것이며 무가치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를 희생시킬 순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불체포 특권의 권리가 있다면 진정한 과학자에게는 더욱 큰 권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에겐 질책이 아니라 그의 주변을 휘몰아치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부도덕한 가치를 몰아주어 그를 인간답게 연구하는 과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하며 동료과학자에게 존경 받고 신뢰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또한 그의 연구에 힘을 쏟아 주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학문의 자유가 아니라 학문의 구속이라는 이름으로 고된 연구를 라면대가리나 먹으며 끝없이 밤낮 가리지 않고 비인간적인 삶 속에서 지속해 왔던 게 이 나라이다. 물론 라면도 못 먹는 이들이 무척 많다.(우스울지 모르나 이 나라의 지금의 역사가 이렇다. 이것이 진실된 역사가 아닐까!) 그런 환경 속에서 나온 연구결과를 어찌 폄하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생산물들은 슬픔이 깃든 생산물이라는 걸 아는 게 바로 역사이다.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 더럽혀져 있는 것이다.
 
고로, 난 황을 비평할 순 있으나 비난할 순 없다. 물론 나의 도덕성이 그보다 낫다고 자부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가 이 나라에서 숨쉬는 일반인들보다 도덕성이 희박하다고 볼 수 없다. 차라리 검찰 리스트에 부정부패 비리 악덕 고리대금업자 같은 이들로 분류된 수천 명의 교수들을 이 나라의 교육계에서 퇴출시켜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우선순위로 해야 할 일이며, 그들을 정의의 이름으로 퇴출시켜 황에게 경종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희생시켜야 할 대상을 제대로 집어야 하는 것이다. 연구도 하지 않는 교수.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논문에 이름이 올라가는 이들. 그러면서도 젊은 과학자를 동료가 아니라 무슨 제자니 뭐니하는 구실로 울궈먹으며 잘 먹고 잘사는 교수. 이것이 불로소득보다 더욱 악한 행위가 아니고 무엇인가!! 범법자에게 교육을 위탁해 놓고 어찌 아 나라가 온전하길 바라는가!
 
이들은 과학자도 연구자도 아닌 착취자이다. 오직 이 나라는 착취자만이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생충 같은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황은 나름대로 학문을 매진해온 학자. 그것도 과학자. 과학은 인류를 이롭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니, 한 국가의 시민이 아니라 전 인류의 시민인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국익이란 말을 아무 개념없이 쓰며 자신의 가치를 부정부패로 물들어 있는 질서의 울타리에 가두어 놓는 것을 보면 이 나라에 지배적으로 넘쳐흐르는 비열한 가치관에 물들어 자승자박을 하는 어리석음도 제대로 배운 것 같다.
 
과학이라는 연구에 접해본 적도 없는 MBC PD수첩이 전세계적으로 크나큰 연구업적이라고 칭송 받고 있던 Mr. 황을 그의 연구성과의 하자를 들어 완전히 넉다운 시켜버렸다. 윤리적 문제로 그를 비난하고 타격을 주었다면 나 또한 그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 그러나 그의 연구성과의 하자를 빌미로 그에게 입힌 타격에 대해선 아주 비열한 행위라고 느끼며 MBC PD수첩은 아주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MBC PD 수첩과 MBC는 인류를 위해 또는 진부적이지만 국가를 위해 Mr. 황에게 물질적 보상을 해주어야 하리라 본다. 대략 6000억 정도는 그의 연구의 지속을 위해 보상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황에서 엄격하게 적용했던 심사기준이라면 통계나 데이터를 들어 자신의 주장에 약간이나마 힘을 싣고자 하는 논문을 쓰는 전세계 과학자의 60%는 매장될 것이며, 대한민국 과학자 90% 또한 매장 되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학이다. 과학 연구란 진리가 아니며 오직 진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출판과 관련된 업에 종사하는 이들(물론 논문을 발간하는 사이언스나 네이쳐 등을 포함한다)은 가능하면 발간되는 논문이 눈에 보기 좋기를 자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진실된 실험데이터만으론 대접을 못 받고, 그 진실을 더욱 보충해줄 들러리 데이터를 요구한다. 그런 요구조건을 맞추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사족을 다는데 무모하고 비생산적인 정력을 허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황의 논문에서 발견된 데이터에 조작의 흔적이랄 수 있는 결정적이고 인위적인 실수가 있었다고 해도 그의 연구가 사실이라는 입증을 해줄 결과나 데이터가 존재하는 한 그의 논문의 가치는 퇴색시킬 수가 없는 성격을 가진 것이다.

연구의 진실과 사실의 문제에 대한 주된 가치가 데이터의 진위의 진실과 사실에 관한 확률의 문제로 다루어지기를 진실로 원치 않으며, 대한민국은 국가예산을 최소한 5배 이상을 늘려 BT뿐 만 아니라 IT 접목 NT에도 무차별 공격적 투자를 하길 바란다.
 
손에 쥔 씨앗을 뿌리지 않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과오이다. 그 과오로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성과를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손에 쥔 씨앗이 없었을 때보다 더욱 비참한 것이다. 창의적 인재라는 씨앗에 가상적 물과 비료라는 자본을 뿌려주지 않으면 자본의 쓸모가 점점 사라지게 될 뿐이다.
  
박상준 : 전 경문전문학교 교수. 전 정보통신기업 비와삼시스템 대표. 한양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수료.(국내외논문 20여편.특허1 실용신안 1 저서 2편 등), 전 한양대학교 강사. 2006년 1월 - SF소설 “우주의항문 화이트홀”이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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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2/18 [14:5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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