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기 좋은 영국 록 뮤지션은 누구일까? 단연 비틀즈가 꼽힐 것이고, 롤링 스톤즈, 딥 퍼플, 레드 제플린, 퀸 등이 거론될 것이다. 그러나 오아시스가 선배밴드들을 제친 일은 이미 과거지사이며 지금은 라디오 헤드가 곧잘 영예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미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USA TODAY에서 독자들을 대상으로 '위대한 미국 밴드 20걸'을 조사했다. 앨범 판매고를 비롯, 영향력, 인지도, 밴드의 수명, 라이브 퍼포먼스와 뮤지션쉽 등이 기준이었다. 그 결과는 이렇다:
1위 펄 잼
2위 에어로스미스
3위 밴 헤일런
4위 이글스
5위 져니
6위 건샌 로지즈
7위 그레이트풀 데드
8위 퀸스라이크
9위 도어즈
10위 알 이 엠
공동 11위 올맨 브라더스 밴드, 플리트우드 맥
12위 메탈리카
13위 키스
14위 레이먼즈
15위 브루스 스프링스틴
공동 16위 데이브 매튜스 밴드, 레너드 스키너드
17위 비치 보이스
18위 너바나
19위 리플레이스먼츠
20위 본 조비.
조금 의외다. 1위는 아니지만 에어로스미스와 'BIG ROCK' 밴 헤일런, 이글스가 상위에 랭크된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데 미국 블루컬러의 영웅이자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대항마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15위인가 하면, 전 세계 젊은이들의 추앙을 받는 너바나가 18위에 그쳤다. 여러가지 잣대로 입체적인 조명을 했기 때문이겠지만, 국내 매니아가 톱텐을 정확하게 맞추기는 무척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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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국 밴드 1위를 차지한 펄 잼 멤버들 ©인터넷 이미지 |
어쨌거나 펄 잼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아주 특이할 것은 없겠지만, 이의가 제기될 만하다. 더구나 국내에서는 펄 잼과 숙명의 라이벌관계를 맺어온 너바나의 인기가 훨씬 높지 않은가. 심지어 얼터너티브 팬을 자처하는 이들 몇몇도 펄 잼을 이물스러워하곤 한다. 미국에서는 더 심한 반응이 있었다. '얼터너티브 익스프레스'는 펄 잼에게 선사한 악평이 그 예로, 요컨대, 얼터너티브 밴드임이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다. 얼터너티브는 말 그대로 대안적인 음악사조지만, 펄 잼의 음악은 고전적으로 들린다.
펄 잼과 함께 '시애틀 얼터너티브 4인방'을 형성하는 밴드들과 비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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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역사의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 너버나 © 인터넷 이미지 |
너바나는 <펑크록 연대기>에 출연한 선배 뮤지션들이 찬사를 보낼 만큼 펑크 역사의 한 정점을 이루었고, 그 펑크는 단순한 리바이벌이 아니라, 메틀에 대항하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사운드가든과 앨리스 인 체인스는 80년대 메틀의 세례를 받았으면서 동시에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독특한 빛깔을 냈다. 반면 펄 잼은, 마치 6, 70년대의 올드패션 하드록을 연출하는 듯하다. 마이크 맥그리디와 스톤 고사드의 트윈 기타 시스템이 펼치는 솔로와 리프도 동시대 또래인 너바나보다 에어로스미스나 이글스와 차라리 더 유사하다.
여기서 바로, 펄 잼의 생명력이 나온다. 그들의 음악 위에서 6, 70년대에 록을 맛봤던 어른과 90년대에 자라난 소년들이 만나고 공감하는 것이다. 펄 잼의 음악에 다량함유된 블루스, 소울, 컨트리, 포크 등은 세대와 계층을 막론하고 미국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킨다.
그 뿐이 아니다. 펄 잼은 고전적 하드록의 재생이 아니라, 새로운 반발의 에너지를 담아낸다. 그 반발은 점진적이고 꾸준한 진보이며, 미국식 용어로는 PC(정치적 올바름)이다. 국내팬들 역시 영어가사를 굳이 해석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싸늘하게 읊조리다 어느 순간에 격정적인 에너지를 토해내는 에디 베더의 보컬은 꺼지지 않는 불꽃과도 같은 존재다.
무엇보다 펄 잼의 액티비즘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팬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티켓마스터'사와의 힘겨운 법정투쟁을 불사했다. 펄 잼의 판정패로 끝나긴 했으나, 이후 그들은 투표참여캠페인, 랄프 네이더 후보 선거운동, 반부시운동 등에 동참하며, 레이지 어갠스트 더 머쉰과 같은 반열에서 논의할 수 있는 정치적 밴드가 되었다.
또한 펄 잼에게는 '인간적 매력'이 있다. 노동자 생활을 전전하다 극적으로 픽업된 에디 베더는 호텔 보이나 웨이터 등에게 깍듯하게 대한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멤버들의 생활과 이미지도 무례함, 마초적 과시, 약물과 무관하다.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우상이면서,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에 섞여서 일하고 술을 먹어도 결코 튀지 않을 사람들이다. 건샌 로지즈는 미국인들에게 거대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 원동력을 애국주의와 남근주의에서 빌어왔고, 본 조비는 건실한 인상을 주지만 저항성이 약하다. 그러니 펄잼은 90년대 미국 음악계가 내린 최고의 축복이었던 것이다.
단언컨대 한국에는 펄 잼에 비견할 만한 뮤지션이 없다.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국민가수'들, 세상을 뒤집어 엎을 듯 노래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무런 변화를 이끌지 못하는 이들이야 있겠지만. 뮤지션을 탓할 사안은 아니나, 여하튼 10대부터 중장년까지 두루 선호하는 음악인도 없다. 한국 록의 명맥은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으나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 물론 록 뮤지션이 꼭 펄 잼처럼 넒은 인기를 누려야 좋은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자기 고집을 밀고 나가면서 그 에너지로 소외된 수많은(많고 적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어딜 가나 많으니까) 자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역량과 의지, 감각이다.
언젠가 펄 잼은 경호원을 제지한 채 무대에 뛰어오른 관객과 춤췄다. 어떤 관객은 펄 잼에게 곡을 신청한 다음 애인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도 했다. 그들의 음악은 기념비적 대작으로 행세하지 않고 공기처럼 물처럼 살아 있다. 얼추 10년전쯤, 대학을 나온 어느 한국 가수는 노래에 이데올로기를 담는 것을 반대한다고 했지만, 미국의 밑바닥 노동자였던 펄 잼-특히 에디 베더는 자생적인 저항가로 거듭났다.
심심하면 미국 정권을 욕하고 그 사회 구성원들의 우경화를 비웃는 나도, 이런 생각에 잠길 때면 미국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