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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영 김병관 퇴진없이 친일청산없다
[주장] 연고대생들은 ‘연고전’ 대신 재단이사장 퇴진운동을 먼저 하라
 
숨인씨   기사입력  2005/04/01 [10:35]
집권세력의 역사도 그렇겠지만 한국인들은 야당의 역사, 특히 김영삼, 김대중 이전의 야당사를 모른다. 그 덕분에 김성수, 조병옥, 장면, 백낙준, 박순천, 유진오 등은 한국현대사, 그중에서도 일제부역 및 극우반공주의 비판의 성역이었다.
 
이들은 이승만이나 박정희에 맞선 반독재 투사일 뿐이었다.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나 연세대 초대 총장인 백낙준은 길이길이 민족의 스승이자 교육의 아버지로 남았다.

바야흐로 한승조 씨의 망언과 일본 우익의 준동으로 ‘친일청산’의 대의가 번져 나가고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왜 아직도 과거에 목을 매는가? 그것이 현재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학내 친일 조사의 장애로 지목했듯 “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이 현재 고려대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렇다. 인촌 김성수의 동상을 철거하건 친일 교수를 축출하건 김병관 씨를 퇴진시키지 않으면 말짱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은 2000년 1월부터 연세대 재단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필자는 2년을 학교에서 보낸 다음 또 2년을 군대에 다녀왔다. 방씨는 아직 연세대의 재단 이사장이다.

그가 재단이사장직에 앉은 5년여동안 연세인들이 항상 침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구도 과감하게 나서지 않았다.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 있었던 연세대-고려대 학생들의 재단이사장 퇴진 연합선언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인 시도는 거의 없었다. 사석에서는 자주 재단이사장의 퇴진을 이야기했다.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운동으로 정당으로 흩어지는 사람들은 입으로 퇴진운동을 벌였고 나중에는 립싱크가 되었다. 같이 안티조선운동을 하던 동지들도 어디론가 슬슬 사라졌고, 엔엘이든 좌파든 운동권은 재단이사장에는 관심이 없는 듯했으며, 그나마 어깨를 겯을 만한 이런저런 이들도 정당활동하고 선거운동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동안 방우영 씨는 매우 안락했다. 김병관 씨도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언론과 사학재단에 양다리를 걸친 채 대통령이나 재벌총수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들은 심심하게시리 변변한 여론의 질타 한번 받지 못했다. 일가가 탈법 탈세에서 이름을 떨쳤음에도 이들은 여전히, 아니 어쩌면 예전보다 더 건재했다. 그 사이 이들의 무도함은 절정에 달했다. 
 
그들은 정부여당이 패키지로 만든 4대입법을, 일제부역자로서, 자유민주의 적으로서, 언론족벌로서, 사학의 지배자로서 각개격파했다. 부패사학재단이 국가보안법에 숨을 불어넣고, 거대신문은 과거사청산을 집요하게 훼방했다. 인촌 김성수와 용재 백낙준의 동상을 철거한다는 선언 속에서도 방씨와 김씨는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라크파병, 탄핵 등의 온갖 소원을 다 들어준 여야 정치인들이 철 없이 기어오르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면 그만이다.

조선일보는 대학가의 친일청산을 조명하며 또다시 모택동의 ‘문화혁명’을 들먹인다. 한국의 과거사청산을 모택동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은 등소평과 대조한 그들이 말이다. 하기야 대학가에 문화혁명의 홍위병 같은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송복 교수가 조선일보반대연세인모임에게 비판받으며 퇴임식하던 날, ‘그레이트 비전’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송씨를 존경으로써 배웅하는 플랜카드를 어설픈 솜씨로 걸어놓은 적도 있다. 그보다 더 오래된 사건으로 ‘시민과함께하는대학생운동’이라는 전혀 시민과 함께하지 않는 단체가 언론개혁을 반대한 적도 있다. 그 행동들이야말로 ‘문화혁명’이었다.

이들에게 공산당 수뇌부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였다. 이문열은 선전선동부장이었다. 그럼 이들에게 모택동은 누구였던가. 방우영 수령님, 김병관 수령님이었다. 마르크스-레닌은 김성수, 백낙준이었다. 일제부역-친미냉전-반공독재-수구의 역사는 초유의 대장정이었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 대학생들은 무엇이 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민주의 벽’에 ‘제5현대화(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자보를 걸어 중국공산당에 저항한 웨이징성을 닮아야 한다. 천안문 대신에 광화문에 나가서 조선, 동아를 성토해야 한다. 다가온 이 봄날은 소련 브레즈네프의 탱크 앞에서 ‘인간의 얼굴을’ 절규한 프라하의 봄에 못지 않아야 한다.

4년동안 여유가 있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일제에 부역했고, 지금껏 그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과거사 청산에 반대하고, 학원민주화까지 억누르고 있음을 알렸다. 더이상의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없다. 정작 해명해야 할 것은 대학생들의 침묵과 좌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절독하고, 개혁 내지는 진보를 추구하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소원하고, 과거사의 청산을 지지하고, 학생이 교직원과 더불어 학교의 주인이라고 믿는 대학생들이 인촌과 용재의 동상을 철거한다면서도 재단 이사장 퇴진운동을 비껴가고 있다. 유석춘의 수업을 폐강시키고, ‘김우중관’의 간판을 내리기는커녕!

예비권력자라는 징표인 졸업장을 짝사랑하는 탓일까, 작금의 대학사회에서는 좀처럼 부끄러움을 읽을 수 없다. 이제 대학생은 지성인이 아니다. 취업준비생의 한 이름일 따름이다. 누가 감히 대학에 다닌답시고 지성인을 자처할 수 있는가.
 
사회참여와 개인의 구원은 동전의 양면이다. 필자는 바로 가까이 있는 부조리와 적에 대항함으로써 스스로의 양심부터라도 구하고자 한다. 이 거대한 기만이 끝나지 않는다면 전공과 학번을 내던질 수밖에 없다. 그에 앞서 여러 학생들과 손을 잡고‘열린사회의 적’을 들어낸 자리에 학원민주주의의 나무를 심기를 빈다.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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