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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충격' 바로잡는데 5년 걸린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의 문제점, 대중교통의 반대중성
 
비나리   기사입력  2004/07/11 [20:01]

1. 좋은 일도 나쁜 놈이 하면 나쁜 짓이 된다
 
'흑묘백묘'란 등소평이 얘기해서 유명해진, 초 울트라 슈퍼 실용주의 노선이 있다. 하여간 고양이는 쥐만 잡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 원칙을 행정에 적용하면 독재자든 개새끼든 혹은 초특급 띨빵이나 친일친미라도 행정만 잘 해주면 된다는 얘기다. 대체적으로 사회에 대해서는 이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맥락에 대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에 대해서 드는 생각은 나쁜 놈이 하면 아무리 좋은 일도 나쁜 짓이 된다는 점이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 간단하게 얘기하면 민중에 대한 저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이게 특히 나쁜 점은 힘이 없을수록, 돈이 없을수록, 그리고 지식이 없을수록, 이 개편된 체계가 고약스럽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통체계 개편의 원안에 해당하는 브라질 쿠리찌바의 사례가 이명박의 손을 거치면서 어떻게 괴물로 변해버렸는지에 대해서 비교하는 것은 나중에 도시 행정학이나 도시 사회학의 대표적인 실패 케이스사례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2. 쿠리찌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도시
 
도시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가지 도시를 들라고 하면, 쿠바의 하바나와 브라질의 쿠리찌바라는 두 곳이 거론된다. 두 곳 모두 지긋지긋한 고생 끝에 답을 찾은 곳이다.
 
하바나의 유기농업은 계속된 미국의 봉쇄 속에서 도시 전체가 혹은 국가 전체가 기아의 굴레로 빠져들면서 보도블록을 뒤엎고 시멘트를 들어내고, 에너지와 비료가 필요하지 않은 농업을 시도하면서 시작된다. 화학농업을 ‘녹색혁명’으로 칭하고 살았던 20세기의 아픔을 가장 먼저 거두어낸 곳이다. 성지 순례가 있듯이 농업 순례는 요즘 하바나로 떠난다.
 
브라질의 쿠리찌바는 미국 자본주의가 석탄 채굴로 망가뜨린 폐광이며, 가난과 오염의 상처를 깊이받은 땅에서 태어난 생태도시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폐광들이 생태관광이니 개소리 하면서 자본주의의 젖줄을 한 줌이라도 더 먹기 위해서 발광하는 것과 달리, 쿠리찌바의 성공은 도시의 빈민들 스스로 일구어낸 도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UN이 최고의 환경도시로 지명하는 쿠리찌바의 대표적 환경 메카니즘은 사실은 도시 빈민에 대한 체계적이며 집단적인 배려로부터 출발한다.
 
버릴 폐기물을 모아서 가지고 오면 쿠리찌바는 생필품과 교환해준다. 재순환형 도시의 기본 메카니즘에는 가난해도 몸을 움직이면 살 수 있다와 생활의 작은 부지런으로 삶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는 도시 빈민 메카니즘 이에 서 있다.
 
쿠리찌바의 교통체계도 마찬가지 철학 위에 서 있다. 그 유명한 순환형 버스체계의 도입은 지하철에 대한 포기의 댓가로 이해하면 된다. 남미에서의 지하철은 상대적인 소득수준 차이 때문에 저소득층에게는 이용할 수 없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교통시설로 전락한다. 완전 시영화된 버스체계는 지하철의 10% 비용으로 전체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쿠리찌바에서는 지하철 대신 버스체계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비용이 저렴해지는 것은 물론, 지하철을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앙노선이라는, 버스 전용 노선을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음은 물론, 지하철 대신 건설하므로, 비용의 절감은 도시빈민과 장애인에 대한 배려로 전환된다.

예를 들면 광주와 같은 경우 지하철을 놓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것인가 혹은 그 비용으로 버스 체계를 정비하고, 그대신 절약된 비용을 시민들에게 환원할 것인가와 같은 논의가 쿠리찌바의 성공 사례의 한 가운데 들어가 있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3. 서울시의 세 가지 동시 개편
 
이 쿠리찌바의 시스템을 서울시에서 도입하면서 소위 교통체계 개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개편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첫째는, 가장 유명한 중앙차선제 도입이다. 버스 전용차선제는 쿠리찌바만이 아니라 유럽의 왠만한 도시에는 대부분 도입되어 있다. 작은 도시에는 때때로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트람이라고 부르는 경전철이 파리나 밀라노 등에는 또 다른 형태의 대중교통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둘째는, 버스 노선체계 개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체계야말로 쿠리쯔바의 소위 아이디어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간 버스업자와 서울시의 줄다리기 사이에서 현재의 개편 중에 먼저 문제를 일으키는게 바로 버스 노선체계 개편이다.
 
셋째는, 어지간해서 잘 얘기하지 않지만, 대중교통요금 상승이다. 이용 방식과 빈도에 따라서 일괄적으로 얼마가 올랐는지 계산하기는 쉽지는 않지만, 여기저기에서 추정한 숫자들을 비교해보면, 대략적으로 70%~80% 정도가 올랐다고들 추정한다.
 
간단히 얘기하면, 버스 중앙차선제를 실시하면서, 하는 김에 버스 노선도 대충 생각나는대로 바꾸고, 사람들이 어리버리할 때 요금도 왕창 올려버렸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
 
70살 정도 먹은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고 가정하자. 사는 집에서 경동시장, 그리고 시집간 딸네집 정도를 움직이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고 가정하자. 이 할머니에게는 교통체계 개편은 서울에서의 삶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이다. 금액이 올라간 것은 경로우대증 같은 걸로 개비한다고 하더라도, 버스 번호와 삶의 지혜로 알고 있던 버스 경로 체계가 무너진 것은 한 인생이 살아가는데 대단히 복잡한 변화로 이해될 것이다. 버스 번호와 버스 번호에 대한 여러 가지 시민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일순간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간단히 무시하는 것 같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사회적 답은 시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다. 사회나 도시와 잘 어울러지는 제도들은 ‘적응 기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시범 사업도 하는 것이고 연구 같은 것도 하는 것이다. 이걸 대통령 프로젝트에 매몰된 이명박 시장이 취임 기념일을 맞추어 일거에 추진하면서 현재와 같은 아수라장이 서울 시내에 펼쳐진 것이다.
 
4. 교통체계 개편의 반 민중성
 
민중이라는 단어는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단어는 결코 아니다. 그냥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문장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가난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 현재의 개편은 대단히 불합리하다. 요금이 증가한 것은 물론이고, 노선 개편과정에서 이득볼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현재의 버스노선체계 개편은 한 마디로 준 민영화라고 보면 된다. 민간 운송업자들에게서 노선 개편권과 요금 조정권을 시로 옮기고, 시에서 일방적으로 노선을 지정한 다음 입찰을 받고, 요금도 평균선을 정해 그보다 미달하는 경우에는 보조를 주고, 남는 경우에는 잉여를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공동운영제가 그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기존의 버스 노선들이 ‘황금 노선’인 것은 그만큼 시민들이 이용하기 편한 노선으로 스스로 진화해나갔다는 점이다. 버스가 들어가지 않는 곳에 대해서 버스를 집어넣는다는 명목으로 황금 노선을 전부 없앴고, 버스 회사들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 비슷한 수익성으로 배분을 하였는데, 이는 어떤 버스 노선도 다른 버스 노선에 비해서 더 많은 수익을 내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말로 뒤집으면, 모든 버스 노선이 사용자 입장으로는 전부 불편해졌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제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간선체계와 지선체계가 그런 얘기다. 전체의 효율성을 위해서 누구나 갈아타게 만들었는데, 그러다보니 어차피 버스가 불편해서 타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타지 않고, 그나마 버스가 편했던 사람도 이제는 더 이상 편하지 않게 된 셈이다.
 
중앙노선제 변경과 관련해서 가장 극명한 대비가 벌어지는 곳은 노원구와 강남구의 경우이다. 노원구는 강남구에 비해서 그래도 풀뿌리 민주주의가 좀 진행되는 곳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낙후된 곳이 서울이고, 그 중에서 가장 낙후된 곳이 강남구라고 보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원구의 노선 체계에는 시민들이 일부 참여를 하기도 했고, 또 원래 길이 서울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길 하나 밖에 없기도 해서, 사실은 버스 소통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개편이 되었다. 반면 가장 곤란한 방식으로 중앙노선이 결정된 곳은 강남구이다. 결론적으로 노원구는 버스 타는 것이 더욱 편해진 반면, 강남구는 자가용 타는 것이 더욱 편해졌다.
 
며칠 동안의 통계로 서울시의 자가용 운행이 30% 증가하였다. 결론적으로 서울시의 교통체계 개편은 자가용 운행을 더욱 강화시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70% 정도의 비용 상승이 벌어졌다. 취지가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중교통 편리성과 경제성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현재의 보완대책으로는 이 현상이 더욱 강화되면 강화되지 문제가 해결될 대책이 제시되지도 않고, 또 가능할 것으로 보여지지도 않는다.
참고로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두 배인 싱가포르와 홍콩도 우리보다는 대중 교통수단이 저렴하다.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파리, 뉴욕, 베를린 모두 서울보다 저렴하다.
 
5.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서울시가 기존 체계로 다시 돌아갈리는 만무하다. 블도저가 후진하는 일은 없다.
 
경기도에 대해서 서울시가 보여준 폭압성은 어떤 방식으로 변명을 하더라도, 이게 같이 살아가는 국가의 국민이라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폭압적이다.
 
행정은 이런 문제를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푸는 것이지만, 이명박식의 간단 무식 행정은 이제 벽에 부딛혔다. 굳히 반민중성 혹은 반시민성 같은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밀어붙이기식 개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교통의 철학은 소통과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르게 움직이고 싸게 움직이면 좋은 교통체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면, 일본식 표현대로, ‘자연에 상냥한’ 교통체계라는 목표가 하나 더 붙는다.
 
지금의 체계는 빠르지 않고, 싸지 않은 방식으로 기존의 체계가 변화했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참여하는 ‘국지적’ 노선조정과 신호체계 개편과 같은, 소위 참여형 체계개편이 앞으로 5년 간은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충격을 효율화시켜서 시가 적응하는데, 5년은 걸린다는 얘기이다.
 
또 다른 문제는, 버스의 시영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노선이 개편이 된 가장 큰 이유도 민간업자의 수익성과 노선이 주는 수익성 사이에서 절충을 하다보니, 누구에게도 편하지 않은 노선이 생겨난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버스 자체를 시영화 혹은 공영화하는 개편 방안이 추진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다른 대도시가 전부 사용하고 있는 보조금 제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적으로 합의를 거치며 합리적으로 추진될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한다. 서울의 교통요금은 서울이 가지는 특징을 감안할 때 현재의 절반 수준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소득수준 대비 뉴욕보다 약간 싸지는 정도 수준이다.
 
요금을 거의 두 배로 올리면서 대중 교통을 활성화한다는 얘기는, 그 자체로 논리모순이며 반 대중적이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초록정치연대 www.greens.or.kr> 정책실장입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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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11 [20:0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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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자 2004/07/12 [18:10] 수정 | 삭제
  • 이명박과 노무현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밖에 저지르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가 더 문제이겠지요..

    다른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없이 자신의 논리와 주장으로 밀어붙이기하는 정책당국자들의 문제의식이 더 심각합니다...

    상생과 연대를 주장하지만... 결국 상대방과 수요자는 생각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치인들과 정책당국자가 더 문제입니다.

    소비자 수요자 시민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자신들의 입장에서 우선 생각하고... 사안을 갈등으로 놓고 보는 노무현식 사고에서는 발전이라는 것은 단지... 숫자로 비쳐지는 허세와 정치적 과장광고에 다름이 아니지 않을까 싶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