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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당정치-금권정치의 꿀맛이 그립나
[김영호 칼럼] 기업-단체 정치헌금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금지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1/03/29 [05:15]

이 나라의 정치를 되돌아보면 그야 말로 도둑의 무리가 나라는 다스리는 도당정치(盜黨政治-kleptocracy)였다. 총칼로 쿠데타로 일으켜 나라를 훔치고도 모자라 이 재벌, 저 재벌한테서 떼돈을 뜯어 배를 채우고 남은 돈을 선거판에 뿌려 벼슬을 샀다. 정당공천도 돈이 말했다. 선거판이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을 닮았으니 밑천이 크면 클수록 승산이 컸다. 돈으로 표를 사는 금권정치(plutocracy)였다. 그들의 졸개들도 성층권에 앉아 실세니 측근이니 행세하며 돈다발 챙기기에 바빴다. 대통령이란 자들이 재벌한테서 돈을 무더기로 뜯어 감방에 갈 정도였으니 마피아가 따로 없었다.

권력과 금력은 강력한 자력을 발산하니 건달이란 건달은 다 꼬였다. 감투란 감투는 동창이라고 갈라주고 동향이라고 나눠줬다.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이 돈 될만한 사업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이권을 챙겼다. 그 돈은 여의도로 가는 급행권이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치자금이란 이름의 뇌물은 푼돈 주고 목돈 버는 노다지였다. 권부의 언저리에 포진한 실세니 측근이니 하는 따위도 모자라 대통령의 아들들까지 끼어들어 어깨동무하고 돈잔치를 벌였다. 돈벼락에 환성을 지르며 날 새는 줄도 모르면서 개혁이니 변화니 하는 따위의 말을 유행가 후렴처럼 되뇌기를 잊지 않았다. 연고정치(cronyism)였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세상이 많이 맑아진 편이다. 은행이 돈 세탁소 노릇을 했지만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차명계좌는 몰라도 가명계좌는 거의 사라졌을 듯 싶다. 금융실명제가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정치권의 해괴한 논리에 말려 형해화되었지만 말이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는 법적허점으로 인해 축소-누락신고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공개내용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제도가 지극히 형식적이어서 부패방지에 효과가 없지만 정치권은 보완을 반대한다. 하지만 재산공개가 심적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기업-단체의 정치헌금 금지가 금권정치의 위세를 겪는데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내년 4월 총선, 12월 대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불쑥 정치자금법을 뜯어고쳐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을 허용하겠다고 나섰다. 정당이 기업-단체로부터 연간 1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중앙당과 시·도당 후원회를 부활해 각각 50억원과 5억원을 모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의 공정한 관리를 맡은 헌법기관이다. 왜 선거관리위원회가 고유의 임무를 저버리고 금권정치를 부활하겠다고 앞장서는지 모르겠다. 정치권이 도당정치-금권정치의 꿀맛을 그리워한다면 정치권이 나서 풀 일이지 왜 선관위가 나서나? 선관위가 정치인의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하나?

기업과 단체에서 돈을 받지 못하니 정치인들이 과거처럼 흥청대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 사정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이 술 사 달라고, 밥 사 달라고 입을 벌리고 돈 달라고 손을 내민다. 표 값 내라는 소리다. 더러 동창생들을 만나도 정치인이 당연히 술값을 내야 하는 줄 아니 답답한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그 까닭인지 얼마전 여야가 기업-단체의 후원금을 개인 명의로 쪼개서 받을 수 있도록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의외로 비판여론이 드세자 주저앉은 상태다. 기업이나 단체가 정당에 돈을 주면 정경유착은 필연적이고 입법로비가 성행하기 마련이다. 또 정치권에 돈이 넘쳐나면 타락선거-금권선거가 판친다. 정치권도 국민의 눈치를 보는데 선관위가 총대를 매고 나섰으니 제 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을 금지하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한 이유는 금권정치를 청산하고 정경유착을 근절하자는 취지이다. 국민적 공감을 얻어 개정 정자법이 잘 정착되어 가고 있는데 선관위가 주도해서 뜯어 고치려는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기업이나 단체가 정당-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준다면 그것은 음성적이든, 양성적이든 정상적(政商的) 이익을 겨냥한 것이다. 결국 산업정책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고 대형공사, 국책사업이 특정기업에 발주되며 정책지원이 특정단체-기업에 집중될 밖에 없다. 기업-단체가 상업적 이익과 특혜적 이익을 노리지 않는다면 정치자금을 줄 이유가 없다. 정치자금은 반드시 반대급부를 요구한다.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이 지닌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은 자금력-조직력을 가진 이익집단에게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발언권을 부여한다.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은 그 형태에 상관없이 1인1표를 원칙으로 하는 보통-평등선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국민의 대표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또 기업이 내는 정치자금은 생산원가에 전가되어 종국에는 소비자가 부담한다.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사와 상관없이 정치적 반대자에게 정치자금을 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것은 참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선관위가 단체-기업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정치자금을 내도록 허용하겠다는데 이것은 기업의 생리를 모르는 소리다. 재벌기업의 경우 총수가 모든 의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이사회의 의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후원금 한도를 정한다는데 이 또한 의미가 없다. 거대재벌의 경우 계열사가 수십개이고 하청업체까지 동원하면 수백개, 수천개까지 늘어난다. 전경련 같은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재벌들이 결탁하여 특정정당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정권창출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본권력이 정치권력보다 우위에서 정치적 영향력의 발휘가 가능한 것이다.

기업은 경기변동 이상으로 권력이동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그 까닭에 기업은 속성적으로 친정권적이다. 야당한테 정치자금을 내려면 세무사찰 등 위험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결국 집권당에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이 집중되면서 여당의 비대화, 야당의 왜소화를 촉진함으로써 정권교체를 가로막고 정치발전을 저해한다.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은 경제-사회정책 수립-집행과정에 개입하여 경제-사회질서를 왜곡한다. 기업은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의 권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비용절감을 이유로 노동자에게 온갖 희생을 강요하는 기업한테 정치자금을 뜯으려는 선관위의 발상은 그 자체가 스스로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행위다.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금지해야 한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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