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폭염, 홍수, 가뭄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제곡물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상기후가 더 지속된다면 2년전의 곡물파동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북한도 올 봄 이상저온으로 봄감자, 봄밀 보리 등 하곡생산이 저조한데 해외지원마저 감소하여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알려진 부족량만도 100만t이다. 그런데 한국은 쌀이 남아도는데 올해도 풍작이 예상된다. 보관창고가 모자라는 판이라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러시아가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밀 수출을 중단했다. 130년만의 폭염에다 가뭄이 겹치고 산불이 워낙 넓게 번져 러시아의 올해 밀 생산량이 4,500만∼5,000만t으로 작년보다 30% 가량 감소가 예상된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도 실정이 비슷해 러시아가 곡물수출 중단을 요청했다. 캐나다는 파종기에 폭우가 쏟아져 올 생산량이 작년보다 36% 감소한 1,850만t에 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밀, 옥수수, 귀리 등 국제곡물가격이 급등세를 보여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산 옥수수 120만t을 수입하고 베트남에서 쌀 60만t 수입을 추진하고 있어 그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은 쌀만 자립하고 있다. 옥수수, 밀 등 나머지 곡물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여 관련제품의 연쇄인상이 우려된다. 쌀 이외의 자급률은 밀 0.9%, 옥수수 4.0%, 콩 32.5%로 미미한 수준이다. 보리 자급률도 40%대이다. 다행히 쌀이 남아돌아 2008년 30여개 나라에서 식량폭동이 일어났지만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농민들이 전경의 곤봉을 맞아가면서도 시장개방에 반대하여 쌀농사를 지킨 결과이다. 그런데 농정당국이 쌀이 남아돈다고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을 논의하는 근시안적인 단견을 보이고 있다. 식량안보에 관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식량은 시장에 맡기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다. 필리핀은 1980년 중반까지 쌀을 자급했다. 한국이 1970년대 다수확품종인 통일벼를 개발한데는 필리핀 미작연구소의 도움이 컸다. 그 필리핀이 지난해 쌀을 270만t이나 수입했다. 1970년대 세계최대 쌀 수출국이 최대수입국으로 전락한 것이다. 주곡정책을 시장에 맡긴 결과이다. 옥수수의 원산지로 알려진 멕시코가 1995년 미국, 캐나다와 NAFTA(북미지유무역협정)를 맺었다. 미국의 값싼 옥수수가 몰려와 멕시코의 옥수수 생산기반을 붕괴시켰다.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 전통음식 토티야 값이 폭등하여 2007년 민중폭동이 일어났다.
FAO(식량농업기구)는 쌀 비축량을 2개월분 소비량인 72만t을 권고한다. 그런데 풍작이 예상되는 가을 수확이 끝나면 재고미가 140만t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작년의 100만t에 비해 40% 늘어난 물량이다. 관세화 유예조건인 MMA(최소시장접근)에 의한 올해 의무수입물량이 32만t으로 작년보다 2만t 증가한다. 양곡창고용량이 170t이나 활동공간을 제외하면 가을에는 포화상태가 된다. 보관비가 10만t당 연 300억원이 발생한다. 140만t의 연간 보관비만 4,200억원이 소요된다. 그 까닭에 공급과잉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소비촉진책으로 가공용, 주정용의 확대와 더불어 사료용이 거론된다.
농림수산부식품부가 2005년산을 사료용으로 처분하는 방안을 냈다가 주춤하는 모습이다. 쌀을 가축에게 먹일 수 있느냐는 비판여론이 밀린 탓이다. 월 3만t씩 연간 36만t의 처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너무 정서적으로 접근할 이유가 없다. 5년 이상 묵은 쌀이라면 밥쌀로 적합하지 않다. 식용이 어렵다면 원조용으로 줄 수도 없다. 대북지원 이외에 현실적-실질적 선택은 사료용뿐이다. 이 문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대신 불법유통을 차단해야 한다. 재고미가 쌓이는 큰 이유는 연간 40만t 가량 주던 대북지원이 끊겼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치국면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천안문 사태로 말미암아 대결국면이 형성됐다. 장기화할수록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더 악화되어 경제교류에 타격을 주고 나아가서 동북아 정세에도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남는 쌀을 남북해빙의 씨앗으로 뿌리는 지혜가 절실하다. 광복절을 맞아 이 대통령이 통일세를 언급한 상황에서 굶주리는 동족에 대한 인도적 배려가 아쉬운 시점이다. 북한도 남한에는 퍼주기라는 부정적 여론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받는 이로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언사를 자제하는 금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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