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선기간 중에 여러 차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노동조합에 지지기반을 둔 그가 소속한 민주당도 반대했다. 그런데 그가 부시가 추진한 한-미 FTA를 폐기하기보다는 비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명박 정부의 집요한 요구도 있지만 그의 아시아 정책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오바마는 출범 초부터 미국최초의 태평양 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다.
그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의료보험 개혁, 멕시코만 원유유출 등 난제에 매달린 사이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는 증진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됐다. 북한과는 관계개선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 상황이 더욱 꼬였다. 그 까닭에 한국의 친미정권과의 안정적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천안함 사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연기, 한-미 FTA에 대한 당초의 입장과 달리 이명박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방향선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밀접한 동맹국이다. 54년만에 자민당 정권을 퇴진시킨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친미보다는 자주를 내세웠다. 그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를 놓고 미국과 갈등을 빚다 단명하고 말았다. 미국의 비타협적 자세로 말미암아 선거공약을 지키지 못한데 책임을 지고 사임한 것이다. 일본이 중국 쪽으로 경도될 기미를 보이자 미국이 후임 총리 칸 나오토와 조속한 관계호전을 모색하고 있다.
아시아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초강대국 미국과 경제대국 중국과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우려해 자극적인 언행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중국의 인권상황과 위안화 환율조작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바마가 먼저 중국에 우호의 손길을 보내 지난 6월 G-20 정상회담에서 후 진타오 주석의 국빈방문을 초청했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로 둘러싸고 양국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중국이 자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참가하는 한-미연합 해상훈련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 6월말이나 7월초 북한대응조치로 서해상에서 실시한다는 계획이었다. 일단 7월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 이후로 연기했다. 핵항모함은 동해로 빠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굳건히 버틴 경제력을 바탕으로 제해권 확충에 나서 장차 양국간의 각축전이 예상된다.
작년 11월 오마바는 미국과 중국이 남아시아의 평화증진을 위해 협력하자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인도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인도-파키스탄 관계에 중국이 개입할 소지를 준다는 이유이다. 인도는 미국의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정책에도 비판적이다. 이슬람의 파키스탄과 적대관계에 있는 힌두의 인도는 탈레반을 암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는 지난 6월 전략적 대화에 착수했으나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오바마는 유년 시절 4년을 자카르타에서 지내 인도네시아에서 그의 인기가 아주 높았다. 그 까닭인지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와 포괄적 협력관계를 추진했다. 군사원조를 포함해 경제-안보관계를 격상시킨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바마가 지난 6월 세 번째로 자카르타 방문을 취소함으로써 그의 인기는 곤두박질쳤다. 자카르타 시내 공원에 세워진 그의 동상이 철거될 정도로 거부반응이 크다. 오바마는 11월 아시아 순방 길에 인도네시아를 찾겠다고 다시 약속했으나 반응은 냉담하다.
아시아 국가들이 역내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ASEAN(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이 지역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아세안 10개국의 CAFTA가 금년 1월부터 발효함으로써 잠재력에서 EU, NAFTA를 능가하는 인구18억의 거대한 경제권이 떴다. ASEAN은 일본, 한국, 호주-뉴질랜드, 인도와도 FTA를 맺고 있다. 오바마는 부시가 서명을 거부한 ASEAN과의 친선협력조약에 가입하고 작년 11월 미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ASEAN 10개국 지도자와 동석한 바 있다.
오바마는 개별국가와의 FTA를 추진하기보다는 환태평양협력체(Trans-Pacific Partnership)를 구상했다. 문제는 다국간협력체의 실질화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오바마가 한-미 FTA 찬성으로 돌아선 배경에는 경제 차원보다는 안보 차원이란 현실적 배경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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