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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극우보수, 촛불 '대반격' 움직인다
조갑제-이문열-주성영 '충격 발언'…진보진영 "민주주의 새 가능성" 전망
 
이석주   기사입력  2008/06/17 [18:02]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촛불 행렬이 한반도 대운하와 공공부문 민영화 등 이른바 '5대 의제'에 대한 비판의 화살로 확산되면서, 보수진영의 '도를 넘은' 비판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동시, 촛불집회를 향한 '대반격'이 시작된 양상이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를 선봉으로 소설가 이문열 씨와 일부 한나라당 의원 등이 촛불 집회의 성격을 '불장난'과 '천민민주주의', 심지어 자녀들와 함께 나온 부모들을 향해 "포르노 영화관에 데려간 격"이라는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힐난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최장집 고려대 교수 등 대표적 진보학자들이 촛불 집회에 대해 "6월 민주항쟁 이후 참여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에서, 보수진영의 '대반격'이 얼마 만큼의 국민적 동의와 명분을 이끌어 낼지 물음표가 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국민행동본부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은 지난 10일 서울시청광장에서 반 촛불문화제 집회를 개최, 이른바 배후조정설을 강하게 주장했다.     ©대자보

특히 6월 민주항쟁에 맞춰 지난10일 열린 '100만 촛불대행진'에서도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법질서 확립'을 기치로 내걸고 '반 촛불 집회'를 진행한 사례가 있어, 보수진영이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집회에 위기감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낳고 있다.
 
이문열 "무소불위 누리꾼, 불장난 그만해야"
 
보수진영의 대표적 인사들은 한결같이 현재 장기화 조짐 마저 보이고 있는 촛불 집회가 친북 좌파 세력에 의해 배후조정 되고 있다며, 이러한 배경 뒤에는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이 여론을 조작하고 왜곡보도를 일삼았다고 규정짓고 있다.
 
이미 지난 11일 촛불문화제의 성격을 '디지털 포퓰리즘'으로 규정한 이문열 씨는 17일 오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촛불 장난을 너무 오래하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해 불장난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델 것"이라고 말해 화를 자초했다.
 
이 씨는 특히 촛불집회의 의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과 관련,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는 하나의 구실이다. 그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더라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느닷없이 공영방송 사수를 외치는데, 그것을 보면서 왜곡이 일어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문열 씨는 17일 촛불집회를 불장난에 비유, "오래하다 보면 결국 불에 델 것"이라고 힐난했다.     © CBS노컷뉴스

이 씨는 나아가 "처음부터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더라도 쇠고기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다"고 말하는가 하면, 누리꾼들의 조중동 반대 운동에 대해서는 "범죄행위고 집단난동이다. 무소불위의 누리꾼들이 정부 위에 있는 권력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배후조정설과 관련, "범죄조직처럼 뒤에서 딱 딱 하는 것이 있다기 보다 비정형적이면서도 자발성과 순수성을 충분히 더 위장할 수 있을 만큼, 분산되고 무형의 비조직적인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우회적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 씨는 보수진영의 '대반격'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그는 "의병이란 것은 국가가 외적의 침입에 직면했을 때 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것"이라며 "이제 (촛불집회를 향한) 사회적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시민들, 좌파세력에 의해 선동되고 있어…'천민 민주주의자'들 탓"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보수진영의 '삐딱한' 시선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의 발언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문열 씨 주장에 앞서 주 의원이 한술 더떠 16일 "촛불집회가 '천민 민주주의자'와 '생명 상업주의자'들에 의해 변질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던 것.
 
주성영 의원은 이날 저녁 '디지털 포퓰리즘-천민민주주의를 논함'이라는 제목의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고 "정권 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은 '천민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피해자"라고 주장, 쇠고기 파동에 따른 촛불 집회를 '천민 민주주의'로 평가 절하했다.
 
주 의원은 특히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은 준법 의무를 우습게 여긴다"며 "촛불 집회가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들에 의해 법의 지배를 무시하는 반정부 투쟁 성격의 정치성을 띤 불법집회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주 의원은 "촛불시위가 시작과 달리 이렇게 정치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좌파 386과, 그런 부모들에게 이끌리는 초ㆍ중ㆍ고생, 지난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에게 표를 던진 620만 명의 일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주 의원은 "선량한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좌파들이 내세우는 정치적 구호에 선동되어 정권타도를 외치는 사람들은 '천민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조종되는 피해자"라며 "이제 나라를 걱정하는 민주시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행동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연일 촛불집회를 향해 배후조정설을 제기하고 있다.     © CBS노컷뉴스

혀 내두를 조갑제 발언…"부모가 아이들 포르노 영화관 데려간 격"
 
이들에 앞서 보수 인사들 중 '반 촛불집회'를 향해 최선봉에 나선 사람은 극우보수논객으로 분류되는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다. 조 전 대표는 지난 5월 초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에 글을 올려 '배후조정설'을 제기해 왔다.
 
특히 조 전 대표는 지난 15일 "(촛불집회에 청소년을 데리고 오는 것은) 청소년을 포르노 영화관이나 호스티스가 있는 술집으로 데려간 격"이라며 "광화문 지역을 야간에 '청소년통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가히 보수진영의 대표 인사 다운 발언을 했다.
 
아울러 "교육부는 불법 폭력 장소로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는 교사들을 조사하여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미국에서 이런 부모, 이런 교사가 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런 부모와 교사들은 '어린이 영혼추행'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진보학자들 상반된 주장…보수진영, 위기의식 느낀 것일까
 
이처럼 촛불집회를 향한 보수진영의 '폄훼' 발언은 자신들의 궁한 처지와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도 남는다. 대부분의 진보 학자들이 자발적 촛불집회가 참여 민주주의의 활로를 열었다고 평가하는 것과 대비되면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실제로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지난 16일 '촛불집회와 한국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촛불 정국의 가장 큰 원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단적 통치스타일"이라며 "오늘의 촛불집회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진보진영의 학자들은 16일 토론회를 통해 촛불집회가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 대자보

최 교수는 이어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그 중심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허약할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며 "6월 민주항쟁에 비견될 만한 이정표적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자리에서 김수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도 "촛불집회는 참여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여줬다"며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 집회 와중에 바리케이트 뒤로 숨었고 국회는 원구성도 하지 못한 채 텅 비었다. 집권여당은 권력다툼에 이념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자신들은 학습할 줄 모르면서 국민에게는 거대한 학습의 기회와 정치적 교육의 기회를 줬다"며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추가협상을 고집한다면 이 정부는 다시 돌라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의 권력 다툼. '내유외환'에 휩싸인 이명박 대통령.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진영이 촛불문화제를 향해 공식적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들의 '커밍아웃'이 얼마 만큼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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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17 [18:0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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