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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앞에 더 초라해진 보수단체의 집회
[기자의눈] 명분도 실리도 없이 일방적 외침, 그들의 '배후'가 더 궁금
 
이석주   기사입력  2008/06/11 [16:25]
#1. 10일 오후 6시50분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덕성여대 학생들이 'Stop 2MB'라고 적힌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대화를 이어갔다. 고등학교 남학생 두 명은 '조중동 구독 거부' 푯말 앞에서 댄스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광야에서'와 '아침이슬'도 울려퍼졌다. 이내 대형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오늘은 6월 민주항쟁 2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국민의 건강과 주권을 수호해야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시민들의 자발적 힘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여줍시다. 승리하는 그날 까지 꺼지지 않는 촛불을 만들어 나갑시다"

#2. 10일 오후 7시 서울시청 광장

잔듸에 앉은 한 중년 여성이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린 채 엉덩이를 들썩였다. 20대 남성이 고개를 바닥에 꽂은 채 눈물을 흘리며 기도문을 외웠다. 온 몸에 '할렐루야'가 도배된 한 노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사방을 주시했다. 곧 무시무시한 발언이 무대에서 흘러나왔다.

"하느님 아버지, 제발 사탄의 무리를 거둬 주십시오. 친북 좌파 세력을 이 땅에서 몰아내 주십시오. 저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면서 폭력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흡사 대형 교회의 기도회를 연상케 했다. 사람들 눈에서 섬뜩함 마저 느껴졌다. 일부는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형성하려는 듯,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고 당장 물러서라"고 말하기 까지 했다. 그랬다.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보수단체의 시각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6.10 100만 촛불대행진'이 10일, 주최측 추산 50만 이상의 서울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마무리 됐다. 조중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제2의 민주항쟁'으로 평가하며 시민들이 보여준 자발적 힘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덕성여대 학생이라고 밝힌 이들은 삼삼오오 앉아 광화문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 대자보
 
▲보수단체 집회에 참가한 한 남성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한 다른 남성을 향해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대자보

하지만 같은날 보수단체의 집회도 서울시청 광장에서 진행됐다. 국민행동본부 등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단체들이 '법질서 수호, 한미FTA 비준 촉구'를 기치로 내걸고 국민대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 대회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국민대회'가 되고 말았다.

집회 참가 인원과 구성 연령대, 언론의 싸늘한 평가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100만, 서울에서만 50만 이상이 참가한 촛불문화제와 달리, 보수단체의 집회에는 "우리도 대규모 인원이 모일 것"이라는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5천 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촛불문화제 참가 대상은 교복입은 중고등학생, 퇴근길 넥타이 부대, 유모차를 이끌고 나온 30~40대 주부, 손녀에게 솜사탕을 사준 백발 노인 까지 특정 계층에 한하지 않았지만, 보수집회 참가자들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보수단체 집회 본 시민들 "저 사람들 왜 저래"

이들의 공통점은 한눈에 봐도 분명히 드러났다. 촛불문화제 참가 시민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주최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친북 좌파 세력으로 규정했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무한 지지' 또한 빼놓지 않았다.

어떤이는 화이트 보드를 샌드위치 형태로 만든 뒤, 자신의 몸에 걸쳤다. 거기엔 "이명박 대통령님 힘내십시오. 우리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시청광장 주변 곳곳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국민 서명운동을 진행 중인 시민단체의 표정이 어색할 정도였다.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는 "'광우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짓 선동의 명확한 증거"라며 좌파 배후 조정설을 못박는가 하면, MBC와 KBS를 향해선 "친북 세력의 폭력시위를 축제라는 말로 포장했다"며 이들 방송사를 향해 경고성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이뿐일까. 극우보수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집회 말미 단상에 올라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정신이상자'들로 표현하기 까지 했다. 심지어 그는 "호로자식으로 부르고 싶지만 차마 입이 더러워질까봐 그렇게 말은 안하겠다"고 밝혔다.

▲보수단체 회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미친소 미친교육' 유인물을 들고 있는 다른 남성을 향해 거칠게 항의하고 있다.     © 대자보

이들을 지켜본 일반 시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과의 충돌 방지를 위해 방어막을 구축한 경찰들도 마치 '한심하다'는 눈빛을 발산했다. 이유는 명료했다. 자신들의 '틀'에 갖힌 채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기도'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한 중년 여성을 향해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자, 성난 표정으로 성큼 다가와 사진 삭제 요청을 강하게 밀어부쳤고, 이를 본 한 시민은 기자에게 "사진 지웠느냐. 저 사람들 왜 저런 것 같느냐"고 묻기도 했다.

촛불문화제 주최측이 배후조정?…"오히려 보수단체가 조직 동원"

보수진영의 주장대로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배후세력의 조정을 받아 이끌려 나온 것일까. 과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친북 좌파 세력일까. 최소한 5월 내내 광화문 사거리에서 밤을 지새다 시피 한 기자 입장에선 'NO'라는 말 부터 꺼내고 싶다.

이른바 '배후조정설'이 조중동과 한나라당에 의해 제기됐을 당시, 촛불문화제에 '답사'차 참가한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현장에서 시민들과 밤을 지새우다 보니, 배후세력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촛불문화제 참가 시민들은 연령대부터 다양하다. 발언자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에 대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만에 하나 배후세력이 있다면, 이렇게 까지 많은 인원이 모이기는 힘들 것이다.

비록 지난 8일 전경 차량을 파손하고 쇠파이프를 드는 등 일부 시민들의 과격 폭력 행위가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으나, 주최측은 시민들의 불필요한 행동을 자제시키고 있으며, 10일에는 일부가 컨테이너 박스 위로 오르려 하자 시민들은 일제히 "내려와"를 외쳤다.
 
▲보수단체의 집회가 열린 서울시청 광장 곳곳에선 보수진영의 참가자들과 촛불집회 참가자들 간의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자보

오히려 '배후조정설'은 보수단체 집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지난 10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포항시 남구 울릉군 당원협의회 등이 '반 촛불문화제'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며 조직 동원설을 제기했다.

실제로 이날 시청광장 주변에는 다수의 관광버스가 위치해 있었으며, 포항지역발전협의회와 재향군인회 등 사회단체 회원 3백 여명과 주민 4백 여명이 20대의 버스를 나눠타고 집단 상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항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민들 자발적 참여, 이념 논쟁에 묻힐까 우려

지난 10일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위한 '100만 촛불문화제'가 열린 날이기도 했지만, 21년 전 '독재타도'를 외치며 죽어간 열사들을 추모하는 날이기도 했다. 화염병 대신 촛불이 밝혀졌고, 시민들은 이른바 '명박산성' 앞에서 비판 섞인 축제를 펼쳤다.

촛불문화제 참가 시민들을 향해 명분 없는 '배후세력설'을 주장한 보수단체는 쇠고기 사태를 계기로 들불 처럼 일고 있는 민주화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국민 건강권과 주권 수호의 의의가 이념에 묻히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집회 제목에서 드러나듯, 보수단체들이 그토록 외친 '법 질서 수호'의 의미가 과연 '친북 좌파 배후조정설'을 제기하고, 촛불집회 참가 시민들을 향해 배타적 시선을 보내는 것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물음에 답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보수단체의 집회는 '그들만의 행사'로 그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저 사람들, 왜 저래"라고 체념한 한 시민의 발언에서 느낄 수 있듯,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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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6/11 [16: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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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심 2008/06/12 [16:27] 수정 | 삭제
  • 흔히 한줌도 안되는 극우보수세력이라 불리는데
    그 실체가 분명히 드러난 헤프닝이다.
    망령난 노인네들이 증오와 독설로 내뱉고
    바로 그 한 줌도 안되는 불쌍한 노인네들을
    주요지지기반으로 하는 세력들이
    엄청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우리 땅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 민주주의의 모순이다.

    투표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