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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특검의 삼성 본사 압수수색
[기자의 눈] 검찰의 부진한 수사, 증거인멸 충분…삼성 '무혐의' 수순?
 
이석주   기사입력  2008/01/16 [14:11]
예상대로 '확실한 물증'을 찾지는 못했다.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중인 조준웅 특검팀이 이틀에 걸쳐 이건희 회장의 개인 집무실과 삼성 그룹 본사 27층에 위치한 전략기획실 등 이른바 삼성의 '심장'을 겨냥했지만, 끝내 '불법 비리의 대동맥'을 찾는데는 실패했다.
 
결국 검찰 입장에선 모양새가 난처하게 됐다. 특검이 삼성의 불법비리 의혹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는 충분히 보인 셈이지만, 결론적으로 의지에 따른 결과물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 달 하고도 20일의 시간이 흘렀으니 말이다.
 
"압수수색, 이건희 회장 소환"…두 달 동안 시민사회단체 그렇게 외쳤건만
 
16일 검찰에 따르면,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 등을 조사중인 조준웅 특검팀은 지난 14일과 15일 양일 동안 승지원과 이학수 전략기획실장, 김인주 사장의 자택과 이재용 상무의 집무실, 본사 전략기획실 등을 압수수색 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곳 모두 김용철 변호사가 수 차례의 기자회견을 통해 이른바 삼성의 불법행위가 암암리에 진행되는 곳이라고 밝힌 장소다. 불법비리의 근원지를 수색했으나, 조사의 결정적 증거, 혹은 단초가 될 만한 단서 조차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해11월 기자회견을 통해 이른바 '떡값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하며, 전략기획실에 대한 압수수색과 이건희 회장의 소환조사를 강하게 주문하기도 했다.     © 대자보

당연히 삼성의 '증거인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기야, 삼성이 자신들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증거를 없앴다는 것은 어찌보면 삼성 입장에선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국민들에게 '초일류 기업'으로 각인돼온 만큼, 그간의 '업적'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증거를 인멸한' 삼성 측에 대한 비난은 잠시 미뤄두고, 화살을 검찰수사로 돌려보자. 예상 했겠지만, 삼성에게 시간적 여유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증거인멸에 대한 인지여부를 떠나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적극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10월 첫 기자회견에서 이른바 삼성의 '떡값 로비', 불법 비자금 의혹 등을 폭로하며, 수사를 주문하자 "구체적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본격적인 조사를 미뤄왔다. 이후 검찰은 한 달 만인 11월 26일 특본을 꾸리고 수사를 시작했다.
 
이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및 참여연대, 민변, 경제개혁연대 등 그간 삼성 비리의혹을 제기해왔던 시민단체들은 삼성 그룹의 증거인멸 등을 우려, "검찰이 시간을 끌 경우 실질적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련자 소환과 조속한 압수수색 등을 강하게 주문했다.
 
비록 검찰이 특본 구성 이후 5일 만에 핵심관련자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고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지만, 이같은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삼성이 증거인멸을 시도한다"는 정황은 특본 수사를 전후해서 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이는 김 변호사의 첫 기자회견 직후 삼성이 하드디스크와 이메일 삭제 프로그램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는 언론보도나,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긴 했지만 11월30일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 때도 "정보가 미리 샜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포착된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이같은 이유로 특검 착수와는 관계없이 특본 수사 초기 부터 조속한 압수수색 및 이건희 회장의 소환조사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졌다. 하지만 검찰은 특검 수사에 미루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시민사회단체의 이같은 요구를 외면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삼성증권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직후, "삼성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당장 진행해야 한다"며 "증거인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을 빠른 시일 내에 소환조사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늦은' 본사 압수수색…정보유출도 책임소재 밝혀져야
 
두 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압수수색을 단행 했으나, 특검 관계자가 "(27층 전략기획실) 구조가 변경돼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본다면, 결국 특검 스스로가 이른바 '증거인멸'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검찰의 지지부진한 수사가 그간의 우려대로 삼성에게 '시간적 여유'만을 가져다준 셈이 돼버렸다. '더이상 핵심 증거자료를 밝혀낼 수 없는' 상황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기업 이미지와 달리, '증거인멸'이라는 삼성의 이같은 행동은 전적으로 검찰이 책임져야 한다. 물론, 특검이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과 삼성의 전략기획본부를 수사하는 등 국민들의 바람대로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여준 점은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누구를 겨냥해 어디를 조사했느냐'와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확실한 증거를 찾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나아가 압수수색에 대한 '정보유출'의 책임 소재 역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만약 언론보도대로 삼성 본사 전략기획실에 대한 압수수색 정보가 검찰 내부에서 미리 '새어 나갔다'면 이는 검찰 조직, 아니 특검 내부의 책임이 너무나도 명백한 사안이다.
 
지난15일 이른바 '방북 대화록 유출'에 책임을 지고 김만복 국정원장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만약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관련자는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마땅하다. 삼성 불법 비자금 사건과는 별개로 이에 대한 수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삼성이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삼성 그룹도 국민들의 비난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증거인멸' 시도 자체가 자신들의 과오와 혐의를 명백히 인정하는 것일테니 말이다.
 
그래야만,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자신들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려고 노력한 삼성 광고, 여기에 나오는 락 음악의 제목('Somebody to love')처럼, 모든이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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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01/16 [14:1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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