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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북한은 악의 축이 아니다-김대중대통령은 민족의 염원을 담아 올바른 결단을
 
윤정모(소설가)   기사입력  2002/02/05 [18:06]
"정부, 美설득 대책도 없다"는 기사를 읽고
  
  대통령께
   대통령께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복잡하실 것입니다. 곧 미국대통령을 맞아야 할텐데 협상 테이블을 어떤 색깔로 준비해야할지 그것도 자못 걱정이실 것입니다. 전처럼 민족대계나, 당권존속, 경제 중 그 어느 것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엔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걸려 있다는 것 때문에 당혹감이 더 깊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테이블 색깔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다!"

  그 국정연설은 전 세계를 향해 당신과의 회담 내용을 미리 선포한 것과 마찬가집니다. 어쩌면 이로 인해 대통령께서는 벌써 상처를 입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일관되게 대북정책을 추진, 발전시켜왔고 유사이래 처음으로 미국으로부터 주도권을 찾아 '한반도 내의 문제를 한국이 주도할 수 있도록'  당신이 협의를 이끌어냈으며, 그 성과 하나만은 차기 정권에서도 지켜지리라 믿고 계셨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회담을 갖기도 전에 먼저 성격규정용 발언부터 날렸습니다. 그 선포는 대통령의 일관된 정책을 모독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정책을 일격에 날리려는 공격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세계 정세에 밝으신 당신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미국국민들은 지금 '엔론추문'에 쏠려 있고 부시는 그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려고 그런 일회용 발언을 한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영국외무장관 역시 '부시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선거용'이라고 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그칠까요? 저희가 그 선포가 사실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은 지금도 테러 전쟁을 계속하고 있고, 오직 테러 주범 하나를 찾겠다고 몇 달간 계속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그 황무지와도 같은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대량의 살상무기를 쏟아붇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가 왜 이렇게 전쟁을 즐기는지 그 이유도 물론 알고 있습니다. 부시정부는 집권 당시부터 '경제하락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출범했습니다. 그런중 테러를 당했고 그는 그것을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전화위복으로 생각했습니다. 미국 보수층의 정책이 늘 그랬듯이 다시 군수산업으로 경제회생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전쟁사업이란 참 매력이 있는 분야입니다. 세계 패권도 단단히 구축할 수 있고 군수산업에도 활력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한데 테러범 하나만 겨냥한 전쟁놀이는 부시에게 성이 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전쟁을 계속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새로운 적성국가가 필요했고, 거기에 또 이라크, 이란, 북한이 걸려든 것이지요.  

  그래서 부시는 대통령 당신께 그런 색깔의 협상테이블 보를 미리 던진 것입니다. 당신의 대북정책과 그 성과는 아랑곳없이, 수뇌부의 협의 사항은 지켜져야 한다는 그 기본약속조차 무시한 채 말입니다.

  희망의 볕  
  당신께서는 참으로 어렵게 대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 알고 있듯이 합당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보수의 벽이 그만큼 두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당신께서는 순간을 잘 이용했고 아직까지는 별 무리없이 이끌어오고  계십니다.

  물론 지금도 쉽지 않으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개혁의지를 바라는 대로 펼칠 수도 없다는 것, 그런 현실도 못된다는 것을 압니다. 곳곳에는 아직도 보수가 자기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사사건건 당신에게 딴족을 걸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당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겨우 몇 껍질만이 바꿀 수 있었다는 것과 그것조차도 임기 후의 보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보수 측에서는 벌써 차기 정권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으며, 부시 대통령한테까지 당신의 정책을 무시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민족화합이라는 희망 하나를 심었고 그것은 두 번 다시 무시되어서도 아니됩니다.  
  영국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집권 직후 당신께서는 영국에 가셨고 그때 런던대학에서 연설을 하셨습니다. 제 기억이 바르다면 당신께서는 '반대파의 의견까지도 수렴할 것이며, 세계적인 물결, 그것이 온당하다면 따를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는 영어로 연설을 하셨고 저의 수준으로는 감히 다 알아들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야 어쨌든 그 자리에 온 대학교수들 내지 모든 영국 지식인들은 당신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당신의 연설을 지지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넬슨 만델라를 생각했습니다. 만델라와 당신께서는 비슷한 점이 많았던때문일 것입니다. 그 역시 오랜 옥고 끝에 대통령 출마를 할 수 있었고 그 정점에서 그는 대통령 복수제라는 선거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그때 그의 의견을 가장 반대한 쪽은 백인이 아닌 자신과 같은 소속의 급진파였습니다. 어느 날 급진파들은 그와 독대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해방이냐, 정권이냐?"
  "물론 해방이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백인과 타협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타협만으로 해방을 줄 것 같은가?"
  "절충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 생각은 투쟁의 힘을 높이는 길만이 완전한 해방과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절충은 우리의 희망, 그 시기만 늦출 뿐이다."
  "어느 길이 완전 해방에 더 빠른 것인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다만 내 생각은 해방은 우리의 희망이며 그 희망의 삭을 조금이라도 먼저 보자는 것이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단독출마를 고집하면 그들은 어떤 수단을 써도 좌절시키고 만다. 그러면 시도하지 않음만 못하다. 절망도 시기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그 전에 돌멩이 하나라도 들어내 희망의 볕을 줘야 한다."

  만델라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급진파는 이렇게 단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은 왕족출신이다. 그 출신성분이 당신을 정권야욕으로 몰고 있다!"
  어쨌든 그는 복수 대통령제에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남아공 민족들은 백인들로부터 최악의 대접은 받지 않았고, 그것이 곧 그가 말한 절망의 돌 몇 개를 들어내 희망의 볕을 보게 한 것입니다.
  대통령, 당신께서도 그랬습니다. 50년 동안 칭칭 묶여온 보수의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굳을 대로 굳어온 보수의 정책을, 비록 조금이라 해도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고뇌  
  진보진영에선 당신께 '미국에 대해 너무 저자세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부시 대통령의 방문 때 당신께서도 그의 요구에 응할 수 밖에 없다고 예측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께서 그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면 그 이유를 이렇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경제를 아시는 분입니다. 무릇 우리의 경제라는 것이 내수만으로 전혀 지탱될 수도 없고 이미 70-80%로 이상이 외국경제와 톱니가 맞물려 있으며 그 톱니를 조정하는 것이 미국의 입김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 경제는 지금 하나의 동 정맥으로 흐르고 있고 대통령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이권만을 주장할 때는 자칫 자기 손실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두려운 공포는 '경제봉쇄', 즉 미국의 '고사작전'에 휘말려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미 여러 나라에 그런 고사적전을 실행했고 그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음으로 그들은 언제든 그 마지막 카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벌써 우리에게 IMF라는 1차적인 카드를 썼습니다. 그에 대한 공포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이라 대통령께서는 어쩌면 당신의 주장을 접고 고개 숙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간단히 부시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핵 사찰뿐만 아니라 북한이라는 존재 자체를 제거하려는 그 의도에 빌미를 제공하셔도 아니됩니다. 그것은 당신의 대북정책뿐만 아니라 민족대계에도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신에겐 그 무엇보다 차기 대선이 큰 장애물일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께서 꿋꿋하게 당신의 정책을 고수하신다면 보수정당은 이렇게 몰아붙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여태 북한만 이롭게 했다. 그것은 빨갱이 사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린 더 이상 그의 정당에 권력을 맡길 수 없다"

  수십년간 반복되어온 비방용이라 해도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식상해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수의 벽이 그만큼 단단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때맞추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부시가 당선이 되었고 그래서 미국 대통령에게 당신을 무시해줄 것을 촉구하는가 하면 이상야릇한 응석을 부리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미군부대 정문 앞에 가서 '우리는 미군을 사랑한다, 제발 떠나지 말라'고 피켓을 들고 구애 시위를 한 것은 전쟁의 빌미를 찾고 있는 미군들에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AFN 코리아 TV를 통해 이 구애시위를 진종일 방송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의 시위, 그러니까 '미군은 사과하라거나, 물러가라'는 시위가 있었을 땐 아랫단에다 시위예정을 알리며 그쪽 정문은 피하라는 경고문만 내보낼 뿐입니다.    

   어쨌든 부시는 보수와 죽이 잘 맞고 그들의 힘을 입어 당신께 아주 강한 요구를 할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당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께서 그간 쌓아온 모든 공적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간신히 되찾아둔 민족 공동체 의식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심각한 훼손일 수도 있습니다.

  민족임기는 영원합니다
  저는 당신의 슬기를 믿습니다. 또한 당신에겐 많은 지지자가 있다는 것도 희망일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도 부시의 선포를 비판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부시에게 큰 영향력을 줄 수 없다면 전 미 국무장관조차도 부시의 발언을 비판했다는 것이 지혜를 내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보낸 셀리그 해리슨의 조언처럼 당신께서는 '북한은 94년 제네바 협정에 그 어떤 위반도 하지 않았다는 것'과 오히려 미국이 위반하고 있는 사실을 조목조목 일러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무기는 당신께서 클린턴 정부와 협의했던 조항입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포용정책을 지지하고, 한반도 내의 문제는 한국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한다'는 것을 문서화했습니다. 일단 문서화된 외교문서는 비록 정권이 바뀌어도 쉽게 고쳐질 수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약속까지도 쉽게 번복한다면, 미국은 미 합중국이라는 시민으로 이루어진 국가가 아닌 전쟁만 일삼은 병영국가로 그 명예가 영원히 실추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제가 감히 드리고 싶은 말은 부시, 혹은 보수가 점치듯이 차기에 실패가 온다 해도 그 임기는 고작 5년이라는 것입니다. 그 5년간 뜻있는 지식인들은 당신의 성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민족 임기는 영원하며, 당신의 올바른 결단은 그 영원한 임기를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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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2/05 [18: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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