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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진의 縱橫無Jean] 마천루 시대의 종말?
현대 자본주의의 바벨탑, 정보통신기술에 무너지려나ba.info/css
 
민경진   기사입력  2002/05/11 [22:56]
{IMAGE1_LEFT}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기 1주일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고층빌딩의 조류]라는 주제로 건축 포럼이 열리고 있었다.

이 포럼의 연사에는 세계무역센터 건축에 참여한 레슬리 로벗슨 역시 포함돼 있었다. 청중의 한 명이 쌍둥이 빌딩이 폭격에 견딜 수 있겠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로벗슨은 이렇게 답했다.

"쌍둥이 빌딩이 테러 공격 따위로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로벗슨의 호언장담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쌍둥이 빌딩은 여객기를 이용한 가공할 테러에 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여객기테러 이후 세계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하면 고층빌딩의 안전을 강화할 수 있을지 논란이 분분하다. 독일 담스타트 공대의 칼 A.그라우브너 교수는 쌍둥이 빌딩이 경제적 공간활용을 핑계로 비상 탈출구를 충분히 갖추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갖추어 극단적인 테러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빌딩을 설계할 수는 있겠지만 엄청난 비용때문에 채산성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라우브너 교수는 솔직히 고층빌딩 자체가 그리 경제적인 건물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건축주들이 고층 빌딩을 지을 때는 좁은 땅에 많은 업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마천루가 도시에서 갖는 권위와 상징성을 내세워 비싼 임대료를 받아내겠다는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다국적 컨설팅 회사는 주요 도시에 사무실을 얻을 때 반드시 그 도시에서 가장 비싼 임대료를 받는 초고층 랜드마크 빌딩에 입주한다는 내부 방침을 가지고 있다고 전한다. 마천루의 권위를 내세워 회사를 찾는 고객들에게 신용할 만한 서비스 기업으로서 이미지를 팔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여객기테러 이후 초고층 마천루의 위세는 한 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쌍둥이 빌딩에 입주해 있던 뉴욕의 한 보험회사가 이번 사건 이후 고층빌딩을 일부러 피해 뉴저지 등 주변의 저층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실 실리콘밸리 등 첨단산업단지에서는 고층빌딩을 경원시하는 분위기가 이미 퍼지고 있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본사가 어느 곳에 있든지 업무에 큰 지장이 없다면 굳이 임대료 비싸고 출퇴근 불편하며 주차마저 까다로운 도심의 마천루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팔로알토, 쿠퍼티노, 산호세 등 수십킬로미터에 이르는 광활한 실리콘밸리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하이테크 기업의 본사는 대부분 널직한 터에 자리잡은 야트막한 빌딩에 입주하고 있다.

{IMAGE2_RIGHT}20세기의 산물인 뉴욕의 마천루는 현대 자본주의의 바벨탑으로 행세하며 기형적인 도시화를 이끌어 왔다. 하루 수십만명을 실어나르는 도시 지하철이 탄생한 것도 고층빌딩이 생기고 나서부터다. 쌍둥이 빌딩같은 고층빌딩을 지어 수만명의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지 않았다면 이처럼 인명피해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지목 받아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작 마천루의 원조인 미국에서 고층빌딩 열기가 식고 있는데 반해 동남아와 중국에서는 초고층 빌딩 건설 붐이 한창이다. 중국은 상하이시 푸동(浦東)에 동방명주탑과 88층짜리 진마오빌딩을 지었고, 말레이시아는 쿠알라룸프르에 페트로나스 타워를 지어 세계 최고층 빌딩 기록을 차지하기도 했다. 페트로나스 타워 건설에도 참여한 한국의 재벌기업 총수는 서울 강남에 백수십층 짜리 마천루를 지어 본사를 입주시키려다 IMF가 닥치자 마지 못해 아파트 건설로 돌아서기도 했다.

20세기의 산물 마천루가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결국 빌딩에 입주할 고객들이 쌍둥이 빌딩 붕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세계의 마천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http://www.skyscrapers.com 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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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11 [22: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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