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오전 11시. 이화여대 학생문화관에서는 여성을 억압하는 징병제와 군사주의 반대! 라는 기치아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지지 기자회견>이 열렸다. 군대도 가지 않는 '그녀'들이 모여 있을 행사장으로 가는 길은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온통 분주하기만 한 교정을 걸어가며, 그동안 남성들만의 문제로 치부되어 온 병역문제를 나눠 가지려고 한 그녀들에 대해 솔직히 일말의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왜 다시 이 자리에 앉았을까. 혹은 얼마만큼 '절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행사장 앞에 도열한 수많은 취재진들 뒤에서, 정몽준 의원의 헌혈행사를 구경하는 학생들의 탄성(어머 난 몰라)은 나의 그런 생각에 해답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남자가 없는 세계에서 이루어진 그 작은 모임은 행태와 제도의 틀에 의해서 조장된 성 차의 벽을 허물고 보다 크게 겹쳐지는 자아를 함께 구성하려는 그녀들 나름의 노력임을 나는 확인하였다.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군대와 징병제 그 자체가 양산하고 있는 정상/비정상의 사회적 범주를 넘어 그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실천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학생회장 윤혜정씨의 당당한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참석한 학생들의 상기된 볼은 남자들과의 인위적인 조율과 절충, 그리고 역학에 의해서 가공된 제스처와는 다른, 여성성의 한 단면을 조용히, 그리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역시, 일부 급진주의 여성들의 주장과는 분명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받을 비난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실 한국에서 "죽이고 싶은 여자"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이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군대와 관련된 비판을 하면 된다. 그러면 즉각 "여자가 어디서"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이러시면 안 된다. 한국의 예비역에게도 이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IMAGE2_RIGHT}최근에 김훈씨의 글을 읽다가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라고 하는 문장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과연 그렇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과연, 하고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그 주장을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그러한 사고 방식도 있을 수 있구나 하고 납득할 뿐이다. 군대와 징병제 같은 민감한 문제들이야말로 다른 어떤 사안보다도 이처럼 열린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또 군대와 징병제 같은 민감한 문제들이 보다 건설적인 논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첩경일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늘의 이 행사가 "이 땅의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 군대와 징병제 그 자체가 양산하고 있는 정상/비정상의 사회적 범주를 넘어 그로 인해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추신.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이대 홈페이지(http://www.praxis.zoa.to )로 확인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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