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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는 존속하고 기무사는 폐지하라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과 진실을 은폐하는 사람들
 
임흥재   기사입력  2002/09/10 [12:36]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의 의혹을 밝힌 것을 계기로 의문사진상규명위(이하 위원회)에 대한 국민들의 격려가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위원회에 매일 격려전화가 걸려오는가 하면 인터넷 게시판(http://truthfinder.go.kr 에도 100여건의 격려글이 올라오는 등 최종길교수 사건 발표 당시, 일부 시민들이 ‘빨갱이’ 운운하던 냉소적인 반응과는 사뭇 다르다고 한겨레신문(9.9일자)은 전하고 있다.



진실에 대한 갈증과 국민적인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반세기 우리의 현대사는 그대로 폭력의 역사다. 외세의 침략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공동체 질서는 이념적 갈등이 야기 되면서 대량의 인명살상이 죄의식 없이 행해졌다. 정치적 음모에 의한 백주 대낮의 정치테러 또한 빈번해졌다. 1947년 여운형, 1949년의 김구 암살은 무자비한 폭력에 의한 손쉬운 해결의 전형이었다. 합법을 가장한 살인도 이루어졌다. 1975년 인혁당 사건의 당사자들은 정당한 소명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1심 판결 다음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식민지 시대의 무단통치는 우리의 인권을 왜곡시켰고 해방후 최근까지 권력을 장악한 자들 또한 그들의 태생적 한계(빈민주적 반민중적 정권의 한계)로 인하여 폭력에 의탁함으로써, 인권유린과 야만적 학살을 관습적으로 자행하였다. 그 폭력의 지배기간 내내 많은 희생자들이 생겨났다. 참혹한 고문과 야만적 폭력의 희생양이 된 그들의 죽음은 은폐되었고, 권력이 조작한 죽음의 이유들이 그들의 주검 위에 방부제처럼 뿌려졌다. 그들은 죽은 뒤에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억울한 망혼이 되어 살아남은 자들에게 한을 키웠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의 진실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상상하기도 끔찍한 이 가정문 한 줄이 역사를 갈랐다. 일상화 된 폭력과 관성화 된 체념에 신음하던 이 땅에, 감춰진 한 의문사의 실마리가 새어나오면서 민주와 정의의 숨통이 트였다. 야비한 폭력에 무참히 얻어 터지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던 우리들이 그제서야 더 이상 맞고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결의를 품을 수 있었다. 그렇게 폭력에 항거하며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살을 깍고 가슴이 저미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사란 이름으로 그 진실이 감추어지고 석연찮은 해명에 진상이 왜곡된 많은 죽음들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다. 이 죽음들에 대한 진실의 규명은 우리가 이 시대에 반드시 풀어야할 역사의 숙제다.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권력의 음모와 공작으로 희생된 그들의 주검 위에, 우리는 진실의 봉분을 세우고 용서를 구하는 비문을 새겨 넣어야 한다. 동토에 묻혀 썩지도 못하고 있는 망자의 진실과 유가족의 한을 풀 수 있는 길은 이제라도 죽음의 진정한 원인과 정직하게 대면하는 길이다.

- 존속해야할 것

그 중차대한 역사의 숙제를 풀기 위해 2000년 1월 15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 되어 대통령 직속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그 해 10월 발족하였다. 일 년 반 남짓한 기간에 위원회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나름대로 묻혀있는 진실에 관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대 최종길 교수와 허원근 일병의 죽음에 대한 규명 노력은 오히려 이 위원회가 앞으로 담당해야할 역사의 책무가 얼마나 막중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 위원회가 오는 9월 16일 법이 정한 기간의 만료로 사실상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접수된 의문사 진정사건의 삼분지 일도 조사하지 못하고 정권의 생색용으로 설치 되었다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망자에게나 그 유가족들을 다시 한 번 죽음의 고통으로 밀어 넣는 반역사적인 죄악이다. 의문의 실타래를 풀고 살인의 실상을 밝히는 것은 그런 부끄러운 과거와 단절할려는 우리의 의지인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역사의 교훈을 얻으려는 시대적 요청이다.

나찌전범이나 부역자들을 지금도 색출하고 법정에 세우는 유랍 각국의 노력은 단순히 일개인에 대한 법정의 단죄에 있지 않다.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한 우리의 실정이 반세기 지난 지금에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 우리의 삶을 황폐화 시키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권력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 위장된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것은, 어쩌면 구시대의 악근(惡根)의 잔뿌리를 잘라내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법정범 ‘죄수’에게는 공소시효가 있을지 몰라도 자연범인 ‘역사의 죄인’에게는 공소시효가 없다.

[관련기사]
임흥재, 의문사진상규명위 존속 되어야, 대자보 89호

양심을 바로 세우지 못한 역사는 그 근원에서부터 언젠가는 썩기 마련이다. 그 양심을 세우기 위해 위원회가 설치 되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동행명령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강제 구인할 수도, 수사상 필요한 계좌의 추적이나 영장의 청구도 할 수 없는 반쪽의 기능으로 위원회는 바로 그 역사의 진실을 캐내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고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마땅히 위원회의 조사활동은 연장되어야 한다. 아니 차제에 단 하나의 진정사건도 남지 않을 시점까지, 이해당사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위원회의 활동시한을 못박지 않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1996년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중대 인권침해범 불처벌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프랑스의 인권변호사 루이 주아네가 기초한 이 보고서는 ‘사회구성원의 알권리’와 ‘국가의 기억의무’를 대전제로, 중대 인권침해범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처벌받지 않는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원칙을 50개 조항으로 상세히 제시하였다.
(출처:의문사와 의문사진상규명의 의의/안병욱/‘역사와 진실’제39호/한국역사학회 2001.3)


이 보고서의 주요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1)모든 사회구성원은 과거의 인권침해에 관해, 그 재발을 막기 위해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2)민중을 억압한 역사에 대해 국가는 기억할 의무를 지닌다.
20)기소절차는 국가의 권한이나, 국가가 기소하지 않거나 준 당사자일 경우 희생자들이 스스로 소송절차를 구성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28)국제법상 중대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을 엄중하게 손상한 범죄에 대해서도 본질적으로 공소시효가 없다.
33)상관의 명령에 따른 범행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고 감형의 사유가 될 뿐이다.
44)국가는 책임성을 공개인정하고, 희생자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한 공식선언을 발표하며, 희생자에 대한 정레적인 추도를 해야 하며, 중대 인권침해사실을 역사 교과서에 실어야 한다.
45)군대내의 관료적인 사조직을 해산하고, 인권침해가 가능한 법률조항 비상조항 등을 폐지해야 한다.

이 보고서의 골자는 인권침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진실을 알아야 하고, 국가는 억압을 자행했던 과거를 묻어두지 말고 기억해야 하며, 희생자들을 추도하고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국가는 인권침해를 가능하게 한 법률들을 폐지하고 또한 포괄적 법규정에 의한 자의적 해석으로 인권이 침해되는, 예를 들면 국가보안법의 조항이나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의 법적근거인 군사기밀누설죄 등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신성한 인권이 침해 당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의 활동은 지나간 폭력의 시대에 개인 혹은 집단에 가해진 국가 또는 권력의 죄과를 밝히고 진실을 들추어 냄으로써 그와 같은 반인륜적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으려는 우리의 고통스런 자기반성이다. 철저한 반성 위에 쓰여지는 진실만이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고 함부러 행해진 권력의 폭력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문사진상규명위는 더 이상 필요없는 세상이 왔다는 사회구성원들의 동의가 있는 시점까지 반드시 존속되어야 한다.

- 해체되어야 할 것

{IMAGE2_LEFT}의문사진상규명위의 법적 생명력이 끝나가는 시점에 터져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에는 어김없이 기무사의 존재가 거론된다. 온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병역비리의혹’의 한 가운데에는 기무사요원이 관련되어 있고, 여전히 거짓증언으로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군검찰관의 뒤에는 ‘기무사가 키운 사람’이라는 엉뚱한 출신성분이 관련자의 증언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 뿐인가.

며칠 전 연합뉴스의 기사에는, 노동운동을 하다 92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박태순(당시 27세)씨는 민간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기무사의 내사를 받았으며, 박씨의 사망사실을 당시 내사를 담당했던 기무사 요원이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얼마 전에는 교도소내의 사상공작을 기무사(전신인 보안사 혹은 보안부대) 주도로 행해졌고 이 과정에서 무참히 인권이 유린되었으며 살인 및 살인방조가 묵과 되었다는 경악할 소식을 접했다.

허원근 일병 등 의문의 죽음을 당한 당사자들의 가족들은 그동안 기무사의 숱한 협박과 회유, 그리고 감시를 당하면서 참기 힘든 이중고를 겪었다는 기사를 접하고 나니, 의문사진상규명위의 기무사 조사에서 ‘대통령이 와도 보여줄 수 없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기무사 요원의 무소불위 안하무인이 너무도 당연히 이해된다. 이 나라는 여전히 정보기관이 장악한 군부의 나라, 권력의 이동에 따라 줄바꿔서기를 행한 기관요원들이 주무르는 나라라는 슬픈 현실에 갑갑한 가슴을 쥐어 뜯는다.

특무부대, 방첩부대, 보안부대를 거쳐 각 군의 방첩 보안을 담당하던 부대들이 국군보안사령부라는 이름의 가공할 권부로 등장한 것이 1977년의 일이다. 보안방첩활동의 효율성을 내세워 통합된 보안사는 그대로 군부권력의 통치기반이었다. 중정과 보안사는 유신말기를 지탱하는 양대축으로 기능하였고, 인권유린과 정치인 사찰이 방첩기능을 대신하였다. 보안사 인맥이 지배하던 전통의 5공화국은 보안사시대의 정점이었다. 나와 같이 그 시대에 군복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보안사는 계급을 초월한 막강한 권부였고, 인민군의 정치보위부와 다를 바 없었다.

민주화의 거센 도전에 91년 외피만을 갈아 입은 것이 오늘의 기무사다. 세상이 변하면서 기무사의 눈에 보이는 악행은 많이 수그러 들었다고 많은 국민들은 믿었다. 그러나 요즘 드러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여전히 기무사는 방첩과 안보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본래의 역할보다는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작’을 확대 재생산하는 더러운 정치공작소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냉전의 논리와 적대적 무력충돌의 위험성이 많이 사라지고 헛된 공산주의 또는 주사의 붉은 사상이 발 붙이기 힘든 건강한 세상으로 우리는 차츰 나아가고 있다. 이 말은 이제 정보기관의 역할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중정 안기부를 거치면서 정치공작의 대명사가 된 국정원도 국제경쟁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한 해외경제첩보의 수집과 국익우선의 활동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또한 남북의 경제교류가 활성화 되고 인공기가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게양될 변화의 시대에 군부내에 소위 ‘좌익 빨갱이’나 주체사상 등 사상적으로 오염될 소지가 현저히 줄어 들었다.

급변하는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나는 기무사가 원래대로 각군 본부 소속으로 방첩과 보안업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전군의 인사권을 장악하고(아니라고 부인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각 군의 요직을 나눠 먹기식으로 안배하는 현실에서 기무사는 필연적으로 권력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기무사 부사관의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일선 전투부대의 지휘관들에게 올바른 전투력의 향상을 기대할 수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한 번 기무사 요원은 영원한 기무사요원이다. 그들이 전투부대의 보직을 받아 떠나는 것은 단지 진급을 위한 절차일 뿐이고 이를 마치기가 무섭게 다시 기무부대로 돌아온다.

각 군 소속하에 방첩 혹은 보안부대를 신설하고 각 군 총장의 통제하에 두는 것으로도 본래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욱 훌륭하게 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함부로 권력을 행사하는 폐단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통합기무사의 해체는 육군이 요직을 다수 점하고 있는 현군부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부차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현대전은 지상전의 전력으로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하지 못한다. 육해공을 넘나드는 입체전력의 건설이 이 시대에 요구되는 군사력이다.

무엇보다 통합 기무사의 해체는 포괄적 법규정을 준용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등 인권침해와 부조리를 근절 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다. 각 군으로 분산된 방첩기능과 보안, 군부내의 기강확립이 주역할이 될 것이고 노동현장 학원가 등에 침투한 기무사의 사찰행위는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개혁과 변화를 열망하고 새로운 기운이 요동치는 이 시대에는 더 이상 군정보기관의 사찰과 감시에 고통 받는 민간인이 있어서는 안된다.

세상은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국경과 이념을 초월하여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그림자를 내세워 신성한 개인을 속박하고 억압하는 조직이 민주사회의 성숙을 가로 막아서는 안된다. 또한 지난 시대에 은폐되고 조작된 진실을 들춰내어 새로운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우리의 숭고한 의지와 신념이 생색내기용 법률조항에 걸려 흐지부지 되는, 뼈아픈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절대 안된다. / 논설위원

*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홈페이지 http://truthfinder.go.kr
* 국군기무사 홈페이지 http://www.ds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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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9/10 [12:3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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