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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유엔 인권위원회 가다
 
최정민   기사입력  2002/05/08 [16:43]
유엔 인권위원회에 처음 참가하면서... 결의를 다지다.

{IMAGE1_LEFT}"비록 짧은 영어에다가 국제연대 경험도 별로 없지만 지금도 전국 교도소에서 고통받고 있을 160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을 대신해서 자신 있게 최선을 다해서 목청껏 떠들고 오리라."

요들송과 알프스의 나라. 푸른 목초지와 그림 같은 집, 조용한 호수와 청정한 공기,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영세중립국. 이런 상상 속의 스위스를 생각하며 3월 30일 나는 제 58차 유엔 인권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제네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막상 스위스에서의 2주일은 내가 알지 못했던 스위스의 이면을 알게 해주었다.

스위스는 1995년부터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무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가득한 나라였다. 남성들은 20세가 되면 당연히 군대에 가야하고 따라서 병역거부는 특별한 행위로 취급되고 있다. 한마디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병역제도 또한 한국의 징병제와는 형태가 많이 다르고 주로 예비군 중심이지만 성인남성들은 무려 50세까지 복무해야 하며 면제자는 병역세를 따로 납세해야 하는 등 철저하게 국민 개병제에 입각한 병역제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으며 강력한 군사주의가 작동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인권위원회에서 만난 스위스의 한 평화주의자이자 병역거부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병역거부를 결심할 때 주위의 반대가 심했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세계사를 배우고 스위스란 영세중립국을 알게 되면서 순진하게 가졌던 세계체제가 그 나라의 평화를 보장해준다는 생각, 항상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왜 한국은 영세중립국을 선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새삼스레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얕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위원회

유엔 인권위원회는 총회, 안전보장이사회, 신탁통치이사회 등 유엔의 6개 주요 기관 중 경제사회이사회 산하에 설치된 기구로서 인권기준과 제도의 발전을 통한 인권의 국제적 보장을 위해 설치되었다. 인권위원회는 해마다 3,4월 6주간의 회기로 제네바에서 열리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관련된 의제는 매 2년마다 다뤄지게 된다. 바로 올해가 병역거부가 다뤄지는 그 해이며 이번 5명의 한국 참가단도 유엔과 각국 정부, 전세계 엔지오들에게 한국의 병역거부 상황에 대해 알리고 연대를 호소하기 위해 전체 회기 중 병역거부 의제가 논의되는 시기에 맞춰 인권위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유엔차원에서는 1980년대부터 병역거부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어 1998년 인권위원회 결의안에서 이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98년 결의안에 따르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세계인권선언 18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부여되어야 할 정당한 권리이고 각 국가는 병역거부로 인해 거부자가 투옥이나 반복된 징계를 받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위하여 병역거부의 취지에 합당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병역거부권은 유엔은 물론이고 유럽연합을 비롯한 전세계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기본적 권리로 보장받고 있다.

인권위원회의 회원국으로서 한국 정부도 물론 이 결의안에 따라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을 자국 내에서 취해야할 의무가 있음은 물론이다. 물론, 한국 정부는 한반도의 특수한 분단상황을 이유로 인권위원회 결의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수많은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이 달린 문제를 국내적 상황을 핑계삼아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인권위원회가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되고 실지로 인권위원회의 많은 시간을 전세계 인권상황의 증진을 위한 논의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국가주권을 주장하는 모습에서 그 한계를 실감하였지만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권위원회를 끌어가는 한 축으로서 엔지오들의 역할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전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엔지오들은 인권위원회 전체를 아우르며 단순히 일국의 인권침해 사례를 폭로하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논의내용과 결의안 마련에 이르기까지 인권위원회 전 과정에 걸쳐 주도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엔지오들은 인권위원회 회의장 안과 밖에서 때로는 개입으로 때로는 투쟁으로 인권위원회를 이끌어갔다.

한국 참가단의 활동

{IMAGE2_RIGHT}한국 참가단의 일정은 크게 유엔 인권기구 실무자들과의 만남, 엔지오와의 만남 및 전세계 병역거부 문제에 관한 간담회 개최, 다른 나라 정부 대표들과의 만남 그리고 2차례 예정된 구두발제 등이었다. 유엔 인권기구로는 '종교와 신념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을 만났고 2기구 모두에서 한국의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종교와 신념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올해 한국을 방문해서 한국 상황을 조사하고 싶다는 계획을 말했고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은 한국의 상황이 병역거부자들에게 다른 대안을 마련해주지 않고 감옥에 보내는 것은 넓은 의미의 자의적 구금에 속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빠른 시간 내에 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엔지오들과의 만남은 한국 참가단의 첫 활동이었던 간담회 개최를 출발로 각 단체별 개별 접촉을 통한 홍보와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만남을 가졌던 단체들 중 특히 종교단체들은 한국의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해서 보수 기독교계의 입장에 대해 매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다른 나라 정부 대표부와의 만남은 주로 결의안 내용과 관련하여 진행되었다. 이미 1998년 결의안이 잘 마련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관심은 앞으로 각 국에서 이 결의안에 따라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과 이러한 조치들을 인권위원회를 통해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2000년 결의에서는 각 국가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로 병역거부권 인정에 관한 좋은 실천사례 등을 모아서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했었지만 보고서를 제출한 국가는 별로 많지 않았다. 유엔 차원의 결의와 국내적 후속조처들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위치에서 엔지오들의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8차 유엔인권위원회 시작부터 강대국들의 분담금문제를 둘러싼 패권주의와 비정부기구에 대한 고의적 배제로 인한 마찰로 일정에 차질을 빚으면서 급기야 9번 의제 이후의 모든 회의에서 시간을 정해 놓고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엔지오들은 선착순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발언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어 한국 참가단의 민변을 비롯한 대다수의 엔지오들이 발언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신 인권위원회는 구두발제문을 서면으로 제출하고 그것을 유엔의 공식문서에 첨가하겠다는 결정을 하였다. 많은 엔지오들이 인권위원회의 이러한 결정에 항의하였고 9번 의제의 마지막 구두발언 기회를 얻은 팍스로마나(Pax Romana)는 "인권위원회의 이러한 자의적 룰에 의해 발언기회를 박탈당한 많은 엔지오들과 피해자들과 연대한다는 의미에서 팍스로마나도 구두발언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참가자들의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사실 3분 30초의 짧은 구두발언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엔인권위원회가 이렇게 엔지오들의 발언을 규제한 것은 인권위 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앞으로 인권위에서 엔지오들의 활동과 참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참가단은 모여서 간단한 평가와 뒷풀이를 가졌다. 구두발제를 못한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계획대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한국의 운동에서 유엔을 활용하는 활동은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고 그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나 아직까지 미비하고 조직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언어적인 문제, 국내 상황의 다급함의 문제, 국제기구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 못한 것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다. 해외의 엔지오들이 단순히 인권위원회 회기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국제기구의 활용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 우리의 활동은 즉자적인 접근으로 그치고 있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의 국제연대, 국제기구의 활용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 필자는 평화인권연대 CO모임 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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