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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눈물만 흘리진 않겠다"
여성마저 '자살폭탄' 공격 나선 팔레스타인의 절망ba.info/
 
지오리포트   기사입력  2002/03/22 [13:28]
{IMAGE1_LEFT}“ 우리는 더 이상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겠다. ”
팔레스타인 여성이 가슴에 폭탄을 품었다. 그리고 거리에 나섰다. 무자비한 이스라엘의 탄압에 맞서 여성마저 ‘자살 폭탄’ 공격의 대열에 몸을 던졌다.

“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된 아버지, 남편, 그리고 형제 자매를 위한 우리의 역할은 앞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기꺼이 우리의 몸을 폭탄으로 만들 것이다. ”

◀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투쟁 조직 '알 아크사'여단 내에 만들어진 여성 조직 '와파이드리스 그룹'의 한 조직원. 사진 출처: 요르단 신문 'The Star'  ⓒ The Star  

지난 2월 27일 다린 아부 에이샤(Darin Abu Eisheh)란 팔레스타인 여성이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군 검문소에서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하기 직전, 남긴 선언이다. 다린 아부 에이샤는 나블루스의 알 나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22세 여대생이었다.

최근 ‘여성 자살폭탄 전사(female suicide bombmer)’라는 ‘개념’ 이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저항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중동 지역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여성투쟁 조직 '와파 이드리스 그룹' 결성

{IMAGE2_RIGHT}아부 에이샤는 생전에 “ 나는 와파 이드리스가 갔던 길을 따라가기 위해 두번째 여성 자살폭탄 공격수가 되기로 결정했다 ”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부 에이샤가 그 뒤를 따르고 싶다고 한 또 다른 여성 와파 이드리스(Wafa Idris).
향후 세계사에서 여성 최초의 자살폭탄 전사로 기록될 ‘팔레스타인의 딸’이다.

▶ 와파 이드리스가 학사모를 쓰고 있는 사진을 들고 있는 어머니 와스피예 이드리스.  ⓒ BBC  

와파 이드리스는 지난 1월 27일 예루살렘 도심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그 테러로 이스라엘인 1명이 사망하고, 1백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와파 이드리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비상의료센터인 ‘붉은 초승달(Red Cresent)’에서 구호요원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28세 여성이었다.

와파 이드리스는 평소 팔레스타인 어린 아이들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살해되거나, 중상을 입고 의료센터에 실려오는 것을 보며 분노를 키워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스스로도 ‘붉은 초승달’에서 근무하던 중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고무총탄에 3차례나 맞고 부상하기도 했다.

와파 이드리스가 목숨을 던진 날 아침, 몇 시간 후면 닥칠 비극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여느 때처럼 출근하던 딸을 배웅한 어머니 와스피에 이드리스(Wasfiyeh Idris).
  
그는 슬픔을 누르며 자신의 딸이 자랑스러우며, ‘순교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딸’이라 불렀다.
한 때 딸이 봉기에 참여해 변이라도 당할까봐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만류했던 어머니였다.
와파 이드리스의 ‘자폭’이 있고 난 후, 팔레스타인의 무장조직 알 아크사 여단내에 ‘와파 아드리스 그룹’이라는 여성 투쟁조직이 만들어졌다. 눈물을 거두고 자신들을 ‘던지겠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군에 의해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가는 팔레스타인인.  ⓒ Friends of Al-Aqsa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유년 시절을 회상한 에세이집 <나의 나무 아래서>에는 ‘아이들의 싸움 방법’이란 주제의 글이 나온다.
겐자부로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옛날, 토지를 둘러싼 두 집안 사이의 목숨을 건 싸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그 중 한 집안의 열세살 난 아이가 칼을 차고 밤새 줄곧 집 주변을 순찰했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어린 겐자부로가 듣고 나서 아버지에게 말한다.
“열 세살인데 칼을 차고 밤새 줄곧 집 주변을 순찰했던 것은 용기있는 행동인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화답한다.
“ …네가 용감하지 않더라도 오히려 그게 당연한 거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의 싸움 방법이 있는 게 아닐까? 그 패거리들이 공격해 오면, 너는 아이니까 작은 구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으면 돼. 보면서 기억해두고 전체를 잊어버리지 않는 게, 그게 아이들이 싸우는 방법이야…”

'아이들의 싸움 방법'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출구 없는 절망
  
겐자부로는, 그리고 에세이 속 겐자부로의 아버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확한 의도를 짚어낼 수야 없겠지만,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폭력이 되물림 돼서는 안될 일이다, 폭력을 치유하는 처방이 또 다른 폭력일 수는 없다.
아이들이 함께 나서서 싸우는 것보다, ‘폭력’을 제대로 인식하고 기억하는 것만이 미래의 모든 폭력과 원한과 분쟁과 전쟁을 종식시키는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 구멍 난 벽을 통해 총을 조준하고 있는 이스라엘군.  ⓒ Friends of Al-Aqsa  

그래서 ‘아이들의 싸움 방법’이라는 대목이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울림을 팔레스타인에 적용하면 금새 가슴은 무거워진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손에 돌을 들고 거리에 나선 지 이미 오래다. 수 많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신들의 눈 앞에서 아버지가,어머니가,누나가, 형이 능욕당하고 살해되는 것을 보아 왔다. 전사로 키워졌다기보다, 미래의 전사가 되어 갔다.

겐자부로의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아이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을 만큼 팔레스타인의 절망과 분노는 극한에 다다른 것이다.
그 극한의 현실은 최근 들어 여성마저 가슴에 ‘자살 폭탄’ 을 품게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 집을 허물기 위해 달려오는 이스라엘의 불도저를 향해 오지 말라고 호소하는 팔레스타인 여인.  
ⓒ The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  


과연 그들에게 ‘과격’이란 멍에를 지울 수 있을까.
‘자살폭탄’ 테러 소식을 접했을 때, 팔레스타인의 절망적인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과격’의 이미지로만 팔레스타인인들을 떠올리는 건 도리가 아닐 듯하다.

이스라엘의 폭력이나, 팔레스타인의 폭력이나 폭력이긴 매한가지, 라는 식의 접근은 한가로운 ‘산술적 중립’일 수 있다.

1948년 이스라엘의 점령 이후 폭압적인 지배를 받아 온 팔레스타인. 누구든 가족 중 이스라엘군에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수 십년 전까지 거스를 필요도 없이 최근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진 실상을 되짚어 보자.

이스라엘군의 조준경에는 아이든,노인이든,여성이든...

특히 지난 8일, 11일, 12일 중무장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서, 그 3일 동안만 팔레스타인 인명을 최소한 88명이나 죽였다.
무장하지 않은 난민촌 양민을 공격하며 동원한 것은 아파치 헬기, 미사일, 로켓포, 탱크, 장갑차, 기관총…
‘학살’에 다름 아니었다. 여느 때처럼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한 보복이라는 구실을 내걸었다.
  

▲ 팔레스타인인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 겁을 주는 이스라엘 병사.  
ⓒ Friends of Al-Aqsa  


이스라엘군에 총격을 가하는 데 ‘사용’됐다는 이유로, 탱크와 불도저를 동원해 양민이 살고 있는 가옥을 아예 ‘밀어’ 버렸다. 15세 소녀가 그 밑에 깔려 죽었다. 탱크와 불도저로 마을을 뭉개버리는 건 이미 일상적인 ‘생활’이 돼 버렸다.

또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의 사무실에는 최소 35발의 미사일을 발사해 건물을 완전히 파괴했다.

이스라엘 경찰이 자살폭탄을 숨기고 있는지 조사한다며 팔레스타인 청년의 옷을 벗긴 후 즉결 처형하기도 했다.(그 장면은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걸핏하면 실시해 온 ‘통행금지’ 조치를 내린 후 테러범을 색출한다며 15 ~ 45세의 모든 남성들을 학교 등지에 집합시켜, 옷을 벗기고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리고 팔에 번호를 매기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에 비친 팔레스타인인들은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닌지 이미 오래된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조준경’에는 아이든, 노인이든, 여성이든 비켜나지 않았다.

'산술적 중립' 탈피해 국제사회 전체가 압박할 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안이 15개 회원국 표결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지난 12일.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암살, 과도한 무력 사용, 평범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일상적인 악행이 벌어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증오, 절망을 극한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분노에 찬 그 연설에서 아난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중동의 대학살’이라 이름 붙였다.

◀ 팔레스타인인들을 꿇어 앉히고 엎드리게 한 이스라엘군.  ⓒ Friends of Al-Aqsa  

이스라엘의 든든한 후원자 미국의 국무부마저 연례 인권보고서를 통해 “이스라엘이 전투 규정을 위반하고 힘을 남용했다”고 비판했다.
부시까지 나서서 “이스라엘이 최근에 하고 있는 행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례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물론 미국 정부 및 부시의 대응은 이라크 공격을 앞두고 중동국가들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 한낱 제스처일 뿐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늘 이스라엘 감싸기, 아니면 여론 무마용 제스처로 흐르기에 이-팔 간 휴전협정이 이루어진다 해도 일시적인 평온으로 끝나기 십상인 것이다. 지구촌 전체가 팔 걷고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제 국제 사회가 ‘산술적 중립’의 한가로움에서 벗어나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는 어느 한쪽을 감시하고 압박해야 할 때다. 이스라엘이다.

다시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손에 돌을 쥐고 거리에 나서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정조준되거나, 여성들이 가슴에 폭탄을 품고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 지난 14일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 이스라엘 병사가 탱크에서 기관총을 어딘가에 정조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정보를 전하는 The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는 그 표적이 팔레스타인 아이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 The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  



▲ 이스라엘군에 의해 폐허가 된 집터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 
 ⓒ The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  




이스라엘, 19일 " 팔레스타인 지구서 철군 완료" 발표  

이스라엘군은 19일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과 가자지구 북부 등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철수를 완료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보안 관리들은 이스라엘이 재점령했던 이들 두 곳에서 철수하기로 합의했다고 보안관리들이 밝혔다고 소식통들이 전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9일 밤 베들레헴 인근의 엘 카데르,아이다의 난민촌과 베이트 잘라 마을에서도 물러났다고 밝혔으나, 팔레스타인측은 요르단강 서안의 툴카렘 지역 등에 아직 병력이 남아 있다며 완전 철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종합>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 협약을 맺은 "지구촌을 여는 인터넷 신문 지오리포트 http://georeport.co.kr/ "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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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22 [13: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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