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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 토론회-‘다름’이 ‘틀림’으로 강요된 자리
 
정용욱(평화인권연대)   기사입력  2002/02/20 [12:24]
지난 2월 18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기독교회관 대강당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가 주최한 ‘종교적․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기독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공개적 토론회라는 점에서, 그동안 반대 입장이 주류를 이루던 기독교에 새로운 의견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큰 관심이 모아졌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날 토론회장은 시작 전부터 자리를 메운 200여명의 인파로 그 열기가 가득했다.

기독교 주최의 토론회답게 이날 토론은 목정평 공동의장인 나핵집 목사의 기도로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이들이 여러 인종, 종교, 이념 등의 차이로 갈등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남의 희생으로 살아가려는 현실은 많은 아픔과 고통을 낳고 있습니다... 모쪼록 이번 토론이 보다 나은 생명공동체 추구를 위한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비록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기도였다. 진정으로 기독교가 가져야 할 관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저도 제발 그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IMAGE2_LEFT}  이번 토론의 발제를 맡은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는 양심에 따른 병영거부권이 갖는 의미와 현행 징병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와 관련한 몇가지 쟁점을 짚었다. 특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는 특정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특정종교에 대한 국가권력의 부당한 박해와 차별을 중지하자는 것이라며 현재 병역거부자들에게 적용되는 차별적인 가석방 기준 등을 실례로 들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앞장서서 확대시킨 사람들은 오히려 기독교인들이었고 이는 기독교의 전통과도 같다고 밝히며 이 문제를 종교상의 정통과 이단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불교신자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씨가 발언을 이어갔다. 최근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판결로 현재 불구속 기소 상태에 있는 오태양씨는 기독교 역사에서 누누이 이어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와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박해 받고 목숨을 잃어간 사실이 자신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 역시 여호와의 증인들의 고통을 알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하면서 그들이 부처님처럼 보였다는 말을 하자 청중석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사람들이 수긍했다. 종교적 가치는 보편적인 측면에서 서로 통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는 그리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오태양씨의 심경고백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참석자들의 제안토론이 시작될 때 사회자인 KNCC 인권위원 임광빈 목사가 시간관계상 발언시간을 제한해 줄 것을 요구하자 국방대학원 김병렬 교수가 토론회의 공정성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이다. 김교수는 사회자가 찬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기를 요구하며, 사회자가 공정치 못하다면 반대자들이 들러리서는 모습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이날 토론회는 사회자인 임광빈 목사와 발제를 맡은 한홍구 교수를 제외하면 옹호하는 입장에 3명 부정적인 입장에 3명씩 섭외가 된 상태이다. 김교수가 문제 삼은 것은 발제 내용이 찬성측 입장만을 담았고 사회자 또한 찬성 입장이기 때문에(?) 반대측 입장이 수적으로 열세하다는 다분히 이분법적인 논리였다. 김교수는 만약 자신에게 발제 시간에 상응하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토론장을 나서겠다고까지 했다.

KNCC 국장인 임흥기 목사가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임목사는 “오늘 토론은 누가 많고 적고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실상을 듣고 이에 대한 여러 의견을 듣고자 하는 자리입니다”라고 밝히며 결론을 도출하기 보다는 단지 사회적 목소리를 듣고 공유지점을 찾아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인 최삼경 목사가 한마디 한다. “토론회는 반대자에게 여유로와야 합니다.”

사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에 대한 논의는 찬성과 반대 입장이 동일선상에서 출발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50여년간 한번도 도전받지 않아 온 징병제도에 대해 이제 겨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은 아직 사회적인 인식 자체도 부족한 실정이지만 이에 반대하는 한국사회 안보논리는 이미 견고하게 그 지반이 갖추어진 상태이다. 반대자에게 여유로울 것을 강조하면서 왜 소수자에게는 여유롭지 못한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분위기가 수습되고 토론회가 계속 이어졌다. 이날 반대측 참석자로는 김병렬 교수와 최삼경 목사 외에 군목(軍牧) 전역을 한 장병선 목사 등이 참석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우선 한국의 특수한 안보상황은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권리 보다 우선해서 사고해야할 문제이며, 군대에 대한 국민의식이 잘못된 것이지 한국의 징병제도와 군 복무 여건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체복무제도개선 요구는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것과 같고 강변했다.

특히 개인의 양심에 대한 인식차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자는 측에서는 개개인의 저마다 다른 양심을 일률적인 잣대로 판단하려 들기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사회 내에서 서로 상충하지 않는 합의점을 찾아가자는 데에 반해, 반대 측에서 ‘양심’을 이해하는 시각은 단 두 가지였다. 국가안보에 부합되는 양심인가, 아니면 성경에 따르는 양심인가.
장병선 목사의 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양심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양심의 기준은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이며, 이에 따르지 않는 양심은 옳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또한 한국의 교회와 군대간의 밀접한 공생관계를 엿볼 수 있는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

“한국 기독교는 군대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군대만큼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린 곳도 없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가 역사상 다른 어느 나라보다 급속하게 부흥한 것은 군대 덕분이다 ... 군대는 국민교육의 도장으로서 큰 역할을 해왔다. 군대가 없었다면 젊은이들이 참된 인생과 가치관을 배울 수 있었을까...”

이와 함께 최삼경 목사는 현재 언론에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감옥에 가는 것이 마치 기독교 때문인 것처럼 보도된다며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잘못된 진리에 목숨을 거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마치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양심과 인권을 철저하게 부정했다. 한마디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의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토론석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자 아들이 현재 병역거부로 감옥에 있는 양지운씨가 나와 있었다.

“이 토론회가 교리해석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더불어 살기 위한 논의를 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자식을 감옥에 보낸 부모로서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특혜나 면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양심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묵묵히 그 고통을 견디어 온 뒤 정부수립 후 50여년 동안 호소해 온 바이지만 늘 묵살 당해왔다. 정부는 최소한 일제와는 차별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며 착찹한 심경을 털어 놓았다.

한편 목정평 총무인 정진우 목사는 자신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이단이라며 비난만 해 온 것은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한 종교계에서 이 문제를 군대의 필요성이나 안보논리와 혼재해서 다루는 것은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며 교회가 이들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할 때 기독교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여러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이날 토론회는 어떠한 공유지점이나 합의 가능성도 찾지 못한 채 철옹성 같은 주류 논리만 거듭 재확인 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토론회 진행 자체가 한정된 시간 안에 각 분야의 입장만 나열한 식이어서 그리 생산적인 토론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 때문인지 토론회 말미에 이어진 질의 응답시간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이 인권의 문제라는 걸 인정하는지, 대만의 사례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지, 헌법의 이념이 국가가 우선인지 개인의 양심 보호가 우선인지 등등 정작 토론회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답변은 주로 반대측 토론자에게 요구됐다.

하지만 실낱 같은 기대도 잠시, 여전히 한국의 안보상황에서 대체복무제도 도입은 다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이며 이러한 인권문제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됐다.
특히 최삼경 목사에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을 지금처럼 계속 감옥에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묻자 최목사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들에게 전과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지켜보던 누군가가 답답했는지 정확하게 입장을 밝혀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현재 병역거부권에 대한 논의는 그 자체가 모순된 것이라고 말할 뿐 끝까지 확실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날 토론회에서 드러난 몇가지 문제로는 우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대측 참석자들은 현실 제도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어떠한 합리적인 대안도 찾으려는 자세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안보논리만 주장할 뿐이었다. 이는 한국사회가 근대국가의 기본적인 이념마저 무시된 채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성장한 사회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종교가 지녀야할 보편적이고 인류애적 차원의 시각은 온데 간데 없고 지나치게 정치적인 논리를 결부시키거나, 정통/이단의 이분법적 논리만으로 한정시킴으로써 결국 논의 자체가 차단되고 말았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안보논리와 종교적 배제논리는 법보다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던 자리였다.

한 사회를 유지하던 이데올로기가 구성원에게 질곡으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계속 유지하려 할 때 우리 사회에는 설득과 동의보다는 폭력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날 토론회에서 양지운씨가 한 아래의 말은 이 같은 안보논리와 종교적 이단논쟁에 대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신화에 보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로크루테스라는 산적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침대에 묶어 두고, 그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만큼 잘라서 죽이고, 키가 모자라면 잡아 늘려서 죽였습니다. 이처럼 다수의 생각을 고정시켜 놓고 그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면서까지 다수의 생각을 따르게 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프로크루테스 침대와 같은 사회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름’을 생각할 줄 아는 너그러움으로 현실적인 이유를 따지기 보다는 그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실천을 택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모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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