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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쇼크> 신세대와 구세대, 갈등커져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대한민국, 고령화 준비됐는가?
 
홍성관   기사입력  2003/12/22 [14:12]

출간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부동의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가운데 “황혼의 반란”이라는 단편을 보면, 사회로부터 배척 당한 노인들이 젊은이들이 만든 수용소 시스템에 저항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회는 사회보장의 적자가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에게서 나온다며 노인을 증오의 대상으로 내몰고, 심지어 레스토랑에 '70세이상 출입금지'라는 팻말까지 등장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

▲고령화 쇼크 ,박동석 외 지음     ©굿인포메이션
그러나 최근 출간된 <고령화 쇼크>(박동석 외 지음, 굿인포메이션 펴냄)는 이런 세상이 픽션이 아닌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팩트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노인세대와 젊은이들 세대간의 전쟁을 방불케 할 갈등의 도래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통상 UN이 정한 기준에 따라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이상인 사회를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 14%이상인 사회를 고령사회(Aged Society)라고 한다.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작년에 이미 7.9%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2019년이면 14.4%로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관련자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시한폭탄과도 같은 인구고령화의 진전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은 책임을 떠맡기를 꺼려하고 있다. 표심(票心) 때문이다. 올해 이와 관련해 정부가 한 일이라곤 가을에 대통령 직속으로 '인구·고령사회 대책팀'을 만든 것이 거의 전부일 정도로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고령화 사회. 대체 뭐가 문제일까? 서울경제신문의 기자인 세 명의 공동저자들은 친절하고도 어렵지 않게 문제점과 방안에 대해 짚어주고 있다. 책의 곳곳에 노고의 흔적이 엿보인다.

고령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일할 사람이 줄고 연금을 타는 사람이 느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과다하게 노인들을 부양하느라 등허리가 휘는 시대가 온다는 의미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인구구성의 불균형이 재정적자 증가→이자부담 상승→국채 증가 및 경제성장 둔화→재정적자 증가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경제를 파탄시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국제통화기금(IMF)도 30년 안에 우리나라가 재정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이런 재정적인 문제 외에도 형평성의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소득이 완전하게 노출된 샐러리맨과 소득파악이 잘 안 되는 자영업자들간의 형평성, 국민연금과 보다 후하게 설계된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과의 형평성에 대한 분쟁이 이미 가시화 되고 있다. 또 지역가입자 중 상당수가 연금 보혐료 납부예외나 미납상태로 남아 있어 노후 소득보장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이런 문제들은 결국 연금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사회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특히 세대 간, 빈부 간의 골은 심해질 전망이다.

저자들은 고령화 사회가 이외에도 높아지는 의료비로 인해 빈민으로 주저앉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직장으로부터 일찌감치 퇴출 당하는 사람들의 방황, 스님이 이장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초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농촌사회 등이 문제라고 짚고 있다.

저부담·고급여 연금구조 탈피해야

이에 대해서 저자들은 대책으로 정부가 고용창출에 힘쓰고, 특히 생산적 고령화 시스템을 구축할 것과 나이 차별을 없애 나이를 먹어도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연금개혁에 대해서는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저부담·고급여로 되어있는 현행 연금구조를 적정부담·적정급여로 바꾸는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그러면서 땜질식 처방 금물이며, 표를 인식한 정치인들의 퍼주기식 발언도 경계의 대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연금 수혜자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를 개선하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가 노인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문화공간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할 수 있는 시설을 보다 책임감 있게 맡을 것을 주장한다. 이를 위해 노인복지 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려 요양시설을 확대하고 전문인력을 키우는데 적극 나서야 하며, 무엇보다 노인복지를 외면하는 정책당국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젊은 세대를 늘리기 위해 출산장려계획을 확장하고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도 권하고 있다. 생산성 높은 다음세대를 길러내기 위해 교육정책의 혁신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정부가 친(親)이민정책을 펴야된다는 주장은 신선하면서도 일리가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경제적인 여유가 커지면서 노인층이 많아지는 것은 불가피한데, 출산을 장려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외국의 젊은 노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을 하는 것은 인구구조의 불균형을 메우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나이 들어 고향 찾아가면 그만큼 우리의 부담은 줄어든다는 논리는 외국의 젊은 노동자들 데려다 피 빨아먹고 내뱉는 느낌이 들어 불편한 심기가 생기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의 배타적인 이민정책은 시정될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노심(老心)을 잡아라

저자들은 기업들에게 앞으로의 구매력과 소비패턴의 주역은 노인층이 될 것이라며 실버마켓을 주시하라고 충고한다. 또 개인들에겐 행복한 노년을 위한 준비를 젊어서부터 철저히 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을 인식해야 하며,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늙으면 돈이 효자라는 지적은 왠지 씁쓸하지만 현재의 세태를 잘 반영해주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과학·공학전문가 집단의 고령화가 젊은 학생들의 이공계 대학 기피현상과 맞물려 이후 첨단기술인력 공백상태로 이어질 우려도 있음도 저자들의 좋은 지적이다. 가뜩이나 기업, 공장들의 해외이전이 늘어나고 있어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점쳐지고 있는 시기에 이점은 크게 염려되는 부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교평준화를 폐지하고, 교육에 경쟁의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리더형 인간을 육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모든 이들이 리더가 될 수는 없을 터이고, 그 선별에서 탈락된 다수는 다시 결국 사회적 소외층이 되고 만다는 것을 저자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가가 초점

평균수명이 높아진다는 것을 해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노년이 되어서도 열심히 일을 하면서 보람있게 사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저자들의 우려와 같이 일할 사람이 줄어들어 나라가 가난에 쪼들리게 될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현재 서구의 선진국들의 사례에서 볼 때, 저자들의 우려는 어느정도는 타당해 보인다.

다만 저자들의 우려 가운데, 본 기자가 우려되는 점은 연금제도 등의 개혁에서 정작 가난한 노동자들이 소외당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개혁이 누구를 위한 개혁이 아닌, 수지를 맞추기 위한 개혁이라면, 그 와중에 오히려 선의의 피해를 보는 계층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정부의 위정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허기야 이들에게는 그보다 너무 안일하고 낙관적으로만 전망하는 것이 더 큰 일이다. 그런 식으로 현 세대의 부담을 뒷 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은 분명 할 짓이 아니다. 이들에게는 '황혼의 반란'에 나오는 한 구절을 들려줘야겠다.

"낙관론자들이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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