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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배신의 사면
[변상욱의 기자수첩] 특별사면, 나라 살리기 아니면 대통령 살리기?
 
변상욱   기사입력  2015/07/18 [01:08]

고품격 뉴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CBS <박재홍의 뉴스쇼> '변상욱의 기자수첩'에서 사회 현상들의 이면과 서로 얽힌 매듭을 변상욱 대기자가 풀어낸다. [편집자 주]

 
박근혜 대통령의 8.15 특별사면과 비리 기업인 포함 여부를 놓고 이런 저런 추측들이 오간다.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사면권이다. 자칫 민주주의가 채택하고 있는 3권 분립과 국가 법질서를 흔들 수 있을 만큼 민감하고 위험하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들은 사면에 대해 상당히 제한적이다. 정치적 사면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공직비리자는 아예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사면은 법적 오류나 시대적 모순에 의해 억울함에 처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국가적 시정조치로 제한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면권을 발휘하면 국민은 은연 중 대통령을 거대한 권력으로 받아들인다. 군사 쿠데타 이후 일반사면이 대폭 추진된 배경도 그러하다. 박정희 정권은 3년 사이에 일반사면만 4번을 거듭 시행하며 은전도 베풀고 권위도 과시했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 직후 비리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숙정도 했지만 일반사면으로 대거 풀어주기도 했다. 군사정변과 유혈진압으로 정통성이 미약하니 공직 사회에 대한 강한 통제와 회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숙정과 사면으로 공직사회를 정권의 비위에 맞는 인물들로 재편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하겠다.
 
◇ 특별사면, 나라 살리기 아니면 대통령 살리기?


우리의 모든 사면은 정치적이다. 어느 정권이나 국민화합 및 사회통합, 경제살리기를 위해 사면한다고 명분을 내걸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일반사면은 국가적 격변기에 시행된다. 해방 직후, 쿠데다 집권 후, 문민정권 등장 후 일반 사면이 대대적으로 시행된 것이 사면의 정치적 성격을 보여준다.
 
2003년 이후 사면은 모두가 특별사면이다. 특별사면은 크게 3가지 성격을 띤다. 지난 정권 시절 비리인사들을 풀어주며 체제 지지기반을 넓히는 타협형 특별사면, 자기 사람 자기가 직접 사면해 주면서 친위체제를 구축하는 셀프 사면, 그리고 끼워팔기 사면 등이다.
 
타협형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권 하에서 가장 극적이었다. 군부독재 청산을 외치며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처벌했고 그 아래 수하들도 모두 감옥에 보냈으나 임기 종료 직전 모두 풀어준다.
 
노무현 정권 때도 김대중 정권의 핵심인물인 박지원, 임동원,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김홍업 씨를 사면했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 씨를 사면 조치한 바 있고, 노태우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 씨를 특별사면 했다.
 
셀프사면은 이명박 정권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멘토라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김효재 정무수석비서관, 형님 이상득 의원 등등. 노무현 정권 때도 셀프사면이 등장해 재정적 후원자인 강금원 회장, 최측근 안희정, 여택수, 신계륜, 최도술 등이 사면됐다.
 
좀 특별한 형태인 끼워 팔기 특사도 살펴보자. 김영삼 정권 때 슬롯머신 비리, 율곡사업 비리 당사자들, 그리고 비리 경제인 70여명이 사면됐는데 장기수 김선명 씨 등 양심수 27명이 석방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권에서도 민주화운동 양심수와 고령의 미전향 장기수 17명이 석방되는 대신 비리경제인 122명이 사면됐다. 정치적으로 목표한 사면을 가리기 위해 다른 사면에 끼어 넣거나 다른 사면을 기획해 끼어 넣는 형태이다.
 
경제인들은 어느 정권에서나 특별사면 대상이 됐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절정을 이뤘다. 정몽구, 김승연, 최태원 등 그룹 총수와 핵심인물 74명에게 한꺼번에 무더기로 특전을 베풀었다. 그 후 이건희 회장을 단독사면해 원포인트 특급 사면이라 부르는 신기록도 남겼다. 주변의 만류를 무시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자도 기가 막혀 "이는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 권한 남용이며 국민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난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며 맞섰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고유권한이긴 하지만 대통령 마음대로 하라고 준 게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 대통령의 배신의 계산서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특별사면에 자신의 거듭된 공약을 깨고 기업총수들을 대거 포함시킨다면 그건 무슨 까닭일까?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라는 건 뻔한 핑계이다. 국민통합이 비리기업인 사면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정책 성과와 진정성, 소통과 설득으로 이뤄진다.
 
더구나 최근 잡아 가두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인권운동가들과 세월호 집회에 참가한 시민·노동자들, 부당한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외치는 농성자들,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줄줄이 잡혀 들어가고 있다. 국민통합은 정략적 이유로 풀어주어 이루는 게 아니라 포용력으로 인신구속을 자제해 이뤄야 할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경제인 특별사면이 이뤄진다면 경제 살리기에 방점이 찍혀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지금껏 창조경제는 모호하고, 경제살리기는 진척이 없고, 일자리 창출도 되는 게 없다. 결국 재벌 총수들을 풀어주고 해당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끌어내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는 쪽으로 협조를 이끌어내려는 방책으로 써먹을 공산이 크다. 특히 자신의 공약을 뒤집는 이런 사면은 선거가 없는 해를 골라야 손실이 적다. 형평 무시하고 사면 남발했다는 공격으로 득표전략에 차질이 생기면 곤란하니 그렇다.
 
기업경제인 특별사면은 다른 말로는 재벌총수 구하기이다. 재벌 총수가 석방되면 경제가 살아나는 걸까? 물론 재벌 총수가 옥중 결재를 하는 상황에서 기업의 주요 투자 결정이 둔탁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런 총수지배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옳지 비리경제인을 감옥에서 돈의 힘으로 꺼내는 게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특별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경제인 일부는 가중처벌자들이다. 기업에 손실을 끼치고 국가경제 질서를 어지럽힌 사람들을 경제를 위해 사면한다는 모순은 설명이 어렵다. 국가경제 차원에서 비중이 크기에 사면 대상이라면 우리 사회는 법을 뛰어넘는 특권계급의 존재를 인정하는 셈이다.
 
형평에 어긋나는 특별사면은 없다며 다수 유권자의 표를 구한 박 대통령이 경제인에 대한 특례를 남긴다면, 그러면서 민주사회를 향한 외침들을 잡아가둔다면 그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이 독하게 비난한 '배신의 정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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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18 [01: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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