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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판매상, '세준 아빠'의 다른 얼굴
[정문순 칼럼] 사드 배치 등 리퍼트 대사의 피습에 가려진 것들
 
정문순

구한말 아관파천을 주도한 인물인 주한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친숙한 이름이다. 지금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면 그의 사망 연대가 나오긴 하지만 오래 전만 해도 그가 러시아에 돌아간 뒤의 행적이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봤을 때는 죽은 시점도 미상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이는 한국에 부임하여 외교를 주물렀던 인물이라도 우리 역사에서만 중요하게 칠 뿐 자국이나 국제적으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역대 주한 미국 대사 중에서도 존재감이 두드러진 인물이 몇이나 될까. 세계 속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변변찮은 국격 때문인지 우리가 미국에 보내는 대사와, 우리나라에 부임하는 미국 대사들의 급은 아주 다르게 느껴진다. 역대 미국 대사 중 한국말을 구사할 줄 아는 이는 캐슬린 스티븐스가 유일할 정도였다. 저 1980년대에 미국대사관이나 미문화원 건물은 미국 패권주의의 상징으로서 반미를 부르짖는 대학생들에게 응징의 대상이자 단골 시위 장소였지만 정작 그 안에 있었던 대사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없다.
 
물론 한국을 거쳐 간 대사들 중 우리 뇌리에 자취를 남긴 이들도 없지는 않다. 전임 대사들인 캐슬린 스티븐스나 성 김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은 사적으로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에 유명해진 경우다. 특히 성 김 대사의 경우 본연의 역할보다 아버지와 한국 정치와의 악연, 그리고 그 자신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의 인연이라는 엉뚱한 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김기종 씨의 마크 리퍼트 대사 습격 사건의 경우 처음에는 김 씨가 별 힘도 없는 미국 대사, 인기도 없을 것 같고 군사적 긴장이 감도는 극동의 나라에 마지못해 임명되어 온 듯한 외교 사절에게 왜 위해를 가했을까 싶었다. 김 씨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더니 기껏해야 행정 관료일 뿐인 미국 대사를 목표물로 삼은 그의 판단력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김 씨가 리퍼트 대사를 어떻게 생각했든 리퍼트 대사는 행정가로 분류되는 그동안의 미국 대사들과는 좀 다른 유형의 인물이다. 리퍼트 대사는 전 세계에 나가있는 미국의 여러 대사들, 일반적으로 외교통이나 직업적인 외교 공무원으로 생각되는 인물 유형과는 차이가 있다. 그가 오바마 대통령의 오른팔인 것은 부임 직전과 피습 직후 언론 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드(THAAD)의 강력한 옹호자라는 것은 알려져 있을까. 행정 관료와 무기 판매를 곧바로 연결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는 미국 정가에서 외교, 안보, 군사전략을 넘나들었던 인물이다. 그는 이라크에서 직업군인으로도 복무했으니 한미연합사 간부로 부임해 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인사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에 부임하기 직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비서실장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해 만41세였던 그를 역대 최연소 주한 미국 대사에 전격적으로 임명한 것은 한반도에 사드 배치를 압박하기 위해 군사전략통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리퍼트 대사가 한국에 부임한 후 한국 정치권과 가진 첫 일정도 여야 정치인들에게 사드 도입을 요청한 것이었다. 그가 사드가 대중국 봉쇄용이 아니라 단순히 방어용일 뿐이라고 한 것도 미국이 그동안 해온 주장의 반복이었다.
 
물론 리퍼트 대사가 사드의 전도사라는 것이 김 씨가 피습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김 씨의 도발은 한국인들에게 해서는 안될 오만방자한 말을 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망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공산이 크다. 김 씨가 셔먼에게서는 분노를 느끼고, 그 분노의 표출은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 사절에게 한 듯하다. 그러나 일본 침략에 저항하는 한국의 민족주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폄하함으로써 일본 우익의 편을 든 웬디 셔먼이든 궁극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려는 리퍼트든, 동맹 관계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키우고 한국을 종속 파트너로 삼으려는 미국의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 목표와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역할은 미국의 군사적 목표에서 각자의 역할 분담에 해당하는 것이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 사건을 이유로 한반도의 평화를 해칠 수 있는 무기를 사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그의 본바탕이 가려져서는 안된다. 범죄자를 옹호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범인이 왜 하필 지금, 왜 그렇게 했는지 짚어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를 쏙 빼놓고서 김 씨의 행동을 정신이상자의 일탈 아니면 종북주의자의 극한 행동쯤으로 모는 건 전혀 합리적인 태도가 아니다.
 
항간에서 리퍼트 대사를 ‘세준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떨치기 힘들다. 한국을 사랑했는데도 죄 없이 습격을 당한 외교 사절은 그 자신 또는 자국의 안보야 어떻든 미국의 국익에 놀아나고 싶어하는 국내 보수세력이 원하는 리퍼트 대사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그는 친한파가 아니며 당연하게도 철저히 자기 나라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 공무원일 뿐이다. 그는 한국에 놀러왔거나 한국과 미국이 친하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놓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피습 직후의 의연한 처신이나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이 더 좋아졌다며 호감을 표하는 그의 태도는 미국 국익의 관철이라는 그의 본래 임무와는 별개의 것이다. 혼동해서는 안된다. 자기 나라한테 이익만 된다면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든 전쟁이 터지든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신세가 되든 그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김 씨의 행동을 촉발시킨 것으로 짐작되는 미국 관료의 망언과, 리퍼트의 진짜 역할이 묻혀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런 기회가 두 번 다시없다는 듯이 리퍼트 대사의 피습을 사드 배치 추진을 위한 천우신조의 기회로 삼으며 여권과 보수 세력이 노골적인 속셈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본말이 완전히 뒤집힌 것이다. 미국 대사가 겪은 재난이 미국과 국내 보수 세력으로서는 골치 아픈 사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비용이라고 좋아할 일로 귀결돼서는 안될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로 [한국문학의 거짓말-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작가와 비평, 2011)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5/03/16 [18:3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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