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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도에 들꽃이 된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여성독립운동가 시선으로 조명
 
김철관
▲ 표지     © 얼레빗
지난해 6월 광복 66주년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 20인을 선정해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1>을 펴낸 한꽃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시인이 또다시 여성독립운동가 20인을 발굴해 <서간도에 들꽃 피다 2>(얼레빗, 2012년 2월)를 펴냈다.

시집은 1집에 이어 어두운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온몸을 던져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기막히고 처절했던 삶들을 시와 글로 표현했다.

독립운동이 강인한 남성들의 몫으로만 알고 거들떠보지 않았던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냉정한 시선으로 접근했다고나할까. 이국의 척박한 땅에서 광복을 위해 혼혈을 쏟다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고인이 된 여성독립운동가들도 내밀하게 조명했다.

큰칼 찬 왜놈이 붉으락푸르락 호령했지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감옥을 선택한 마산의 자존심 김두석 애국지사,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했던 김마리아 애국지사 조명을 필두로 시와 글이 전개된다.

김순애 애국지사는 일제 강점기 태극기 제작 배포, 부녀자 계몽, 독립운동 자금모금 등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임시정부 국무위원 김규식 애국지사의 아내이기도하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해 세계만방의 조선 독립의지를 확인시킨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애국지사는 김 의사가 폭탄 투척을 결행할 때 거사에 필요한 권총을 감춰주고 무기를 전달하는 등 적극적으로 의거를 도왔다.

3.1운동의 이끈 유관순이 있었다면 북에는 동풍신 애국지사가 있었다. 그는 함경북도 하기면 화대동에서 기미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때 아버지가 일본 경찰의 무차별사격으로 순국했고, 분개한 동풍신은 시위대와 함께 일제 만행에 항거해 싸웠다. 하지만 체포돼 서대문형무소로 이감 와 17살의 꽃나이로 옥중에서 순국했다. 같은 나이인 남쪽의 유관순 열사와 견줄만한 인물 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온몸을 바쳐 독립운동에 매진한 동풍신 애국지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남북한 분단에 의한 정치적 입김에다, 역사 기록이 남성위주의 편향성 때문이었다.

역사학자 신채호의 아내 박자혜 애국지사는 어린 시절 궁궐에 들어가 10여 년간 궁녀로 살았다. 1919년 기미 독립 만세운동으로 부상을 당한 사람들을 죽을힘을 다해 간호한 장본인이다. 일본 동양척사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를 도운 사람도 박자혜 애국지사이다. 박 애국지사가 1936년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남편 신채호 선생의 호적에 오르지 못한 기막힌 사연도 전해지고 있다. 신채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황국시민이 될 수 없다’며 호적을 거부해 무국적자가 된 독립 운동가였다. 73년 만인 2009년 법이 개정돼 호적은 돼 찾아만 법적으로 부인이 존재하지 않아 아직까지 부부라는 사실을 국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는 부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신채호 선생과 박자혜 애국지사의 결혼 사실은 보훈처 공훈 전자사료관에서는 인정하고 있다. 현재 신채호 선생 부부는 고향인 충북 청원군 선산에 합장돼 있다.

대한민국 법에 혼인증명서를 제출해야만 혼인이 성립되는 조항 때문에 박 애국지사가 아직까지 신채호 선생의 아내라는 것을 인정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이 가슴을 저민다. 법 이전에 보편 타당한 상식의 문제인데도 말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운동가들의 문제이니만큼 전적으로 정부가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시정부 의정원(국회의원) 홍일점 방순희 애국지사는 임시정부를 도우면서 항일독립투쟁을 위해 애국부인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안성기생조합 기생 신분으로 기미 독립만세운동에 앞장선 변매화 애국지사를 생각하면 그 때 어절 수 없이 친일을 했다는 친일파들의 궤변들이 언뜻 떠오른다. 제주 해녀로서 독립운동을 한 부춘화 애국지사는 연약한 여성으로서 특히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해녀로서 악독한 일제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나 항일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용인의 열여섯 여자광복군 오희영 애국지사는 왜적의 점령지구를 돌파한 강인한 여장부였다. <서간도에 들꽃 피다 1>집에서 소개한 오희옥(생존) 애국지사의 언니이기도하다. 오희영 애국지사는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 아버지 오광선 장군 등 가족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집안이다.

이화학당을 졸업한 이애라 애국지사는 독립운동 재정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인물이다. 독립운동가 이규갑 애국지사의 아내로 남편 뒷바라지를 했고 이로 인해 일본 형사들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후유증으로 스물일곱의 나이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순국했다.

이은숙 애국지사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아내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이 되던 해까지 민주로 망명해 남편의 독립운동을 내조하면서도 독립자금을 마련하느라 모진 고생을 했다. 특히 이 애국지사의 남편 이회영(넷째) 선생은 6형제 40여명의 가족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해 전 세계 유례없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이회영 선생의 6형제 중 다섯째인 이시영 선생만이 유일하게 살아 귀국했다. 현재 정치인 이종찬과 이종걸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생전 눈물을 딱 한번 흘렸는데, 독립운동가 일송 김동삼 선생의 장례식이었다. 바로 김동산 선생의 며느리가 이해동 애국지사이다. 이 애국지사도 독립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한 것만은 분명하다. 전해지는 말은 많지만 1910년대 서간도에서 여성문제에 관해 써놓은 자료가 별로 없다. 당시가 남성중심의 사회이다 보니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기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지 못했다.

보훈처에 자료에 의하면 국가로부터 훈․포장을 받은 1만2000여명의 남성과 견주면 훈․포장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는 2011년 6월 기준으로 204명에 불과하다. 여성독립운동가의 기록이 없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봉창, 윤봉길, 이화림은 김구 선생이 만든 한인애국단 핵심 3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봉창과 윤봉길은 잘 알려져 있으나 여성인 이화림 애국지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이화림 애국지사는 1930년 상해로 건너가 사격과 무술을 배웠고, 일본군 밀사들을 유인해 죽이는 등 여성으로서 맹활약을 했다. 특히 이봉창 의사가 동경에서 던진 수류탄은 이화림이 상해에서 만들어 다리 사이에 채워준 주머니에 담아간 것이었다. 윤봉길의사 상해 의거 당시에도 김구 선생의 지시로 윤 의사와 위장 결혼해 함께 미리 현장에 가 상황을 파악해 두었고, 거사 당일 두 사람은 김구 선생 앞에서 선서를 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장으로 떠나기 전 김구 선생이 ‘두 사람을 모두를 잃을 수 없다’고 말해 윤봉길 의사만이 혼자 거사를 거행하게 됐다.

바로 김구 선생이 만든 한인 애국단의 핵심은 윤봉길과 이봉창 그리고 이화림이었다. 이화림 애국지사를 그리며 저자 이윤옥 시인은 아래와 같은 시를 시집 속에 남겼다.

이화림

화려한 불빛 속 상하이의 밤
서러운 이방인 삼삼오오 모여 이룬 숲
서둘러 국권회복의 길 암중모색 중이네

일본 사쿠라다몽으로 떠나는
이봉창 가슴에 안겨 중 폭탄
불발로 품은 뜻 이루지 못했어도
혼비백산한 히로히토 화들짝 놀라
그날 밤 이불에 오줌 지렸을 게다

석달 뒤 상하이홍구 공원
물샐틈없는 수비 뚫고
단번에 날린 윤봉길의 도시락폭탄도
여장부 이화림이 도운 거였어라

태항산 거친 삼림 속 마다치 않고
조선의용대 끌어안고 부르던 노래
아리랑 피 끓는 함성 속에
절절이 묻어나던 조국해방의 염원

돌미나리 민들레 수양버들 잎사귀로
배 채우며 쟁취한 광복
고국은 그 이름 잊었어도
그 이름 천추에 길이길이 남으리.

차미리사(김미리사) 애국지사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을 위해서는 민족교육 운동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실천에 옮긴 인물이다. 특히 여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활동했다. 사실 그는 차미리사(車美理士)로 활동하지 않았다. 김미리사(金美理士)라는 이름으로 대부분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의 본성은 연안 차씨이다. 당시 여자로 태어난 이유로 소위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관습에 의지해 본성을 떼어버리고 남편인 김씨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금전상거래와 증명문서에는 차미리사로 썼다고 알려졌다. 미리사는 교회 습관에 의지해 쓴 이름이다. 현재로 풀이하면 세례명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심훈의 상록수는 안산 샘골 처녀 최용신 애국지사를 모델로 해 쓴 책이다. 최용신 애국지사는 피폐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그가 죽은 뒤 <동아일보> 농촌계몽소설 현상공모에서 심훈이 이를 토대로 상록수(常綠樹)를 써 당선돼 소설 속의 실존인물 최용신 애국지사가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됐다.

하지만 당시 상록수의 배경인 안산 샘골 동네 사람들은 소설을 읽고 분개했다. 최 애국지사의 생애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은 재밌게 만들기 위해 쓴 글이고 모델이 있다고 해도 사실그대로 쓰지 않는 다는 것을 안 주민들이 이해를 하게 됐다.

최은희 애국지사는 한국 최초 여기자이며 전파에 목소리를 싣고 민간인 최초로 서울 상공을 난 여성이다. 경성여자보통학교를 다니다 3.1운동을 맞아 전체 학생을 파고다로 인솔해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세상을 뜨기 2년 전 모든 재산을 정리해 <조선일보>에 5000만원을 맡겨 ‘한국여기자상’이 제정됐다.

하란사 애국지사는 독립을 위해 덕수궁에 드나들며 고종과 엄비의 자문을 따랐던 인물이다. 고종은 하란사에게 궁중 패물을 군자금으로 주어 의친왕과 함께 나라 밖 일을 시작하도록 계획했다. 또한 한일의정서, 협약, 합병조약 등의 원문과 외국 의원들에게 보낼 호소문을 작성해 하란사로 하여금 파리강화회의에 보내 윌슨 대통령에게 호소하려 했으나 1919년 1월 고종이 갑자기 승하하는 바람에 무산이 됐다.

한국 최초의 자비 유학생으로 알려진 하란사는 이화학당 문을 두 번 두드렸으나 기혼 여성으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직접 이화학당 프라이 학장을 찾아가 앞에서 촛불을 훅하고 끄면서 “우리가 캄캄한 게 이 등불이 꺼진 것과 같으니 우리에게 밝은 학문의 빛을 열어 주오”라고 애원해 입학한 당찬 여성이기도 했다.

허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국무령(대통령)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 며느리이다. 허 애국지사는 독립군들에게 밥을 지어주고 옷을 지어 공급했으며, 만주 허허벌판에서 풍찬노숙 속에 식구를 보듬어야했다.

황애시덕 애국지사는 일본 2.8독립선언에 참여 했다가 주동학생으로 경찰에 잡혔고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된 가운데 3월 19일 일본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애국부인회를 확대 재조직하고 총무직을 맡아 독립 운동을 이어갔다. 황애시덕 애국지사는 황에스터라는 세례명으로도 활동했다. 한자로는 예수다(禮須多) 또는 애시덕(愛施德),애덕(愛德)으로도 불렀다.

▲ 저자 이윤옥 시인     © 얼레빗
이렇게 이 시집은 20명의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해 시와 글로 자세히 소개했다. 저자 이윤옥 시인은 “말 없는 많은 여성독립군들이 역사책 어느 한 줄에서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서 “여성들이 독립운동 역사의 조명에서 비켜나 있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시집 서문에서도 “이해동 애국지사와 허은, 이은숙, 이화림, 변매화 등 애국지사는 누구보다 열심히 조국의 광복에 헌신했지만 국가로부터 훈․포장을 받지 못했다“면서 “여성독립운동가가 많은데도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도 한목 작용했다”고 피력했다.

저자 한꽃 이윤옥 시인은 한국외대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일본와세다대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일문화어울림소장,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문학세계> 시 부문으로 등단해 현재 문학세계문인회 정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잇다. 친일문학인 풍자시집 <사쿠라 불나방>과 항일 여성독립운동가를 다룬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1>, 우리말속 일본 찌꺼기를 시원하게 풀이한 <사쿠라 훈민정음>, 일본 속 한국문화 유적지를 파헤친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 등의 저서가 있다.
기사입력: 2012/02/28 [00:47]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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