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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독감 8] 일상의 냄새, 혹은 그것의 지독함
 
두부   기사입력  2002/05/06 [16:28]
일상은 어떤 냄새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는, 일상의 우리는, 콘크리트의 각박한 일상을 살아내는 우리는 그 냄새를 알지 못한다, 혹은 냄새 맡지 못한다. 그 일상의 힘이 관성을 얻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데도 말이다.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인가?

익숙한 일상이기에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그 일상을 우리가 들여다보았을 때, 혹은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았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일상을 보는 것 같아 잠시 동안 의식의 정전 상태를 맞게 될 것이다. 혹여 넝마주이에 이끌려가는 헌 옷이나 빈 상자들처럼 일상이라는 낚시바늘에 우리는 단지 끌려다니는 몹쓸 대상이지 않은가? 그러니 일상은 찬란하다 혹은 무참(無慘)하다.

가난한 일상은 어떤 냄새일까?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
오장육부가 오랜 세월
썩어들어가는 냄새
고무마개를 하고 돌덩이를 얹어도
치받고 새어나와 진동하는 냄새
옷에도 밴 냄새 얼굴만 봐도 알 냄새
바람도 씻어주지 못하는 냄새
머리 아픈 냄새 아니, 마음 아픈 냄새
가난의 냄새

황인숙 <냄새> 전문


일상의 냄새는 썩어들어가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냄새다. 어느 것도 씻어주지 못하는 마음 아픈 냄새다. 아무리 유한낙스를 풀어 청소해도 어느 구석에 잠재해 있다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가난한 일상은 지독한 냄새를 동반하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소박한 개망초 같은 일상

{IMAGE2_LEFT}들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을 총칭하여 들꽃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소소한 일상의 것들이 모여 ‘삶’이라는 큰 틀을 형성하고 있다. 윤성희의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에는 구체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 있다. ‘개지 않은 이불에서 쾨쾨한 땀냄새가 났다.<터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방이라 그런지 쾨쾨한 곰팡이 내<모자>’가 나고, ‘겨우내 덮었던 이불을 꺼내 어금니로 실 한 가닥을 잡아당기자, 실이 끊어지면서 입술 끄트머리를 스친다. 혓바닥으로 입술의 피를 핥자 녹슨 쇠 냄새가 난다. 홑청을 벗겨내자 이불에서 죽은 바퀴벌레 한 마리가 떨어진다.<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 등.

더군다나 <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에서 주인공은 타인의 기념일을 일일이 알려주는 ‘기념일 서비스’ 일을 하고 있다. 결혼 기념일, 생일, 시아버지 제삿날, 첫 만남일, 어머니 생신, 첫 키스한 날, 첫 여행한 날.

인간이 기억하려고 하는 ‘날’들은 많지만 그러한 날들을 기억하기는 어렵게만 되었다. 어느새 일상을 잊어버릴 만큼 세상은 복잡하고 각박하고 구획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윤성희의 일상은 작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오줌을 눈다. 신을 신지 않아, 발등에 오줌이 튄다. 발이 따뜻해진다. 나는 고개를 들어 변기를 쳐다<당신의 수첩에 적혀 있는 기념일>’보는 주인공은 우리와 동일한 인물이다.

외로운 것은 사람이다

박형준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를 보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혼자 밥을 먹다가/가만히 맞은편에 숟가락 한 벌을/올려놓고서/창문 너머로 훔쳐<城에서3>’본다. 또한 그는 ‘혼자 사는 남자가/빨래를 걷으려고/베란다로<길>’ 간다. 그의 ‘잠은 대개 그렇다/악몽조차도 달콤한 슬픔과 함께<독신자>’ 온다. 그만이 외롭다. 그만이 베란다에 가고 악몽을 꾼다.

타인과의 소통을 없을 때 우리의 일상은 저와 같으리라. 결국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쓸쓸하고 외롭다. 그는 이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빗자루로 방바닥을 쓸어내도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시인은 ‘어머니의 지문이 다 닳아서/우리 둘 외의 다른 머리칼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한 달에 한 번 다녀가실 때마다/못난 자식을 두고 가는 슬픔이/방바닥에 떨어지는 것<방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라고 자조(自照) 섞인 말로 읊조린다.

극악한 극빈(極貧)

극빈
극광 같은 극빈
國賓 같은 극빈 극미한
절세가인의 효빈 같은
극빈
쾌락의 극치, 극, 극
태극, 태극 같은 극빈

김영승 시집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극빈> 1연


김영승은 극빈하다. 하지만 시인은 ‘코 묻은 돈을 갖고 소꿉장난 같은 삶을/살고 있지만 나의 삶은 역사상/그 유례가 전혀 없는 전무후무한/특수한 삶 그러므로//영광도 없지만/치욕도 없다<가엾은 아내>’라고 堂堂하게 말한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은행 통장을 개설한 날 시인은 ‘서울신탁은행 귀신’이 있다고 신기해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서울신탁은행 지점을 보고 반가워한다.

이곳 임대아파트로 이사온 지 내일이면 꼭 1년
175,300원 그 임대료가 벌써
두 달째 밀렸네
말렸네 나를 말렸네 피를
말렸네, 극빈
극빈
무소유보다 찬란한 극빈

김영승 시집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 <극빈> 2연


가진 것이 없는, 그래서 무소유보다 찬란한 극빈. 가난한 것도 아닌 ‘極’빈이라니! 시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시인이 소유하고 있는 건 단지 ‘극빈’뿐이다. 김영승 시인에게 ‘극빈’은 일상이다. 그 일상을 사랑하기에 김영승 ‘시인’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상은 지독하다. 우리가 일상을 버리지도 가만히 둘 수도 없는 이유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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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5/06 [16: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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