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에 대한 평가 특히나 현대 인물에 대한 평가는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극단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7월 19일은 몽양 여운형의 64주기이고, 우남 이승만의 46주기이다. 매년 같은 날 우이동 몽양 여운형의 무덤과 국립현충원 우남 이승만의 무덤에서 각각 추모행사를 한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방법이나 행적이 너무 달랐던 몽양과 우남. 광복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완전한 통일독립국가를 원했던 몽양과 일단 가능한 지역만의 정부를 수립하자며 남한 단독정부를 주장했던 우남. 김규식과 함께 좌우합작운동을 하는 한편 북의 김일성을 만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던 몽양은 결국 반민족세력에 의해 암살당하였고, 우남 이승만은 남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당시의 승리자는 우남이었고, 패배자는 몽양이었다.
그후 우남은 여러차례 불법을 자행하면서 권좌를 유지하였으나, 부정부패가 절정에 이른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로 인해 일어난 4.19 혁명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그동안 역대정권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이름을 이야기하기조차 어려웠던 몽양과 초대 대통령이기 때문에 막연히 추앙해야 할 대상으로만 알았던 우남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여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되었다.
독립운동 시기 권력을 쥐기 위해 독립운동단체를 분열시키고, 대통령의 권좌에서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우남 이승만과 목숨을 걸고 적의 심장부 동경에서 대한의 독립을 역설하고, 행방 정국에서 여러 차례 테러를 당하면서도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매진하다 끝내 흉탄에 쓰러진 몽양 여운형.
역사는 이제 몽양을 승리자로 우남을 패배자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집단과 뜻을 같이하는 자들에 의해 현대사를 다시 왜곡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공사에서 6.25를 구실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백선엽을 영웅으로 부각시켰고, 올 8.15에는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5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송하여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려는 술수를 부리고 있다.
몽양 여운형이 사후 61년만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고, 이승만 정권에 의해 법살을 당했던 조봉암에 대해서도 52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18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날 유명을 달리한 몽양과 우남의 구체적인 행적이 모두 드러나있어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상식적인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억지 주장으로 국민을 잠깐은 현혹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역사는 결국 정의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