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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뉴에이지언의 겨울
참 예술과 참 논쟁을 생각하며
 
이승훈(객원논설위원)   기사입력  2002/03/31 [16:54]
{IMAGE1_LEFT}우리 나라에서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그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TV 드라마에서 한번 쯤 배경음악으로 들었던 기억을 떠 올릴 수도 있는 뉴에이지(New Age)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란즈(David Lanz)'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겨울은 태초에 지구가 숨을 쉴때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우리에게 휴식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 자신이 축제의 행사 한가운데서 잠시 떨어져 나와서 느낄 수 있는-"



맑고도 깊은 말이다. 어떻게, 푸른 눈의 이 서양인이 사계(四季)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진리를-최소한 동양적인 진리를- 체득하였을까?

인간과 자연의 본질-현상에 대립된다는 의미의 본질이 아니라 다소 실존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를 가진 본질-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유의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것은 그가 진정한 뉴에이지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발언이다.

한편, '우리 자신이 축제의 행사 한가운데서 잠시 떨어져 나와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 이라는 그의 표현에서는 그가 진정한 예술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음악, 미술, 건축 등을 포함한 예술, 그리고 문학 이 모든 문화적인 것들을 비 문화적인 것들과 구별하게 하는 요체가 바로 그것이다.

'축제-그 축제는 즐거운 축제이지만은 않다-의 행사 한가운데서 잠시 떨어져 나와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움의 발견' 필자는 이를 '다차원적인 존재로서의 아(我)의 발견'이라고 정의하는데, 이 다차원적인 존재로서의 아의 발견은 바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굳이 고상한 예술만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적인 개그나 코메디에도 이러한 다차원적인 존재로서의 아의 발견이 있어야한다.

{IMAGE2_RIGHT}다차원적 존재로서의 아의 발견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문화적이지 못하며, 교양이 없고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또한 그 미분화된 자아를 대상에 집착시키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참 추하다는 느낌이 든다. 요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주접'이라는 말이 바로 그런 사람의 행위를 정확히 설명하는 말이다.

정치인들도 교양있는 사람이 되려면 예술을 좀 알아야한다. 색깔론, 음모론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 그리고 그를 원용하는 사람들 에게 탐욕과 미분화된 자아의 대상으로의 집착을 버리고 데이비드 란즈의 음악을 한번 들어보기를 권한다.

봄이 왔다. 봄의 에너지는 겨울에서 이미 잉태된 것들이다.

이 봄에 그 놀라운 에너지를 터뜨리고 있는 그 사람의 에너지. 실체가 없다고? 그가 봄 이전의 겨울을 오랫동안 보내왔기 때문에 발휘 될 수 있는 것이다.

참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유... 백수광부'

* 데이비드 란즈 홈페이지 안내 http://www.davidlan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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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03/31 [16: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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