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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남대문시장 방문, '시민 환호성'이 불편한 이유
남대문 시장은 장애인이 목숨 걸고 가야했던 곳, "영화 찍나" 비판 되새겨야
 
이훈희   기사입력  2009/09/11 [12:54]
▲ 이명박 대통령 방문에 환호성을 지르는 시민들.     © 청와대

1984년이었다. 머리핀과 브로치를 만들어 남대문 시장에 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증 장애인 김순석(34) 씨가 자살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는 건너갈 수 없는 횡단보도와 들어갈 수 없는 식당, 화장실, 발버둥을 쳐도 잡을 수 없는 택시 등 장애인을 차별하는 현실에 매 순간 절망했었다.

김 씨는 서울시장에게 “거리의 턱을 낮춰주세요”라는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같은 해 이명박 대통령이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위장 전입을 했다. 이 대통령은 자녀의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법을 위반했다며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했다.

남대문 시장은 장애인이 목숨 걸어야 갈 수 있던 곳

13년이 흐른 1997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정석 연구원은 남대문 시장에 장애인이 출입하기가 여전히 어렵다고 지적했다.

“길 건너기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횡단보도가 드물기 때문이다. 국보1호인 남대문까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다. (장애인은) 아예 목숨을 내걸고 찻길을 건넌다. 이른바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다.”

같은 해 IMF가 터졌고, 당시 신한국당 국회의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7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위반죄로 징역 2년 구형에 이어, 9월에는 범인 도피죄까지 적용돼 징역 2년에 벌금 7백만원을 선고받았다.

2006년 3월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남대문(숭례문)을 개방했다. 같은 해 서울시의 활동보조인서비스 조례 제정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서울시청 앞에서 29일 동안 노숙 농성한 이원교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투쟁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이원교'인데, 사회에서는 나를 '장애인'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 장애인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나와야 할 것이다."

2008년 2월 11일 국보 1호인 남대문에 화재가 나 잿더미가 되었다. 같은 해인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함께 가요, 국민 성공시대!”라는 표어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이 대통령은 후보 당시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라는 ‘장애아 낙태 발언’을 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민들의 환호성, 장애인이 빠진 이유는...

2009년 9월 10일, 서민 행보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오전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 2천여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몰려와 열광적 환호를 보냈다. 한나라당 서민행복추진본부장 정병국 의원은 "연예인이 온 것 같다. 대선 때도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한 일간지는 이 대통령을 만난 할머니가 "어제 꿈에 남대문이 보여서 왔는데 대통령을 만났다“며 감격했다고 전했다. 잿더미가 된 남대문이 보인 까닭은 대관절 무엇일까.

‘소통의 힘’을 느꼈다는 정부의 해석과는 달리 이들 시민 중엔 장애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적어도 인구의 1/10을 차지하는 장애인과는 소통되지 않음을 증명한 셈이다.
 
▲     © 청와대

같은 날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2008 회계연도 16개 시·도교육청별 예산절감 현황 및 절감예산 사용실적’에 따르면, 장애 학생의 시설 환경 개선 및 저소득층 학생들의 학비·급식 지원에 쓰일 예산 1천941억원이 영어교육 강화 등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거기에 장애인 1인당 210만원의 빚까지 안겨주는 4대강 사업까지 벌이고 있어 더 큰 문제다. 기획재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나라 빚이 2010년에는 400조 정도로 늘어날 전망이고, 이 상태라면 국가 채무비율이 GDP의 40%에 이른다고 한다. 이 빚 중 100조원 가량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 내에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대문 시장에 장애인 화장실 설치를 허하라

다시 ‘1984년’, 죠지 오웰은 이 소설에서 신격화된 지도자 빅 브라더에 대한 숭배를 묘사했다. 목요일 오전 남편 일 보내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난 뒤 방바닥을 닦고 빨래를 시작해야 할지 모를 주부 2천여명이 아침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화장을 하고 일요일 나들이 때나 입을 법한 외출복을 입고 남대문 시장에 대거 나타난 이유가 궁금하다.

한 네티즌은 “영화 찍는다”고 표현했지만 어쨌거나 이 영화 속에 장애인이 출연하지 않은 게 영 못마땅하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조사하는 활동가들은 남대문 시장에서 장애인 화장실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있긴 해도 계단 때문에 이동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마 이 때문에 출연하지 못했을 것 같다.

25년 전 김순석 씨가 자살까지 하면서 호소한 남대문 시장 화장실 설치가 왜 이처럼 어려운 과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박식 신자유주의 정책에는 장애인 예산이 ‘헛돈’으로 간주되기 때문. 그래서 주택자금 융자까지도 복지예산이라고 우기고 있는 게 기가 막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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