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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교수는 한국현대사의 비극, 희망의 불꽃"
송두율교수 비대위 입장발표, 수구언론과 정형근의원 책임커
 
김주영   기사입력  2003/10/07 [18:20]

10월 7일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교수·학술단체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송두율 교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현 상황을 비판하고, 좀더 역사적이고, 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번 기자회견은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와 학술단체협의회등 7개의 교수학술단체로 구성된 '송두율교수사건교수,학술단체비상대책위원회의'(이하 비상대책위)의 주최로 진행됐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교수·학술단체 기자회견 모습     ©대자보

민교협 손호철 공동의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송두율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것저것 모르는 일들이 터져나와 당황스러웠다. 이후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교수들 입장에서 뭔가 입장을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까지 교수들 내부에서도 많은 이견들이 존재했다."며 기자회견의 취지와 송두율 교수사건을 둘러싸고 학계내에서도 논란이 존재했음을 시사했다.

비상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송교수 문제의 핵심쟁점으로 네가지로 꼽았다. 첫째,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문제, 둘째, 송두율 교수의 행적에 대한 실정법적 판단의 논리와 송두율 교수의 개인의 양심의 논리 사이의 충돌 문제, 셋째, 송두율 교수의 정치적 행적과 학문적 실천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의 문제, 넷째, 송두율 교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법률적, 정치적 처리의 문제이다.

비상대책위는 우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하면서, 아직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며, 송두율 교수 문제에 오직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자세로 검찰이 접근하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체적 접근과 동시에 '송두율 교수문제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검찰과 정형근 의원 등의 책임이 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비상대책위는 "이 문제와 관련해 수사가 최종적으로 종료되기 전, 국정원과 검찰로부터 조금씩 수사의견이 언론으로 유출되었다는 점에 대한 항의한다"며 "수사종료전에 수사기관이 수사내용을 부분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은 명백히 피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공정한 수사과정에 대한 여론의 향방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라고 지적했다. 비상대책위는 "수사정보의 외부 유출이 국정원과 검찰의 조직적 언론 플레이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국정원과 검찰은 공정한 수사를 스스로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담당 수사관이나 검사 차원에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것이라면 국정원과 검찰은 조직관리의 소홀이라는 점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보를 기정사실화 하여 송두율 교수를 '거물 간첩'으로 몰아세워 온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 등과 몇몇 언론사 역시 공정한 수사를 방해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잘못된 여론몰이식의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학술단체협의회 조희연 공동대표는 "일부언론들이나 사람들이 송교수의 귀국을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것이라고 말하거나, 우리나라의 실정을 북에다 알리기 위해서 등 간첩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다. 송교수가 한국에 들어올 때 국정원 조사를 통과의례적인 사안으로 생각해고, 특별한 준비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조사과정에서도 송교수는 있는 대로 다 털어놓겠다는 심정적인 결심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준비된 언어가 아닌 투박하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국정원의 조사결과가 나온 것이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정형근 의원이나 국정원과 검찰은 냉전적 입장에서 해석하여 송두율교수를 공작원으로 치부하는 것은 과거의 반인권적 관행을 되풀이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비상대책위는 송두율 교수의 처벌근거인 국가보안법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비상대책위는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성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적 여론이 형성된지도 오래되었거니와 민족화해와 이에 기초하여 평화통일을 도모하는 행위는 현행 국가보안법상 대부분 이적 불법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현재 시점에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의 논리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다루는 것에는 크나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국가보안법의 자체의 문제와 한계성을 지적했다.

송두율 교수의 처벌문제와 관련해서 비상대책위는 "일부 언론에서 벌써부터 거론하고 있는 '수사 종료 후 국외 추방'은 송두율 교수가 제대로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일이고, 이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최종적인 실체적 진실에 접할 수 없게 하는 일이다. 또한 본인 스스로 추방을 제외한다면 어떠한 처벌이라도 감수하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따라서 엄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남김없이 밝히고 송두율 교수가 처벌받을 것이 있다면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다만 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인 반인권적 악법으로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으며, 송두율 교수가 자진 입국하여 수사에 협조해왔다는 점등은 당연히 판결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해 좀더 송교수의 학문적 성과와 기여도를 염두에 둔 판결을 요구했다.

조희연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앞으로 나올 조사결과에 따라 해명할 것은 해명을 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할 것이다. 그런데 '전향을 한다면 추방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추방이라는 것이 국제인권사회내에서는 인권탄압으로 규정된지 오래인데도 추방을 운운하면서 전향적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사상의 자유에 탄압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학자의 양심을 유린하는 전향요구를 강력히 비판했다. 

비상대책위는 "남북한의 오랜 대립과 반목의 역사는 송두율 교수 외에도 많은 다른 경계인들을 낳았다. 경계선에서 좀 더 북측으로 치우쳤는가 남측으로 치우쳤는가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치우침조차도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도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송두율 교수의 입국 이후 전개된 수많은 논란은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며, 후미지고 음습한 구석에 희망의 불빛을 던져주는 과정의 한 대목일 것이다."고 역사적 관점에서 송교수사건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비상대책위는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우리 민족이 오랜 고난의 세월을 거치고 희망과 평화의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물굽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열어갈 희망의 세계에는 송두율 교수도 꼭 초대되어야 할 것이다."고 말해 송교수 사건을 단순한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냉전에서 화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으로 이해하고, 송교수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비상대책위는 싸이트(http://37years.ce.ro)를 만들어 송두율 교수에 대한 각종자료를 모아 놓을 생각이며, 거기에 변호사의 의견서 등을 게시할 예정임을 밝혔다. 또한 사태의 진행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의견을 표명해나갈 계획이다. 비상대책위는 오랜 기간 준비로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라 급하게 꾸려진 만큼 뜻을 같이 하는 다른 단체나 개인들의 참여를 요청했다.

손호철 교수는 "이번 송두율 교수 사건으로 인해 진보학자들을 매도하는 부분들이 있다. 송두율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다. 또한 지난 과정에서 우리 또한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는 부분이 존재했었고, 지난 법원에서도 근거부족으로 결과가 나온바 있다. 그리고 당시 국정원은 지난 수지김사건 등에서 위신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배경에서 과연 우리가 누구를 믿었겠는가? 우리는 송교수를 믿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진보단체들에게 여론몰이식 비판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진보단체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에 대한 재비판을 가했다.

이번 송두율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일정정도 송두율 교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37년만에 고국에 귀국한 학자임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고, 송교수의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했겠는가를 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진실게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를 간첩으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을 하는 보수우익들의 목소리에 휩쓸려 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를 경계인으로 만든 사회가 지금 그를 간첩으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은 또 하나의 역사의 희생자를 만들뿐이다. 이것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며 떠나라고 말하고 있는 사람과 그의 상황을 살펴보고 이야기하라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감정적인가?

이번 학술단체들의 기자회견은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가 송두율 교수의 조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와 검찰의 처벌결과가 주목된다.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교수·학술단체 기자회견문]
송두율 교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요즈음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으로까지 부상한 송두율 교수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매우 착잡하다. 먼저 송두율 교수에 대해 크게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대목은 그가 입국하기 전에 노동당 입당 등 자신의 과거 행적과 관련하여 모든 것을 소상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는 송두율 교수가 엄정하게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 미리 모든 것을 소상히 밝혔더라면 그의 입장도 더 떳떳할 수 있었을 것이고 송두율 교수 문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지금보다는 더 우호적이었을 것이다. 분단체제라는 엄혹한 조건하에 위험한 상황에 내몰린 개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취한 행동이라는 점이라고 이해해줄 수 있는 면이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추후에라도 송두율 교수는 이 문제에 관해 국민에게 충분히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분명히 사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송두율 교수의 학문과 활동에 대한 비판사회과학진영의 그간의 평가 역시, 노동당 입당 등의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일면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송두율 교수 문제에는 여러 쟁점이 난마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 판단된다. 첫째, 실체적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문제, 둘째, 송두율 교수의 행적에 대한 실정법적 판단의 논리와 송두율 교수 개인의 양심의 논리 사이의 충돌 문제, 셋째, 송두율 교수의 정치적 행적과 학문적 실천간의 관계에 대한 해석의 문제, 넷째, 송두율 교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법률적, 정치적 처리의 문제.

실체적 진실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 관련해서는 아직 검찰의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이라 사실관계에 대한 종합적 판단을 내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에서 분명히 인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요소로는 송두율 교수가 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이 있다는 점, 북한으로부터 여행경비 및 학술활동 자금 등을 지원받은 적이 있다는 점 정도인 것 같다. 최대의 쟁점인 노동당 후보위원으로의 선임 여부와 이 사실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보 여부와 관련해서는 국정원 및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와 송두율 교수의 기자회견 내용이 불일치하므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우리는 검찰이 송두율 교수 문제에 오직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자세로 접근하여 주기를 바란다.

국정원, 검찰, 정형근 의원의 혐의사실 유포에 항의한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엄중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수사가 최종적으로 종료되기 전에 국정원과 검찰로부터 조금씩 수사의견이 언론으로 유출되었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수사기관과 피의자 사이에는 언론과의 접촉 기회나 수집된 정보 및 수사기록에 대한 접근에 있어 현격한 격차가 있기 때문에, 수사 종료 전에 수사기관이 수사내용을 부분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은 명백히 피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공정한 수사와 수사진행과정에 대한 여론의 향방을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송두율 교수가 37년간의 외국 생활로 인해 한국어의 이해와 구사에 서툴고, 국내법 및 국내 정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사 종료 이전에 수사정보를 유출시키는 행위가 얼마나 공정하지 못하며 부도덕한 행위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더구나 변호사 입회를 금지한 것은 국정원의 공정한 수사의지를 우리로 하여금 의심케 하는 처사였다고 할 수 있다.
수사정보의 외부 유출이 국정원과 검찰의 조직적 언론 플레이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국정원과 검찰은 공정한 수사를 스스로 훼손한 점에 대해 책임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담당 수사관이나 검사 차원에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된 것이라면 국정원과 검찰은 조직관리의 소홀이라는 점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보를 기정사실화 하여 송두율 교수를 '거물 간첩'으로 몰아세워 온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 등과 몇몇 언론사 역시 공정한 수사를 방해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편향을 정정하고 진정한 경계인이 되고자 하는 충정을 받아들여야

입북 및 노동당 입당과 같은 송두율 교수의 정치적 행적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논리와 송두율 교수 내면의 양심의 논리 사이의 충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야말로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의 관건이라 판단된다. 남북한 사이의 무한 체제 대립 상황에서 만들어졌고, 이러한 상황의 영구 지속을 전제로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은 원리적으로 불완전한 법일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의 반인권성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적 여론이 형성된 지도 오래되었거니와, 민족화해와 이에 기초하여 평화통일을 도모하는 행위는 현행 국가보안법상 대부분 이적 불법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문제의 최종적 해결은 6.15 공동선언 이후 정착되어 가는 남북화해의 정신을 반영하여 국가보안법이 철폐되는 데에 있겠으나, 일단 현재 시점에서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실정법의 논리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송두율 교수 사건을 다루는 것에는 크나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송두율 교수는 일단 객관적인 행적의 차원에서는 과거에 남한에 비해 북한을 더 긍정적으로 보고 이러한 시각에 기초하여 입북 및 노동당 입당을 결행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 입당 이후 그의 행적에서 명백히 친북적이고 반남(反南)적이라 할 수 있는 뚜렷하고 중요한 행위를 발견하기 어려우며, 그가 점차 북한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고 학문 활동을 통해 북한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언급해온 점을 볼 때, 그는 점차 진정한 의미에서 남한에도, 북한에도 정치적 귀속감을 갖지 않는 '경계인'으로 스스로를 자리 매김하고 이러한 자기 규정에 기초하여 학문활동을 전개해온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간의 엄혹한 체제대립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비인간적인 흑백논리는 그로 하여금 공개적으로 북한에 대해 선을 긋는 행위를 주저하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그가 집필한 여러 글에서 남한에서의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취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애의 말년에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남한에 입국하였다는 사실은, 민주화된 남한 정부 및 남한 국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려 한 충정의 소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과거의 행적의 측면에서 북에 치우친 면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점을 볼 때, 그는 과거의 편향을 스스로 정정하고 남과 북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는 동시에 남과 북 모두를 껴안으려는 진정한 경계인이자 진정한 화해자로서의 삶을 객관적으로도 구현하겠다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단은 사실 오래 전부터 그의 내면에서 내려진 것이나, 공개적 전향 없이는 남한 입국이 불가능했던 현재까지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결단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법률의 논리는 경계선 바깥에 찍힌 발자국의 수만 셀 뿐, 그러한 발자국을 남기게 된 전체 발걸음의 행로는 잘 헤아리지 못하며, 더욱이 그러한 발걸음을 인도한 개인의 내면의 논리와 고뇌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아마도 송두율 교수는 자신의 섬세하고 복합적인 내면세계의 행로가 몇 가지 생경한 수사의 언어, 법률의 언어로 요약 정리된 데 대해 당혹감과 낯선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송두율 교수 사건은 아마도 법률의 언어와 논리의 한계가 인정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학문적 실천은 학문의 논리로 평가해야

송두율 교수의 정치적 행적과 학문적 실천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선 두 가지 상반된 편향을 거부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하나는 송두율 교수의 입북 및 노동당 입당이라는 정치적 행적을 기준으로 그의 학문적 실천을 재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그가 집필한 많은 글들을 북한을 옹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집필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가 현재 처한 어려운 상황을 동정하여 그의 학문적 성과를 과도하게 상찬하거나 학문적 비판을 삼가는 것도 정도(正道)가 아닐 것이다. 그의 정치적 행적이나 이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무관하게 그의 학문적 성과는 학문 자체의 논리와 기준에 따라 엄정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송두율 교수를 국외 추방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송두율 교수 문제에 대한 법률적, 정치적 처리의 문제가 있다. 엄정한 수사가 종료된 후에는 공정한 재판과정을 통해 진실이 규명되도록 하는 것이 정도이다. 일부 언론에서 벌써부터 거론하고 있는 '수사 종료 후 국외 추방'은 송두율 교수가 제대로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일이고, 이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최종적인 실체적 진실에 접할 수 없게 하는 일이다. 또한 본인 스스로 추방을 제외한다면 어떠한 처벌이라도 감수하겠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따라서 엄정한 수사와 공정한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남김없이 밝히고 송두율 교수가 처벌받을 것이 있다면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다만 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인 반인권적 악법으로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으며, 송두율 교수가 자진 입국하여 수사에 협조해왔다는 점 등은 당연히 판결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수사와 재판이 종료된 후에 우리 사회는 송두율 교수를 관용의 마음으로 포용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관용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도덕적으로 열등한 자를 내려다보며 동정심에서 용서해주는 차원의 관용은 아닐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수많은 개인들의 희생을 낳았고 송두율 교수도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사의 희생자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남한의 유신독재는 그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했고 북한은 정치공작 차원에서 이러한 지식인을 이용하려 했다. 자신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상대 체제를 약화시키려는 남과 북의 냉혹한 체제논리는 수많은 선의의 피해자와 희생자를 양산했다.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용은 남북 분단과 대립의 역사 속에서 이러저러한 형태로 굴절되고 상처받은 우리 모두의 모습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관용의 표현이어야 할 것이다.
 
그는 37년간의 외로운 타지 생활과, 생애의 말년에 비로소 귀국한 조국에서의 수사라는 형태로 이미 많은 벌을 받았다. 그를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국제 미아'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특히 충분한 소명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국외 추방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자연인으로서 그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생애를 마감하기 원하며, 그의 굴절 많은 생애를 통해 습득한 지식과 체험을 남북화해를 증진하는 데 활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한 것이다. 최소한 신변의 안전과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는 독일을 떠나 굳이 귀국을 강행한 그의 진심은 존중되어야 한다.

남북 어느 하나로 치우침조차 강요되었던 우리의 현실을 화해의 관점에서 넘어서자

남북한의 오랜 대립과 반목의 역사는 송두율 교수 외에도 많은 다른 경계인들을 낳았다. 경계선에서 좀 더 북측으로 치우쳤는가 남측으로 치우쳤는가 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치우침조차도 온전히 자신의 뜻대로 선택할 수도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왔다. 송두율 교수의 입국 이후 전개된 수많은 논란은 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현대사의 비극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며, 후미지고 음습한 구석에 희망의 불빛을 던져주는 과정의 한 대목일 것이다.

송두율 교수의 실정법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한 개인으로서 그가 오랜 세월 짊어져 온 무거운 짐과 고통에 대해 위로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갖가지 고통을 짊어진 채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굴절된 삶을 살아온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에게 위로와 우애의 뜻을 전하고 싶다. 이러한 아픔은 반드시 희망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민족화해가 진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앞으로도 비극적이고 어쩌면 곤혹스러운 사건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우리 민족이 오랜 고난의 세월을 거치고 희망과 평화의 바다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물굽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열어갈 희망의 세계에는 송두율 교수도 꼭 초대되어야 할 것이다. 

2003.10.7
송두율 교수 사건 교수ㆍ학술단체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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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10/07 [18:2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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